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텃밭일기 : 8월 8일

by 전영웅

날이 덥다. 에어컨 나오는 진료실에 앉아 하루 종일 일하는 내가 바깥 날씨를 제대로 알 리 없다. 그렇지만, 잠시 병원공간을 나와 건물 복도에 들어서면,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품은 열기에 바깥 날씨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의자를 펴고 앉아있는 한낮의 필로티 그늘은, 열기가 가득한 바람이 오가고 잔디를 내리꽂는 햇볕에 두려워지는 공간이 된다. 일주일 동안을 뭣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 사실을 깨우쳐주려 작정한 것처럼, 바람은 매섭게 뜨겁고 햇볕은 강렬했다. 종종 직업에 불평을 쏟아내는 나에게 일하는 환경의 행복을 애써 무시하지 말라는 듯, 날은 작정하고 열기를 나에게 휘감았다.


매섭게 덥고 추운 날들은 나의 무감각을 일깨운다. 일 년 내내 온도차가 별로 없는 공간에서 편안하게 일하는 다행의 감정을, 뻣뻣한 고개를 내리누르듯 겸손을 요구한다. 지금이 가장 더운날의, 그런 깨우침의 절정인 시기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 동안 느껴보지 못한 바깥의 열기를 느껴야만 하는 시간에 도착했다.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을 펼친 그늘에 앉았다. 모자와 긴 팔 셔츠를 입고,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긴 바지를 입은 차림이었다. 한여름 볕에서 일하려면 몸을 최대한 가리고 감싸야 한다. 더우니 최대한 시원하게 벗어야 한다는 것은 한낮의 더위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한낮의 더위에 일해야 하는 사람의 차림은 정반대이다. 가려야 탈수나 일사병을 피할 수 있고, 피부손상을 막으며, 모기떼의 공습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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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휴가, 그리고 일주일의 분주함에 텃밭은 나름대로 애써 생존하고 있었다. 휴가 말미에 내린 비를 마지막으로, 다시 일주일은 비가 없는 메마른 날이었다. 부유하는 느낌의 더운 공기도 그렇지만, 푄현상으로 한라산을 넘어 온 공기는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더운 공기를 더욱 메마르고 뜨겁게 만들었다. 비 없는 일주일 동안, 토마토 한 그루가 볕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죽었다. 수박덩굴도 이렇다 할 결실하나 없이 메말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텃밭의 가장자리에서 상태를 가늠하고. 나는 다시 필로티 그늘에 들어와 의자에 앉아 할 일을 구상했다. 토요일 오후, 더운 바람이 그늘을 관통하고, 매미소리가 시끄럽고 하늘을 지나는 비행기 소리가 살짝 낮았다. 잔디가 무성했고, 라이녀석이 돌아다니는 곳들로는 바랭이가 무리지어 쑥쑥 자라더니 꽃대를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다. 할 일은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마당 잔디부터 정리하고 주변 검질을 매는 일이 시작이었다.


라이녀석을 그늘로 데려와 묶어두고, 마당에 널부러진 호스를 치운 뒤, 잔디깎기를 들고 나와 마당을 밀었다. 대책도 없는 바랭이풀들은 뿌리채 뽑는게 원칙이지만, 워낙 많아서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게다가 더웠다. 한해 한 해가 점점 더워짐을 느낀다. 그 더위를 풀들도 느끼는지, 자라는 속도도 퍼지는 속도도 해마다 더욱 맹렬했다. 그저 전기로 돌아가는 쇠날에 줄기가 낮게 잘리기만을, 그래서 더디 자라고 꽃대도 상해서 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마당의 반을 민 다음 다시 필로티 그늘로 들어와 앉았다. 시원한 물을 들이키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잠시 쉬었다. 라이가 옆으로 다가와 땀으로 젖은 내 팔꿈치를 핥는다. 나도 라이의 머리와 턱 아래를 쓰다듬으며 애정을 표시했다. 뒤에서 멀리, 독채펜션에 놀러 온 아이들의 물놀이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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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휴가철이 되면, 바다에 가지 않는 일이 몇 년 전부터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제는 몸에 바닷물을 묻히고 모래가 묻는 일이 귀찮아질 만큼, 식구 모두가 나이가 들었다. 게다가, 한여름 바닷가 주변의 혼잡과 어수선함을 견디기엔 귀찮과 버거움이 이마 주름처럼 늘었다. 한동안 마당에 펼치던 인공풀도, 이제는 그것마저 귀찮아 꺼내지를 않는다. 얼마 전 우리 가족이 한 일이라고는 적당히 넓은 다라이에 물을 담아서 발을 담그고, 그 위에 테이블을 놓고 고기를 구워먹은 일이었다. 문득, 그래도 한여름인데 바다에 한 번 가야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벌떼처럼 보여든 사람들이 발산하는 자유분방을 느끼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것은 잠시 잠깐일 뿐, 이내 피로해져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차를 돌릴 게 뻔했다. 결론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 휴가철이 지나고 더위가 한 풀 꺾이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찾아 드라이브를 즐기면 그만일 일이다. 제주로 여행오는 사람들과는 달리, 제주에 사는 사람의 슬픈 변화이자 합리적 판단과 여유이다.


