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32. 20190402

by 전영웅

그곳 시간으로 아침 6시면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너는 조금 힘들어 보인다. 그곳 학교 일정에 맞추느라 분주해 보이기도 한다. 아침마다 영상통화로 너를 깨우는 일을 아빠는 원칙처럼 여기고 있다. 화면에서 너를 볼 때마다 너는 항상 피곤해 보인다. 그래도, 엄마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이제는 시간이 되면 울리는 아빠의 영상통화 콜을 조금 귀찮아하는 네가 마음이 좀 편해졌나 보다 싶다.


아빠도 요즘은 조금 피곤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진료시간이 주중 오후 1시에서 9시까지로 변경된 지 한 달 반 정도가 되었다. 진료에 여유가 조금 생긴 듯하면서도 피곤과 무료함이 쌓인 이유들이 조금씩 보인다. 우선은 너와의 생활리듬을 함께 하려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아침마다 6시면 알람을 울려놓고, 되도록 바로 일어나 책을 읽다가 7시면 너에게 영상통화를 건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서 너에게 전화를 할 때쯤이면 날이 완전히 밝아져 있다. 밝아진 해가 아빠를 가만있지 못하게 만든다. 글도 쓰고, 마당일도 하고, 라이 녀석도 산책시킨다. 엄마가 너에게 가 있는 요즘에는 식사도 직접 준비하고, 빨래나 청소 같은 살림도 해 나간다. 해가 진 밤과는 달리, 해가 떠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기분에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병원에 출근하니, 일상이 조금 피곤해진다.


그리고, 오후 야간진료가 어쩔 수 없이 단조롭다는 점은 너에게는 조금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겠지. 어쨌든, 너와 아빠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정해진 일상을 살아나간다. 스스로 일상을 계획해서 살아가지 못하고 주어진 학교 일정에 네가 맞추어 살고, 정해진 병원 진료 시간에 아빠가 맞추어 산다. 그리고, 주어진 일정에 맞추어 사는 삶은 아빠의 평생과 한동안의 너의 인생을 채울 것이다. 그것이 너를 피곤하게 하든 말든 말이다. 아빠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조금은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너는 학교라는 주어진 일정을 살아가다 직업 등등을 결정해야 할 때, 아빠처럼 주어진 일정을 받아들이며 살 것인지, 아니면 네 스스로 일정을 계획하는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주어진 일정에 맞추어 일하고 산다는 것은 피곤할 수 있지만, 정해진 시간을 참고로 시간 계획을 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몇 시에 학교가 끝나면 그 이후에는 블로그에 올릴 이야기 작업을 계획할 수 있다. 일정 기간의 학교 수업을 마치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방학이니 좀 놀 수 있겠구나 기대하고 계획할 수 있다.


네 스스로 일정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은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자유롭게 일정을 만들고 스스로 관리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프리랜서라고 한다. 프리랜서들은 일을 스스로 만들거나 찾아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일정 기간 안에 완성해서 돈을 번다. 하지만, 일을 만들거나 찾고 그것을 완성해서 소득으로 이어가는 과정은, 정해진 일을 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받는 일과는 많이 다르다.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일거리가 없기도 하고, 작업하는 과정에 변동이 많아 쉽게 다른 계획을 짜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얼마간의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갑자기 일이 들어오면 취소하거나, 일을 포기하고 여행을 강행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정해진 벌이가 없으니 일이 들어오면 수익이 생기고, 일이 없으면 수익이 없다. 자유를 얻는 대신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


뭔가 필요 없는 이야기를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면 네가 좀 더 자란 후에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내용일 수도 있고 말이다. 아빠가 너에게 하는 이야기들이 항상 이렇다. 오늘 아침에도 그렇고, 요즘 영상통화를 하면 항상 세면대에서 양치를 하다가 엄마에 의해 핸드폰을 건네받더구나. 그게 좀 귀찮아 보이기도 하고 피곤해 보이는데, 너도 너무 이른 아침부터 정해진 시간을 사느라 힘들겠다 싶었다. 그게 생각을 물고 이어지다 보니 정해진 시간을 일하는 삶과 프리랜서의 이야기로까지 번졌다.


말했듯이, 요즘은 날이 일찍부터 밝아서 너와 영상통화를 하고 이 편지를 쓰면서 분주한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이제 아빠도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후에 봄맞이 바깥일을 하려고 한다. 지난주에 집 뒷마당에 핀 두릅을 따서 서울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보내드렸다. 오늘도 두릅이 좀 올라왔나 살필 것이다. 3주 후 즈음에 심을 작물들을 포트에 파종할 것이고, 비료를 사다가 텃밭에 뿌려줄 생각이다. 그러고 나서 출근하면 조금 피곤하겠지? 그래도 버텨야 하는 것이다. 역시, 너에게는 아직 어렵지만, 아빠는 ‘버틴다’는 말을 살아가는 데 일종의 원칙으로 간직하고 있다.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아침부터 출근해서 저녁과 야간을 번갈아가며 진료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너와 엄마가 오겠지. 아빠는 벌써부터 마음이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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