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텃밭일기 : 7월 11일

by 전영웅

비가 내렸다. 무더운 주말, 많은 시간을 마당과 텃밭 정리에 쏟고나서, 조금 이른 시간에 시원하게 맥주 몇 잔을 마신 후, 이른 밤 노곤한 잠을 청하다가, 조용하게 투닥거리는 새벽 비 소리에 잠시 잠을 깼다. 반가웠다. 잠을 설치는 일이 싫지 않을 정도로 기뻤고, 가슴 속에서 불안하게 부유하던 무언가가 사뿐하고 안정되게 내려앉았다. 다시 잠을 청하고 동이 튼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고 나온 마당은 젖어있었다. 바람없이 차분히 내린 비는, 콘크리트 바닥에 처마 안과 밖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텃밭에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생기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흡족한 마음.. 호우주의보라 했다. 너무 많이 와도 일단은 좋으니, 감질나게 내리다 말지만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이 풍족한 마음에 반하는 이는, 비를 싫어하는 마당견 라이 뿐이었다. 녀석은 계속 비가 오니 자신을 필로티 아래 주차장으로 옮겨달라고 낑낑댔다. 나는 분명히 선을 긋고 안된다고 말했다. 눈치챈 녀석은 자기의 집으로 들어가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반가운 비였다. 지난 3주간,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이 시기에 산북인 제주시는 폭염과 습한 바람에 시달린다. 동남풍의 여름바람이 불어오면, 한라산을 넘어오며 푄 현상으로 덥고 습한 바람이 분다. 원래 푄 현상이 생기면 산넘은 바람은 건조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산 넘은 바람도 습기를 제대로 털어내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건조한 느낌의 바람일 뿐이었다. 그 바람이 한라산을 휘감으면 동북쪽 하늘에는 렌즈구름이 만들어졌다. 무더운 바람이 불 수록 렌즈구름은 두께를 더했다. 예전에는 렌즈구름이 생기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루이틀 만들어지다가도, 문득 하늘이 흐려지고 소나기같은 비가 갑자기 쏟아지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렌즈구름은 마치 그 하늘에 자리를 잡은 듯 며칠을 지속하고 수시로 만들어졌다. 그 의미는 덥고 메마르며,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비는 오지 않았다. 나는 수시로 예보를 보며,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렸고, 오지 않으면 직접 호스를 들고 텃밭에 물을 뿌렸다. 마음을 졸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분주했고, 불안하게 부유하는 가슴 속 무언가를 제자리에 두려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다행이라면, 손바닥만한 텃밭이라는 작은 공간을 두고 하는 걱정과 불안이라는 점이었다. 집 주변의 너른 밭들에 오가는 농부들의 마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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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는 희망고문이었다. 기상청은 시간단위로 예보를 내보냈다. 하지만, 그것을 믿으면 안 되었다. 오전에 확인한 예보엔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비가 오려면 하늘이 흐려져야 하는데,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아 다시 확인한 예보는 비가 올 거라는 시간이 6시간 이상 뒤로 밀려 있었다. 밤에나 오려나 싶어 퇴근하며 확인한 예보엔 비가 사라지고 대신 구름만 잔뜩이었다. 비는 그렇게 뒷걸음 치듯, 또는 무언가에 눌리거나 쫓기듯 점점 밀려났다. 다음 한 주 동안에는 비만 올 것이라는 예보도 마찬가지로, 시간단위로 비가 밀리면서 쨍한 햇볕만 구경하게 했다. 온다던 태풍 역시 경로는 수시로 바뀌어 결국 비구름 조차도 몰고 오지 않았다. 화가 났다. 비가 오는 일이야 하늘의 뜻이라 치지만, 예보를 할 거면 조금이라도 맞아야 하는데, 예보는 몇 시간의 차를 두고 희망고문만 남발했다. 그렇게 화와 짜증이 번갈아가며 어느 선의 정점을 찍었을 즈음,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예보를 보지 않았다. 그냥 시선과 마음으로 비를 기다리다가, 3일 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그냥 묵묵하게 호스를 집어들고 텃밭으로 가서 물을 뿌렸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새벽잠이 없어져서 오전 5시면 눈이 떠졌다. 좀 더 자려고 뒤척이다가, 또는 독서등을 켜고 침대맡에 둔 책을 펴고 읽다가, 6시 알람이 울리면 바깥을 확인했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그자리에서 바로 나가 마당과 텃밭에 물을 뿌렸다. 상수도 요금이 얼마더라.. 주택이니 농업용수가 공급되지도 않는다. 