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매는 일은, 하루하루 조금씩 이어갔다. 고추모종의 높이를 앞지른 명아주와 흙을 빠듯하게 움켜쥔 바랭이들을 걷어내다 보니 어느새 6월이었다. 고구마를 심어야 했다. 이런저런 모종들은 거의 들어갔을 것이다. 지금은 참외나 수박, 그리고 고구마 같은 여름 덩굴식물을 심어야 한다. 여름덩굴이라고 했지만 실은 이들이 열매를 맺는 때는 늦여름이나 초가을이다. 고구마는 겨울의 초입에나 캐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적당한 계절의 흐름을 이루는 한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모종들인 셈이다.
아내는 조금 퍽퍽하고 단 고구마를 좋아한다. 고구마를 심는다고 했더니 밤고구마부터 외쳤다. 모종을 사러 가게에 들렀더니 호박고구마 밤고구마 등등의 익숙한 모종들이 보이는데, 진밤고구마라는 처음보는 이름의 모종이 있었다. 아내의 질문은 처음부터 ‘맛있어요?’ 였다. 모종가게 주인의 대답은 당연했다. ‘맛있어요.’. 약간의 설명이 앞에 접두어처럼 붙긴 했다. ‘이제까지 나온 고구마들 중에..’라는 설명이었다. 모종가격도 꽤 올랐다. 이전에 고구마 모종 2킬로에 8천원 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1킬로에 만 원을 달라고 했다. 취미로 텃밭을 하고 소소하게 거두는 것을 즐기는 입장에서도 이럴 땐 약간의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 먹는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거두고 원리적인 판단을 한다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은 소비에 있다. 사먹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세상,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하나 꺼내며 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쓸데없고 불필요한 생각들을 머릿속에 잠시 떠올렸다. 다른 모종들 중에 애플수박이라는 모종이 보여 4개 정도를 함께 사들였다.
모종 1킬로는 고구마 자리로 만들어 둔 두 이랑에는 당연 많은 양이었다. 간격을 생각하면서도 조금 촘촘히 심었는데도 모종은 반 정도 남았다. 양동이에 물을 채우고 모종을 담가두었다. 오가는 지인들에게 필요하면 가져가라 말할 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모종에 관심을 가지는 지인이 별로 없었다. 물에 담긴 뿌리가 썩기 전에, 나는 집 옆 공터 한 곳에 남은 모종들을 심었다. 땅 주인이 이것저것 구석에 심으며 놀리는 공터였고 가끔 우리집 마당 호스로 물을 주기도 했다. 지나가는 말처럼 구석에 심고 싶은 거 심으라고도 했으니, 자리 만들어 고구마 좀 심은 것 가지고 무어라 하지는 않을 거란 막연한 기대로 심었다.
비 없이 무더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여름의 시작은 강렬했다. 이미 뿌리를 내린 녀석들은 키를 높이고 길이를 늘리며 열매를 키웠다. 이제 막 심은 녀석들은 뿌리를 내리기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날들이었다. 고구마를 심은 이랑에 물을 열심히 주었다. 중간중간 이 빠진 자리에 심은 애플수박 모종에도 신경써서 물을 주었다. 이제 막 뜨거운 흙에 파묻힌 고구마 모종은 축 늘어져 허덕이다가 뿌려준 물을 먹고 선선한 저녁이 되면 줄기와 이파리를 세웠다. 애플수박은 무난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전에 심은 수박은 줄기를 길게 늘이고 꽃을 보이기 시작했다. 참외는 한동안 기후가 맞지 않았는지 조금 버거워하다가 이제야 자리를 잡고 줄기를 늘일 참이었다. 모든 게 나름의 모습대로 모양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내가 해 주는 일은 잡초들을 거두어주고, 지주대에 잘 고정해주고, 곁순을 정리해주는 일 따위들이다.
무더운 날들이 며칠 지나고 장마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마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우선 텃밭의 잡초정리는 마무리 되어야 했다. 뒤뜰의 잡초도 다시 매어줘야 했다. 집 뒤로 지나는 배수로 정리도 해야 했다. 반려견의 배설물로 만든 퇴비도 웃거름으로 뿌려주어야 했다. 생각할 수록 할 일이 점점 많아졌다. 하루하루 조금씩 시간을 더 배려하기로 했다. 이제는 아침에도 더웠다. 그런 건 생각할 겨를없이 나는 하루는 뒤뜰의 잡초들을 매었다. 그 다음날은 맞은편 밭담의 찔레와 잡초덤불과 우리집 쪽 환삼덩굴과 두릅으로 뒤덮인 배수로 경계들을 쳐 나갔다. 작년에 관리를 건너뛰었다고 배수로 주변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맞은편 밭담의 찔레가 뒤뜰로 넘어와 싹을 내고 있었고, 뿌리줄기를 무수히 뻗은 두릅이 여기저기서 줄기를 올리고 있었다. 톱과 전정가위를 들고 경계와 모서리를 따라 쳐 나갔다. 노출된 피부에서는 땀과 가시가 쓸리면서 나는 대번에 풀독이 오르고 말았다. 쳐 낸 가지와 덤불들은 모아서 바람 없는 밤에 모아 불태웠다. 배수로는 물이 흐르기에 장애물이 없어야 하고, 전원생활에서 정리된 나무 부산물이나 폐기물들은 처리할 방법이 없다. 조용히 태워서 부피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다.
아침부터 날이 흐린 날, 나는 폐드럼통으로 만든 퇴비통을 열었다. 위에 아직 부식되지 않는 배설물들을 한 쪽으로 모아두고 흙이 된 아래쪽 퇴비들을 삽으로 모았다. 반 년 동안 만들어진 양이 20리터 양동이로 네 개 정도였다. 텃밭으로 옮겨서 주로 호박이나 수박 고구마에 뿌려주었다. 오이에도 주었다. 텃밭 전체에 주기엔 턱없이 부족해서 ‘선택받은’ 모종들에만 줄 수 밖에 없었다. 퇴비를 다 나누어 뿌리고 나니 그 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생각했던 작업들이 거의 마무리되는 순간의 빗방울이었다. 나는 드럼통을 다시 제자리에 박아주고 퇴비 재료들을 안으로 집어넣고 EM액을 뿌렸다. 그렇게 나는 온 몸의 풀독을 안고 장마의 시작이라는 빗방울을 맞으며, 앞으로 주어질 얼마간의 여유를 기대할 수 있었다.
삽과 양동이를 물에 씻고 마당을 정리하는데, 마당 가장자리의 레몬나무 아래에 무성해진 애플민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리해 줄 필요가 있었다. 바로 가서 퍼지기 시작한 자리의 민트들을 뽑았다. 생각해보니 살구나무가 있는 구석진 자리의 잡초들을 매어주지 못했다. 텃밭을 보니 몇 주 전 김매며 지나온 자리들에 다시 잡초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시작된 줄 알았던 비는 다시 그쳤다. 네가 부릴 여유나 쉼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란 누군가의 비웃음 같은 것이 들려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