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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ul 25. 2019

[독후감] 평등은 개뿔

  성 평등에 대한 모든 논의는 대부분 공감을 하면서도 쉽지가 않다.  그것은 여전히 한국사회를 뒤덮는 가부장의 인식 안에서 알게 모르게 편의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한국 남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알게 모르게 누리는 편의 안에서 실천은 느려진다.  느려지는 실천만큼, 인식의 변화는 공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 책의 말미에서 우려했듯, 나 역시 ‘센 여자’를 충분히 느꼈다.  


  ‘센 여자’를 느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성 평등에 얼마나 다다랐느냐는 기준은 아니다.  당연하다는 인식과 공감과, 어딘가 불편함의 괴리의 차를 확인하는 일이다.  사실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은 역동적인 변화와 운동 안에서, 집단끼리 편의와 권력을 주고받는 영원한 경쟁체제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공감과 합의일 것이다.  공감과 합의를 통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일 것이다.  

  한국사회가 여전히 들끓는 이유는 공감과 합의가 부족하고, 그로 인해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서, 가부장에 따른 역할 차이의 일방적 강요가 자발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신체적 차이에 따른 역할과 희생의 강요는 정당한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 답할 한국사회의 구성원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암묵적으로는 이제껏 이어왔던 구조와 강요된 인식에서 벗어나길 거부한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괴리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것이 ‘센 여자’를 만들어냈다.


  ‘센 여자’는 스스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적 인격이다.  ‘어째서?’라는 합당한 의문이 합리적 문제제기로 진화하는 것과 동일하다.  걸어오는 싸움에 반응하는 반사적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은 ‘센 여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센 여자’를 만들어 낸 한국사회에 가 닿아야 한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보편 흐름과 가부장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는 일이다.  나는 누군가의 희생을 모른 체 하며 지금의 편리를 누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느끼는 어떤 괴리는 성 평등 인식과 행동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결국, 스스로의 합의를 도출해내야 하는 과정의 시작이고, ‘센 여자’는 그런 합의에 가 닿아야 하는 저마다의 의식의 출발선인 셈이다.    


  읽는 내내 ‘82년생 김지영’이 떠올랐다.  자본이 점점 강해지는 방향으로 변하는 사회 안에서 남녀의 역할 차이는 점점 줄어드는데 여성의 역할이 의도적으로 폄하된다.  거기에 가부장적 역할 강요가 여성을 억누르고 결국 미칠 지경에 이르는데, ‘센 여자’는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가 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안고 소소한 혁명 같은 실천을 해 나간다.  프리랜서와 귀촌의 삶 안에서 문제제기는 자본주의보다는 가부장 사회에의 저항에 좀 더 닿아 있다.  성 평등이 한국사회와 갈등하는 지점이 좀 더 근본적이다.  위에서 합의와 균형이라는 표현을 썼듯 나는 완벽한 성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고, 현재 대두되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온전하게 동의하지 않는다.  주변만 둘러보아도 내부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여성들의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하고, 소외된 채 방치되는 여성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그렇지만, 변화는 필요하고 변화가 보고 나아가야 할 목표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변화와 변화의 시작, 그리고 변화가 닿아야 할 종착지점을 가장 쉽고 근본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괴리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비판의 꺼리가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괴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사회에서 성 평등을 향한 변화는 절실한 문제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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