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텃밭일기 : 7월 3일

by 전영웅

내 텃밭의 작물들은, 솔직히 말하자면, 잘 자라지 않는다. 결실이 풍성하지도 않다. 넉넉하다는 것은, 상대적 표현일 뿐이다. 한 집 식구 먹기엔 넘치도록 열리는 양일 뿐, 어디에 내놓기엔 알이 차지도 양이 많지도 않다. 물론 내다 팔려는 목적으로 하는 텃밭은 아니니 그다지 신경쓸 일은 아니다. 다만, 어째서 이정도 뿐인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십 년이 넘도록 벌이는 텃밭은 운이 좋아서 풍성한 적이 가끔 있었을 뿐, 언제나 고만고만한 소출이었다. 집을 짓고 한 자리에서 벌이는 텃밭은 이제 7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소출은 언제나 한결같이 딱 그만큼이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에는 내 조심스러움이 담긴다.


원인을 따지자면 바로 몇몇을 들 수 있다. 우선 동쪽의 옆집이 아침 햇살을 가리고, 남쪽의 3층 옆집이 한낮의 햇살을 가린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텃밭으로 그늘이 지나니, 온전한 볕을 받고 자라는 녀석들이 없다. 남쪽 가장자리는 그림자가 짧은 한여름에도 항상 그늘진다. 그 자리엔 무화과와 두릅 그리고 다른 나무들을 배치해서, 스스로 키를 키운 다음 알아서 볕을 받게끔 했다. 두 번째는, 집자리가 동네 지형으로 보아 바람이 지나는 자리다. 양측 언덕 사이 골진 지형이라 바닷가인 북쪽에서 바람이 불면 골이 지기 시작하는 우리집 즈음에서 바람이 거칠어진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골을 타고 내려오며 퍼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바람을 맞는 나무들은 일정한 크기가 되면 여지없이 바람에 가지가 꺾여 더 자랄 수 없다거나, 가지 끝이 바람에 타고 말라 더 이상 순을 내지 못한다. 그런 바람이 오가는 자리에 텃밭이 위치한다. 작물들은 심자마자 변덕스런 봄바람을 이겨내는 훈련을 받는다. 자의와 상관없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그래야 한다. 하지만 바람은, 이제 막 뿌리를 내리려는 녀석들이 감당하기엔 무척 버거워서, 어딘가에 기대지 않으면 잘 자라나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모종을 심자마자 지지대를 바로 옆으로 꽂아 세우고, 고추끈으로 묶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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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이유들을 내세우면서도, 마음에 민망함 같은 것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어서 녀석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떤 의심, 미심쩍음.. 해마다 나름 신경쓴다며 비료도 넉넉하게 주고, 검질도 잘 매어주고, 텃밭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에 자주 들어가 손을 대어 돌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텃밭은 달라지지 않았다. 해마다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소출로 나의 민망과 미심쩍음을 그대로이게 했다. 방치농법이라는 핑계도 대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 감정에 위로가 얹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올해도 같은 감정으로 텃밭을 바라본다. 장마라 하는 기간이고, 태풍이 올라온다고도 하지만,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태풍은 비껴같다고 변명을 더할 뿐이다. 민망에 변명을 더하고, 변명에 민망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잠시 주말 시간을 이용하여 여수에 갈 일이 있었다. 돌산대교와 장군섬을 바라보는 언덕배기 까페거리에서였다. 난간에 손을 대고 아래를 보니, 슬레이트 지붕 단층 허름한 주택이 보였고, 그 옆으로 손바닥만한 모퉁이 땅에 가지와 오이가 심어져 있었다. 가지는 잎과 줄기가 짙고 풍성했다. 가지도 열리기 시작했다. 오이 역시 지주대를 타고 오르는데, 줄기가 반듯하게 묶여 있었고, 줄기와 이파리는 굵고 짙은 초록이었다. 한 눈에 보아도 누군가 정성을 들여 제대로 키워내는 중이었다. 그 주변을 동네 길고양이들이 다니는 모습을 제외하고는, 잡초 하나 없는 황톳빛 땅과 단정하게 지어진 구획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 나는 어째서 저렇게 풍성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키워내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그 손길이 궁금했고, 비법을 물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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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가 비법을 몰라서 아무렇게나 키운 것은 아니다. 공부를 하지 않아서인 이유가 크다. 사실 민망함은 이에 비롯된다. 작물들은 방법을 달리하면 솔직하게 반응해준다. 제대로 키우는 법, 풍성하게 키우는 법에 대해 나는 제대로 알아본 적도 없다.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키우는 방법을 알아보려 한 적도 없다. 모종을 심고, 북돋움을 해 주는 시기, 비료를 주는 시기 등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비슷하게라도 주려 하지 않았다. 땅을 관리하는 방법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땡볕에 맨땅을 드러내서 수분보존을 게을리했다. 작물들은 만성적으로 목말라했고, 제대로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요즘같은 가뭄과 푄 현상으로 이는 더운 바람에는 내가 가끔 뿌려주는 물이 충분할 리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텃밭을 놀이터라 여기면서, 게으른 농법, 나름의 방치농법이라며 위안을 삼는다. 아니, 변명을 한다. 하지만, 검질은 악착같이 매는 농법이 방치농법일리 없고, 잘 자라지 않는 작물들을 신경쓰며 수시로 들어가 돌아보는 내 습성에 게으른 농법이라 부르기 어렵다. 태만한 농법이라고 부르는게 차라리 어울릴까 싶다.


