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단칸방에 아이 셋과 부부가 함께 살던 형님은 항상 자신은 잘 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건설용역 회사의 중간 직책으로 활동하며 그때 형수도 만났다고 했다. 그때 그는 닭갈비용 닭 가공공장에서 트럭을 몰고 있었다. 한겨울 단칸방 옆 시멘트 부엌 바닥에 마주 앉아 말린 개구리 뒷다리가 비죽 나온 고추장찌개와 소주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형님은 현재의 고민 따위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이 셋이 자라면서 좀 더 큰 집이 필요했고, 시간이 좀 지나 찾아가 보니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시골의 다락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일도, 호기로움도 바뀌지는 않았다. 그게 형님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대형마트 옷 매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무릎이 아프다며 나를 찾아왔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며 짜증 조금 섞인 표정이지만, 대화와 인상에 도도함을 간직하려 애썼다. 매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조금 구체적으로 물었다. 일주일에 하루 쉬며, 하청업체인데도 매장의 모든 업무와 책임을 고스란히 안고 일하며 최저임금에 가까운 급여를 받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무릎까지 아프면서 그렇게 일하는 건 조금 부당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다들 그렇게 산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진료실로 찾아와 주사와 물리치료를 받던 그녀가 3주 정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그녀에게 왜 오랜만에 오셨냐고 물어보니, 남편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느라 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깐 울먹였다.
우연한 기회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 술자리에서나 조금 깊게 들릴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다. 세상의 관심을 받을 기회도 이유도 없이 그저 누군가의 인생사로 한두 번 회자되다 사라질 것들이다. 사실 우리는 별로이고, 별로인 삶을 살고 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런 이야기는 쌓이고 넘쳐 질려버릴 정도이다. 그렇지만 별 볼일 없는 각자의 인생 이야기는 쌓이고 얽혀 사람이 사는 세상을 구성한다. 별 볼일 없는 시시하고 그런 삶들이 모여 사회라는 실체를 조직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보편의 우리에게 가장 솔직하면서도 가까운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삶들은 여전히 조명을 받지 못한다. 왜 그런 것일까? 매체와 관심사들이 솎아내는, 좀 더 흥미롭고 관심을 끄는 몇몇 누군가의 이야기의 그림자가 너무 커서 가려지기 때문일까?
순간순간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생성되고 있다. 순간의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사회를 구성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움직이며 생의 흔적을 남긴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삶의 이야기, 실은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다. 나의 삶은 나의 이야기일 뿐, 그것이 일부 타인의 삶과 교차하면서 관계를 자아낼 뿐이다. 특별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하지 않은 그저 덤덤함이 산처럼 쌓여간다. 그것이 사회의 본질일 텐데, 우리는 시시한 것들의 산더미를 왜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평범하고 시시한 나와 누군가의 이야기가 서로를 증명하는 것임을 마음으로 느끼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