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를 했다. 시기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렇게 자라 버린 가지들을 쳐내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새순과 꽃망울이 굵어지는 2월을 생각하면, 그리고 겨우내 그것들을 준비할 나무를 생각하면, 겨울이 좀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쳐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순전한 내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유실수가 대부분인 마당의 나무들이 열매들을 거의 다 떨군 시기이기도 했다.
뒤뜰 구석에는 이미 여름에 가지를 쳐낸 매실나무 가지와, 올해 초 수명을 다한 귤나무 둥치가 쌓여 있었다. 거기에 날씨만 춥지 않으면 무섭게 자라 오르는 티트리 나무에서 쳐낸 가지들도 쌓여 있었다. 오래전 가지치기를 한 나무들에서 다시 가지들이 무성하게 올랐다. 뒤뜰 한 구석에 수북이 쌓인 가지들의 양도 만만치 않은데, 새로 가지치기를 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양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땅의 생산력에 경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정성 들여 양분을 주는 것도 아닌데, 나무들을 알아서 가지들을 뻗고 열매를 맺는다. 부피로 따지자면 상당한 양이 땅에서 나오건만, 땅은 특별한 변화를 보이지도 않는다. 땅에 심어진 작물에서 그저 조금 덜 맺고 더 맺는 정도의 차이만 보일 뿐이다. 인간은 어쩌면 땅의 자연스러운 생산력에 가만히 기대어도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좀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노동은 인간이 가진 욕심의 영역일지 모른다. 더구나, 그 욕심으로 얻어낸 노동의 결과물이 불평등한 분배로 이어진다면, 인간의 노동은 자체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래 쌓여 있어 적당히 마른 뒤뜰의 나무와 가지들을 적당한 곳에 모아 불을 붙였다. 춥지 않은 일요일 오전의 미풍에 불은 쉽게 붙었다. 나무 타는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나무도 빠르게 타 들어갔다. 불이 퍼지거나 날리지 않는지 잘 조절하면서, 뒤뜰의 경계를 따라 심은 두릅도 가지를 쳤다. 우리 집 터가 두릅에 잘 맞는지, 녀석들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무섭게 자랐다. 과감하게 사람 키 높이로 모두 잘랐다. 옆으로 너무 자란 가지도 쳐냈다. 줄기의 가시가 무척 날카로워서 나는 장갑을 끼고도 엄지손가락을 피가 날 정도로 찔렸다. 쳐낸 가지들을 불 속에 바로 던져 넣었다. 한 구석에 수북이 쌓였던 나무와 가지들은 잠깐의 시간을 두고 재로 변했다. 흙과 뒤섞여, 부피를 모두 잃었다. 쌓였던 자리의 바닥에는 잘 부식된 잔재들이 흙 위에 부드럽게 쌓여 있었다. 이런 것들은 아주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봄이 되면 잘 걷어서 텃밭에 뿌려 줄 것이다. 그전에, 이 자리는 새로 쳐낸 가지들이 다시 쌓일 것이다.
사과나무의 가지를 쳐냈다. 남쪽에 높게 선 옆집 때문에 하루 종일 그늘에 있어야 해서 많이 미안한 녀석들인데, 둥치마저 옆으로 기운 채 자리 잡아서 균형을 잡아줘야 했다. 기운 쪽 가지를 과감하게 쳐내고, 반대쪽으로 길게 자란 가지가 잘 자라도록 유도해주었다. 두 그루 중 하나는 그렇게 했고, 나머지 한 그루는 너무 커서 바람을 타지 않을 정도로만 쳐 주었다. 제일 무섭게 자라는 녀석은 무화과나무였다. 올해 무화과는 열매 맺기를 쉬는 듯했다. 대신 땅 위로 길게 가지를 내고, 옆 집 너머로도 높게 가지를 뻗어서 적당하고 아담하게 디자인하는 마음으로 가지를 쳤다. 대추나무도 가을 태풍에 기울면서 죽은 가지가 있어 쳐내고, 줄기를 뒤덮은 월계수 나무도 잔가지를 모두 정리했다. 올리브나무도 모양이 나게끔 아래의 잔가지들을 쳐내고, 윗가지가 두 줄기로 갈라지도록 유도했다.
잠깐의 시간 동안 서둘러한 작업이라 반 밖에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쳐낸 가지들을 뒤뜰에 모아보니 이전에 쌓인 것만큼 다시 수북했다. 남은 나무들을 작업하면 얼마나 많이 쌓이려나.. 태풍에 기운 석류나무와 단풍나무도 가지를 과감히 쳐야 할 듯하고, 모과도 과감하게 위와 옆으로 쳐야 한다. 티트리는 덜 추운 겨울바람에 아직도 새순을 내고 있는 중이다. 남은 감을 새들에게 거의 다 줘 버린 감나무도 바람 덜 타게 쳐 주어야 한다. 겨울임에도, 마당과 텃밭에는 할 일이 여전하다.
가지 치느라 마당에서 오래 있었더니 반려견 녀석은 저 혼자 신이 나서 놀아달라고 헥헥댔다. 공을 물고 와서 차 달라고 조른다. 쳐낸 가지를 마당에 던져놨더니 물고 가져가서 장난을 친다. 중간중간 같이 놀아주다 보니 시야에 들어온 마당에는 잔디들이 모두 노랗게 시들었고, 사이사이 잡초들이 푸르게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해야 할 일이 되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북풍이 불어오는 계절에 가끔 남풍이 불었다. 북풍이 불어도 그다지 차갑지 않다. 겨울의 시작이 너무하다 싶을 만큼 포근하다. 그 포근함에 로즈마리 덤불에는 낮에 햇볕을 받겠다고 아직 수명을 다하지 않은 메뚜기가 보였다. 아직 겨울의 시작이지만 겨울이 너무 포근하면 땅에 손을 대는 입장에서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작은 걱정이 본능처럼 올라온다. 포근함도 얼마 남지 않았을 거란 기대를 하다 보면, 눈에 보이는 남은 일들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온다. 마당과 텃밭에 넉넉히 품을 팔 수 없는 연말의 분주함이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