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였다. 3월 첫날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바깥에서 들리는 빗소리였다. 따뜻한 이불 속의 여운을 느끼며 몸을 움츠리며 생각했다. 이제 몸을 움직여야 할 때가 왔구나. 한 해를 주기로 반복되는 몸의 움직임, 그 시작이었다.
비는 위에서 아래로 얌전하게,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바람 섞이지 않은 비가 제주에서는 귀하고 정겹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옷을 입고 마당에 나와 섰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와 쌓였다. 비가 오면 쉬어야 하지만, 쉬는 날에나 마당과 텃밭을 돌볼 수 있는 나에게 웬만한 비는 감당해야 할 부담이었다. 시기가 좀 늦긴 했지만 마당 나무들의 가지의 전정작업을 시작했다.
잔가지가 무성한 모과와 앵두 자두나무를 과감하게 전정하고, 옆으로 넓게 퍼지는 무화과 가지 역시 모양을 잡아가며 전정했다. 지난 가을 태풍에 뿌리를 다친 살구와 무화과 한 그루는 기가 죽은 듯 하여 안쓰러웠다. 전정할 가지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큰 숙제는 안방 앞 돌담에서 가지를 늘어뜨린 포도나무였다. 사다리를 놓고 돌담 위로 올라가 위로 무성한 포도나무 가지들을 정렬했다. 과감하게 자를 가지는 자르고, 간격을 두어 돌담 위로 남은 가지들을 늘어뜨렸다. 큰 줄기들은 지주대를 따라 자라도록 고정했다.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렸다. 차갑지도, 맥없이 젖지도 않았다. 더 맞고 있어도 기분이 좋을 그런 비였다.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겨우내 검게 말라버린 허브 덤불들을 가위로 쳐내었다. 전정한 가지들과 덤불들을 모아 뒷마당에 모았다. 뒷마당 한 켠이 금방 가득해졌다.
매화가 신경쓰였다. 2년 전부터 매화는 꽃을 제대로 피우지 않았다. 담너머 옆집의 매화는 꽃이 무성한데, 우리 매화 두 그루는 가지만 무성할 뿐, 꽃을 피우지 않았다. 신기한 건, 꽃을 몇 개 피우기는 하는데 꽃이 피는 위치가 땅에서 얼마 안되는 높이에서만 피우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을 해 본 결과, 매화 꽃봉오리는 참새들의 먹이가 되고 있는 듯 했다. 겨우내 매화가지는 떼지은 참새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매화나무 줄기와 바닥엔 하얀 새똥들이 촘촘히 묻어 있었다. 그 자리는 집 입구쪽이라 마당견인 라이녀석의 활동범위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니, 참새들은 매화나무에 앉아 솟아오르는 꽃봉오리를 여유롭게 즐겼을 것이다. 매화는 생각보다 가지가 억세다. 그리고,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하는 매화를 거두고 올리브나무를 심는 건 어떻겠냐고 아내가 말했다.
토요일 오전 진료를 마치고 오일장 옆의 자주 가는 농장에 들렀다. 적당한 크기의 올리브나무와 비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미세먼지가 약간 있는, 화창한 오후였다. 나는 뒷마당의 퇴비통으로 가서 통을 거두고 쌓인 퇴비 아래 충분히 삭은 것들을 삽으로 모아 텃밭으로 옮겼다. 퇴비는 몇 년 동안 모은 라이의 변과, 음식물 쓰레기 일부와 함께 삭힌 것이었다. 그것이 주변의 흙과 반응하여 퇴비통 주변의 흙은 양질의 흙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발열효과로 따뜻해서인지, 퇴비 안에는 튼실한 굼벵이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이걸 텃밭에 뿌리면 올해 여름은 풍뎅이들이 창궐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걱정은 일단 나중에 하고, 텃밭으로 옮긴 퇴비를 쪽파와 양파에 뿌려주었다. 나머지는 빈 텃밭에 골고루 뿌려 두었다. 다음날 비가 온다니, 비를 맞으면 알아서 양분으로 녹아 흙에 스며들 것이다. 그 전에 우글거리던 굼벵이들은 벌써 해를 피해 땅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 온 비료를 터서 반 삽씩 전정한 나무들 아래에 부어 주었다. 15킬로 한 포대가 딱 들어맞았다.
매화나무의 밑둥을 톱으로 잘라냈다. 뿌리까지 거둘 생각이었지만, 우리집의 역사와 같이한 나무둥치는 쉽사리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별 수 없이 밑둥은 남겨두고 베어낸 두 그루 사이 적당한 자리에 올리브나무를 심었다. 넉넉하게 땅을 파고, 흙과 퇴비를 적절하게 주고 덮어, 지주대를 세우고 마무리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예보대로 비가 내렸다. 양도 넉넉한 비였다. 시기를 잘 맞추어 필요한 작업을 마무리하면, 왠지 뿌듯한 기분이다.
겨울을 난 무를 뽑았다. 이번 겨울은 꽤 추웠다. 월동작물들의 냉해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 걱정을 안고 무를 뽑아두니, 아내는 동치미와 석박지를 담그겠다고 했다. 그리고, 걱정은 동치미와 석박지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냉해를 입은 무는 아삭함이 떨어지고 맛이 없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은 날씨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무를 뽑고나서 텃밭을 뒤덮은 광대나물을 골갱이로 거두었다. 봄이면 텃밭을 갈색줄기와 보라색 꽃으로 뒤덮어버리는 녀석들이다.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광대나물을 서둘러 걷어내는 이유는, 올해 텃밭은 멀칭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잡초들이 무성해서 덮은 비닐이 들뜨면 안될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 골갱이를 열심히 놀리는데, 허리가 뻐근하고 고관절에 무리가 왔다. 수시로 일어나 허리를 펴고 어기적거리며 걸어 텃밭을 나왔다.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라이는 언제 자기랑 놀아줄 거냐는 눈빛이었다. 쪽파는 일부러 두었다. 봄기운을 받고 좀 더 자라면 그 때 뽑아서 파김치를 담가달라고 할 생각이다. 양파는 열심히 성장 중에 있다.
누렇게 겨울을 난 잔디 사이로 초록이 듬성하게 보였다. 잡초들이다. 마치 잔디인 양 줄기를 낮게 깔고 옆으로 퍼지는가 하면, 마치 잔디잎인양 초록의 긴 잎들을 잔디모양으로 올리고 있었다. 잔디보다 훨씬 일찍 말이다. 작년에 선택적 제초제를 뿌렸음에도 마당은 다시 다양한 것들의 왕성한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결국 내 일거리들이다. 텃밭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전, 마당의 잡초들을 한 번 거두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르니 봄꽃들이 본격적으로 피어올랐다. 살구와 앵두가 그랬다. 그런데, 작년에 비하면 너무 듬성하게 피었다. 작년 앵두와 살구는 정말 풍성하게 열렸었다. 비교하자면 너무 큰 차이다 싶지만, 한 해를 쉬어가려고 하나보다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살구는 태풍피해도 있었으니 말이다. 올해의 봄이 시작되고 나의 노동도 시작되었지만, 순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은 언제나 그랬듯 나의 노동만큼 쌓여있었다. 이 역시 반복되는 진리지만, 텃밭은 노동과 순응의 어우러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