잘나가는 어느 가수가 공연에 물을 300톤을 쓴다고 했다가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던가.. 그냥 내 만족을 위해 취미로 운영하는 텃밭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비싼 상수도를 수시로 오랜시간 뿌려대는 나 역시, 이 가뭄을 공감 못하는 인지부조화의 인간인건가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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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도가 얼마건 간에, 사람이 뿌리는 물은 한계가 있다. 텃밭은 사람이 뿌리는 물로 만족하지 못했다. 녀석들도 버티는 정도랄까, 사람이 주는 물에 무럭무럭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고, 생기를 발산하지 않았다. 버티는 정도로만 인간의 마음에 위안을 던질 뿐이었다. 단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손바닥 만한 텃밭에서도 인간의 노력은 뻔히 한계를 드러낸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벽을 마주한 느낌..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 이상의 어떤 긍정이나 발전을 경험할 수 없는 분명한 경계.. 걸음을 더 이상 이을 수 없는 지점에 다다라, 어찌하지 못함에 마음이 착잡해지면 텃밭은 종교가 된다. 내가 애쓰고 노력했지만, 좀 더 애쓰고 노력하겠지만 이 이상의 결실과 나아감은 저로서는, 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나의 일을 관장하고 텃밭을 관장하는 전능한 어떤 존재여,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도맡아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미 지쳤고, 그래서 저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세상의 고난과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결국 자신의 의미를 상실하고 한계를 알아버린 아우구스티누스는 맞닥뜨린 거대한 벽 앞에서 절망에 찬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 뒤에서 지긋이 자신을 바라보는 무한자의 존재, 이제까지 그 무한자가 자신을 따라다니며 보고 있었음에 거대한 깨달음을 얻고 회심을 한다. 칸트의 이성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윤리와 도덕으로 만들어지는 행복역시 어떠한 모습인지 단정할 수 없다. 자연법칙 안에서 작동하는 감성이 관여하는 한, 인간은 그러한 관념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도, 모범을 보일 수도 없다. 이 분명한 한계, 인간은 어떻게 하면 인간 스스로 알아낼 수 없는 최고선을 알 수 있을까? 결국, 최고선을 제시할 수 있는 무한자를 불러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한계로 인해, 인간의 한계를 처절하게 깨닫고 완벽하게 부서졌을 때, 신은 그 지점에서 나타나 인간에게 길을 제시한다. 더 이상의 노력은 의미가 있는가를 고민하며 물이라도 뿌리며 발버둥치다가, 한계가 점점 더 명확해질 때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넉넉하게 추적추적, 무심하게 내리며 땅과 텃밭을 적시는 그 물줄기에 어찌 무한자인 신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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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오전 내내 내리다가 오후가 되어서 그쳤다. 비가 아예 안 오지는 않을 거라고 증명하듯 내린 비였다. 예보는 앞으로 며칠에 한 번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희망고문이지만을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퇴근하여 조금 어둑해진 공간에서 바라 본 텃밭에는 물기를 머금고 생기를 발산하는 녀석들이 노래부르듯 아우성이었다. 생기와 더불어 아침보다도 한 뼘씩은 자란듯 한 모습이었다. 검질을 맨 고랑 빈터에 기어이 뿌리를 내리고 다시 올라온 검질들은 작물들 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키가 크고 있었다. 비가 온전하게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나는 다시 한여름 뙤약볕 아래 다시 한 번 쪼그리고 앉아 검질을 매어야 할 것이다. 비가 그친 마당으로 라이녀석은 아빠가 왔다고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앞발을 들이밀었다. 비가 와서 흡족하고, 비가 그쳐 반가운 생명체들이 마당에 함께 있었다. 해질녘의 선선함을 타고 마당에 가만히 서 있는 생명들에 달라붙어 피를 빨려 하는 풀모기떼들이 분주하고 성급해진, 한여름 저녁이었다. 내 집 마당에서 얽혀 사는 모든 것들의 생기가 충만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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