다시 마당으로 나가 잔디깎기를 밀어 남은 잔디를 깎았다. 전기예초기를 들고 집 진입로 구석을 밀었다. 기계들이 닿지 않는 곳들을 골갱이를 들고 다니며 검질을 맸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숨소리는 헉헉 들렸다. 다시 필로티 아래로 들어가 쉬며 물을 마신다. 라이는 다시 나에게 와서 땀으로 젖은 맨살을 핥는다. 애정과 충성심이 강한 녀석이다.


텃밭으로 들어갔다. 검질을 매면, 살아남은 검질이 뒤를 이어 공간을 채운다. 말하자면, 검질매기는 결국 검질을 위한 김매기나 다름없다. 본격적으로 달려드는 모기떼를 쫒아내며, 이랑과 고랑의 검질들을 뽑았다. 텃밭은 밀림 자체였고, 손을 대지 않아 여기저기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오이는 노각이 되어가고, 보이지 않게 자란 물외는 벌써 누렇고 둥글게 말려있었다. 토마토는 가뭄에 커지다 말고 빨개졌고, 가지는 이파리 사이로 숨은 보랏빛 눈물처럼 주렁주렁 매달리다 못해 줄기를 휘었다. 호박은 여기저기에서 애호박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커졌고, 고추는 말할 나위없이 너무 많았다. 바질은 꽃대를 올려 번식을 예고했고, 상추는 이미 꽃을 피워 이파리들이 쇠어버렸다. 텃밭 주인으로 매번 검질만 매다 말면 그만큼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거둘 것이 너무 많아도 힘들다. 먹을게 없을 때에는 그렇게 귀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너무 많아지니 가치가 낮아진다. 기대가 귀찮음으로 변하는 인간의 간사함.. 팔 수도 없지만, 팔려고 해도 제철 채소들은 제철을 맞아 가격이 많이 낮아진다. 인간의 간사함과 간사한 인간의 시스템에 맺은 것들은 가치를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다. 그래도 내가 키운 것들은 가치를 채워줘야지.. 나는 맵지 않은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을 좋아하고, 계란물을 묻혀 부친 호박전을 좋아한다. 가지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고, 바질잎은 그냥 먹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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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들어가 거두어야 할 것들을 거두니 양이 상당했다. 캠핑 테이블 위에 올리니 수북했다. 저녁약속이 있는 지인의 식당에 가져다 줄 것을 추리고, 남은 것들은 먹을 양만 남기고 병원에 가져가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더위는 주말 이틀을 필로티 아래서 보낸 나에게 현실이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되려 몸을 감싸야 했으며, 탈진하지 않게 물을 수시로 마셔야 했다. 라이를 산책을 시켜야 해서, 지인의 식당까지 거둔 것들을 담은 가방을 매고, 라이의 리드줄을 잡고 걸은 한 시간 남짓은 땀으로 목욕하는 일이었다. 어딘가는 소나기라도 쏟아진다는데, 내가 사는 어딘가는 물 한방울 조차 흩뿌리지 않았다. 아스팔트 위를 걷는 라이는 처음으로 내 뒤에서 힘겹게 뒤따라왔다. 평소에는 내 앞에서 리드줄을 몸으로 당기며 달릴듯 움직이는 녀석이었다. 깎은 잔디 위로 스프링클러를 돌리니, 쏟아지는 볕 아래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물줄기가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텃밭으로 다시 스프링클러를 돌리니 무성한 이파리 사이로 퍼지는 물줄기가 지쳐버린 생기를 그나마 독려하는 풍경이었다. 일요일 오후 맥주 몇 잔 걸친 몸으로 해지고 난 어두움을 맞이했다. 어둠 속에서도 공기는 더웠고, 주말의 흔적들을 정리하는데, 월요일 출근이 버거워도 이 더운 공간을 피해 쾌적한 곳에서 머무를 수 있다는 생각이 반가운 것이었다.


다시, 희망고문을 이겨내며 비를 기다리고, 무더위가 현실임을 종종 깨달아가며 몸의 무심함을 깨울 것이다. 갓 딴 풋고추를 씻어 고추장에 찍어먹으며 이 시기가 아니면 못 느낄 생기넘치는 맛에 여름을 즐길 것이고, 몸을 감싼 채 볕으로 들어가, 내가 아니면 관리되지 않을 공간을 다니며 풍경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면 선선한 가을이 오겠지.. 입추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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