텃밭을 시작한 이유는, 지극한 개인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미치지 않기 위해서’다. 일에 매몰되어 스트레스가 쌓이고 이성을 잃어 방종한 생활을 할까 싶어, 다른 뭐든 해보자 하다가 시작한 것이 텃밭이다. 그리고, 텃밭은 나를 미치지 않게 지탱해 주었다. 고추지지대에 고추 줄기가 묶여 바람에 나부끼지 않듯, 나도 텃밭에 기대어 정신이 나부끼지 않게 버티는 중이다. 마음이 좁아터진 나에게 한계 가까이 온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텃밭에서 해소했고, 여전한 심리 스트레스에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지금의 텃밭이다. 시작할 때에는 고추 곁순을 따 주는 것도, 토마토 곁순을 잘라줘야 한다는 것도 모른채였다. 텃밭에 들어서면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 그저 좋았다. 지금은 텃밭에 의지하고 기대는 심리의 한 면이 있다. 신경을 씀으로써, 생각과 긴장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나의 태만한 농법이 보이기 시작한다. 십 년을 넘도록 태만하게 운영했던 텃밭에 미안함이 생기고,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작물들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내리지 않는 비에 수시로 물을 뿌림으로, 그 불편함에 변명같은 손길을 더하는 정도일 뿐이다. 장마라지만 비 한 방울 없이 2주 내내 가물었고, 한라산을 넘어오는 남풍이 푄현상으로 건조하고 더운 바람으로 텃밭을 할퀴며 지나갈 때, 나는 오이망 위로 간신히 가는 줄기를 올리다 바람에 타버린 오이 이파리를 보며 민망과 미안이 두터워졌다. 검질을 맨 것들을 이랑 위로 널어 흙을 덮었지만, 흙은 좀처럼 물을 머금지 못했고, 드러난 맨땅에서는 다시 검질이 올라오고 있었다. 열리기 시작한 애호박과 오이를 거두고,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고추들과 가지 하나를 따서 요리했다. 살구처럼, 이제 거의 익은 블루베리를 조금 일찍 거두어 거실에서 후숙시켜 먹었다. 여전히 한 집 먹기엔 많은 양이라 부쳐낸 호박전 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부족할 것은 없다는 이유로 태만한 농법을 이어갈 것인가에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제는 쌓인 나이만큼, 하고 있는 것들에 조금이라도 제대로라는 것을 조금 더 얹어 쌓을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퇴근하자마자 오지 않은 비를 원망하며, 저녁 풀모기들에 드러난 팔을 물려가며 텃밭에 물을 뿌리며, 그런 고민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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