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텃밭일기 25화

텃밭일기 #25. 20191222

by 전영웅

날이 추워져서, 보조주방으로 통하는 공간에 두었던 레몬나무를 거실로 들였다. 그 공간은 천정이 유리여서 볕이 좋다. 때문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여름에는 아열대 식물인 레몬이 아주 잘 자라는 환경이지만, 겨울에는 그렇지 않다. 기온이 그나마 덜 떨어지는 거실로 옮겨 겨울을 나야 한다. 지금 레몬나무에는 레몬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중이다.


제주에 내려왔을 때, 맨 먼저 아열대 식물들에 관심이 생겼었다. 애플망고, 구아바 등등이 생각났지만, 난이도가 높은 그런 식물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류였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식물들은 허브들이었다. 로즈마리는 노지에서 겨울을 날 수 있었고, 그렇게 따뜻한 만큼 육지에서는 힘든 다양한 허브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딜, 펜넬, 타라곤, 타임 등등.. 우리 집 마당에는 노지에서 알아서 생존하는 허브들이 가득해졌다. 로즈마리는 덤불처럼 자라서 남쪽 집 경계를 두르는 정도로 자라, 해마다 봄이 되면 가지치기를 해 줘야 하는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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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레몬이 자란다는 사실은 마트에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발견한 제주 레몬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장 레몬을 구입해서 요리에 써 보고, 과육 사이에 박혀 있는 씨앗들을 모았다. 제주 레몬은 수입 레몬보다 훨씬 크고, 껍질도 두터웠다. 껍질과 과육 모두를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인 만큼, 제주 레몬은 활용도가 무척 좋았다. 그리고, 상토를 담은 화분에 심은 레몬 씨앗에서는 어렵지 않게 싹이 올라왔다. 신기했다. 나는 베란다에 화분을 두고 레몬을 계속 키워나갔다. 발아한 레몬은 성장 속도도 빨랐다. 아파트에 살던 때라 그 속도를 감당하기엔 화분도 베란다 공간도 부족했다. 총 세 개의 화분을, 나는 당시 알음알음으로 만나기 시작한 이주민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중 한 그루는 사라마을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지인에게 갔다. 마당에 옮겨 심어진 레몬나무는 날이 더워지자 무서울 정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그런데, 날이 더워지며 벌레들도 많아졌다. 레몬 잎은 생각보다 달달했던 모양이다. 레몬 잎은 싹이 생기기가 무섭게 갉아먹혀, 레몬은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채 죽어버렸다.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오고, 집을 이것저것들로 채워가던 중에 챙긴 건 레몬나무였다. 묘목 두 그루를 구입했는데, 하나는 오일장에서 순수한 레몬나무를 구입했고, 하나는 농원에서 귤과 접목시킨 레몬을 구입했다. 오일장에서 사들인 나무는 텃밭 경계에 심었고, 접목한 레몬은 커다란 화분에 심어 거실로 들였다. 제주에서 레몬은 보통 하우스 안에서 일정 이상의 온도를 유지시켜 키운다. 노지에서 레몬나무가 잘 자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간의 작은 경험이 있으니 병충해만 잘 방제해주면 알아서 클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레몬은 너무 잘 자랐다. 실내에서는 병충해가 없으니, 온실 같은 주방 사이 공간에서 무성하게 자랐고, 텃밭의 레몬은 벌레에 새순을 먹히면 먹히는 대로 알아서 잘 자랐다. 레몬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나비 애벌레들이었다. 건드리면 이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뿔을 비죽하게 내는 그런 녀석들이었다. 조금만 시선을 거두면 녀석들은 연한 레몬잎을 무서운 속도로 갉아먹었다. 출근 전의 잠깐의 시간을 들여 내가 하던 일은, 그런 녀석들이 보이는 족족 레몬잎에서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약을 쓰기엔 그렇고 해서, 나는 작고 긴 나뭇가지를 하나 들고 녀석들을 하나하나 쳐냈다. 그러자 레몬은 새순을 먹히는 일이 거의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쭉쭉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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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법을 아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관리를 해 주는 것도 아니어서 레몬은 열심히 꽃을 피워도 열매는 몇 개 열리지 않았다. 꽃에서는 자스민 향기 비슷한 좋은 향이 났고, 실내에 있는 녀석은 내가 붓으로 열심히 수정도 해 주었지만, 꽃은 무심히 떨어졌다. 해마다 몇 개의 레몬이 열렸지만, 맛도 별로였다. 노지에서 힘들게 자란 레몬에서는 레몬이라기보다는 라임의 쓰고 신 맛에 가까운 맛이 났다. 실내의 레몬은 약간 비실한 듯 자랐다. 그래도, 집에서 키운 것이라고, 요리에 쓰려고 거둘 때마다 작은 자부심 같은 것이 마음에서 솟았다. 올해엔 레몬이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튼실하게 열렸다. 아마도, 우리 집에서 자란 레몬의 가장 전성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묘목으로 만나 햇수로 4-5년이 되었으니, 그럴 시기라 짐작될 만하다.


한겨울을 앞둔 레몬나무에는 레몬이 샛노랗게 익었다. 비 맞은 레몬을 보니 이제 거두어야겠구나 싶다.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도 생긴다. 아마도 오븐에 구울 닭 속에 칼집을 넣어 통으로 집어넣게 되지 않을까.. 잠시 집을 비운 아들 녀석이 돌아오면 그렇게 통닭 오븐구이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해 본다. 나머지는 아내에게 부탁해 레몬청을 만들고,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 준 후 내년을 기대해야겠다. 내년은 나무가 좀 쉬려나.. 봄이 되면 열릴 꽃망울의 수가 나무의 상태를 알려줄 것이다. 씨는 따로 모아서 상토에 발아시킨 다음, 진료실로 가져가 키워 볼 생각이다. 커피나무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자라 커피체리를 맺는 환경이니 틀림없이 레몬도 잘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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