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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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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an 17. 2021

텃밭일기 #60, 20210117- 마무리

  봄이 되면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할 예정이다.  햇수로 6년이 되어가니, 집은 곳곳에 금이 생기고 틀어지고 비가 샜다.  북쪽 면의 금속 구조들은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녹이 슬고 도장이 벗겨졌다.  제주섬의 거센 바람과 바람에 배인 소금기 그리고 습기를 당해낼 자재는 거의 없었다.  여름 가을마다 혹독하게 몰아치는 태풍에 큰 문제없이 이제까지 살아왔음에 감사한다.  따듯한 봄볕을 받으며 꼼꼼하게 수리를 마친 우리집은 충실하고 재밌는 나의 놀이터로 계속 기능할 것이다.


  수리가 시작되면 마당의 반려견이 머물 자리도 잠시 옮겨야 한다.  아무래도 집과 떨어져 있는 텃밭이 녀석의 임시 거주공간이 될 것이다.  한겨울 텃밭에 손을 대지 않는 이유는, 일부러라도 손을 쉬자는 의미도 있지만, 녀석이 머물 공간과 작물들이 자랄 공간이 겹치지 않게 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땅파기를 좋아하고 흥분하거나 기분이 좋으면 발톱으로 흙을 긁어대는 녀석의 습성때문에, 겨울을 견디고 무언가를 여물고 있을 봄날의 작물은 녀석의 주변에서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올해 겨울 제주는 눈이 엄청 내리고 밭작물들이 냉해를 입을 정도로 춥다.  손을 쉬는 좋은 핑계와 우연의 행운이 나를 감싸니, 나는 이렇게 따뜻한 거실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올해 음력 3월 1일은 양력으로 4월 12일이다.  그 날이 지나면, 나는 밭에 무슨 모종을 심을까 고민하며 모종가게를 들락거릴 것이다.  그 즈음이면 집수리도 마무리 되었을 거고, 반려견 녀석도 마당의 제자리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봄날씨는 믿을게 못된다.  초여름같이 덥다가도 어느날에는 초겨울같은 추위가 오기도 한다.  이제 막 모종을 심었는데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 어느 봄날 어둔 밤의 노심초사는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러니, 어느 지인의 조언대로 5월을 넘겨 모종을 심을까 생각도 해 본다.  모종은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 호박 콩 정도 기본으로 심고 모종가게의 수많은 것들 중 맘에 드는 녀석들을 추가로 심을 것이다.  고추는 매운 것과 맵지 않은 것, 꽈리의 세 종류를 기본으로 심을 것인데, 해마다 모종 수를 조절하지 못해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심었다.  올해엔 그러지 말아야지 벌써부터 다짐하지만, 모를 일이다.  작년 서리태 콩은 오일장 한구석에 앉은 연세 지긋하신 할망에게 이천원어치를 구입해서 심었는데, 싹이 올라오는 모습부터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결국 태풍에 말라 죽어버렸다.  올해엔 씨앗을 구입하는 데, 연세지긋한 할망의 느릿한 손놀림에 마음을 주지 말아야겠다고도 다짐해본다.  이 역시 모를 일이다.  노련한 씨앗가게 아줌마의 시원시원한 말투와 손놀림 역시, 내가 지금 어수룩하게 보이고 있는건가 싶은 애매한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고 일상은 반복된다.  계절은 순환하며 일 년 단위로 반복된다.  계절의 반복에 텃밭도 반복되고, 계절의 순환에 텃밭 역시 풍경의 주기적 변화를 자아낸다.  거스를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반복 안에서 생존에 필요한 먹거리는 얻어진다.  인간의 노동이 조금 가미된 땅과 자연의 배려로, 신선하고 충분한, 때로는 넘치는 양의 채소와 과일들을 얻는다.  인간은 반복에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얻는다.  단순하고 지루한, 그러나 피할 수 없고 흥미로운 반복은, 자연 안에서만 존재가 가능한 인간의 가장 근본의 진리인 것이다.  마당 구석의 작고 아담한 밭뙈기는, 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몸을 놀리는 공간이면서도, 망각하고 있었던 진리를 되새기는 공부의 공간이었다.  나는 올해도 반복을 이어갈 것이다.  의무감이나 관성은 아니다.  이제는 삶을 구성하는데 꼭 있었으면 하는 그런 것이 되었다.  밥상에 김치가 없어도 될 일이지만, 김치가 없으면 허전함에 결국 찾게 되는 한국인의 습성처럼 말이다.

  텃밭에 관한 글을 써보아야지 생각을 하고 있다가, 문득 자세잡고 써내려가기 시작한 때가 2년 전이다.  교토역 부근의 어느 쇼핑몰 내 까페에서였다.  쇼핑을 하는 아내를 기다리며, 나는 까페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다.  더위가 조금 빠르고 날이 가물었던 5월 중순이었을 것이다.  마당의 반려견의 먹이와 물, 그리고 텃밭에 물뿌리기를 동네 친한 지인에게 부탁하고 날아 온 이웃나라의 고도 한 가운데서, 별 일 없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꾸준하게 써내려갔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은 글은 의미가 부실했다.  의미가 적으니 내용은 한주 한 주 겪었던 일들을 단순히 써내려가는 일기 수준의 반복이었다.  2년에 가까운 기록은, 그래서 더 쓴다고 크게 다른 내용이 없을 것이라는 자괴감을 남겼다.  


  글의 반복은 지루하고 의미를 덜하지만, 자연과 그 안에서 인간의 노동의 반복은 언제나 의미가 충만하다.  그것은 지루하지 않다.  기대는 본능처럼 샘솟고, 노동은 역치에 달한 자극처럼 반응한다.  그래서 텃밭을 기록하는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지만, 텃밭은 이제까지 해 왔듯 반복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제는 하지 않으면 내가 견디지 못할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깊이 가라앉아 바닥에 가까움을 느끼듯 겨울을 보내고 나면, 바닥을 딛고 서서히 올라 곧 경험할 심호흡에 기대를 품듯, 따스한 봄볕이 내리는 텃밭에 삽을 꽂을 것이다.  흐르는 땀에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을 느끼고, 오랜만의 반복에 손바닥에 올라온 작고 따가운 물집을 만지작거리며, 흙투성이가 된 옷차림으로 똑같이 지저분해진 반려견 녀석을 부담없이 안아 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삶을 채울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텃밭은 나에게 주어지고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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