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팔 셔츠와 수건을 준비했다. 긴 바지와 모자도 챙겼다. 모자를 눌러쓰고, 셔츠를 입고 옷깃으로 수건을 맸다.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장갑을 낀 다음 골갱이를 집어 들었다. 토요일 오후의 볕은 뜨거웠고 공기는 습했다. 예보대로라면 비가 와야 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이라곤 주말밖에 없어서, 비가 오면 맞아가며 작업해야겠다 싶었었다. 비가 오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비 대신 습하고 무더운 날씨는 착실하게 가린 피부 안에서 훅훅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답답함을 선사했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아 마음 역시 답답했다. 땅은 조금 거칠게 말라 있었다.
얼마 전까지 비가 오다말다를 반복하다가 문득 날이 뜨거워졌다. 땅에 배인 수분이 열기에 증발해서인지, 공기는 더운 물 같았다. 공기가 습한 것과는 상관없이, 땅은 빠르게 말라갔다. 그리고, 그간 내린 비에 텃밭은 풍성해졌지만, 내가 원하는 작물들로만 풍성해진 것은 아니었다. 잡초들은 빠르게 자랐다. 비가 온 며칠 사이, 이랑에서 고랑에서 싹을 틔우고 준비하던 잡초들은 비를 맞자마자 줄기를 뻗어냈다. 땅은 초록으로 뒤덮였고, 작물들은 잡초들로 둘러싸였다. 꿀풀들은 땅 깊이 뿌리를 박았고, 바랭이들의 뿌리는 땅을 넚게 거머쥐고 줄기와 잎을 넓게 펼쳐 땅을 뒤덮었다. 명아주들은 고추 옆에서 키를 추월해 자랐다. 조금만 더 두면, 작물들을 뒤덮어버릴 기세였다. 초여름인 이 시즌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잡초들이다. 제주에서는 검질이라고 하는 이 녀석들은, 정말 빠르게 자라고 퍼진다. 뒤돌아서면 한 뼘씩 자라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닐 정도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시즌에 텃밭을 한 달 이상 방치했다가, 길고양이에 당한 새둥지를 잡초덤불 속에서 발견한 적도 있었다.
온 몸을 감싸고 텃밭에 들어가 고랑 하나를 앞에 두고 쪼그려 앉았다. 무장하듯 온 몸을 감싸면 오히려 볕을 덜 받아 땡볕을 견딜만 하다. 피부를 최대한 가리면 모기에 물릴 확률이 적어지고, 풀에 직접 닿아 두드러기가 생길 일도 없다. 볕에 노출되지도 않으니 피부가 손상될 일도 적다. 하지만, 시작부터 몸은 땀으로 젖기 시작하고, 인간의 몸은 전신의 피부로 숨을 쉰다는 말을 깨닫게 된다. 왼손으로 잡초들의 밑둥을 가볍게 거머쥔다. 오른손에 잡은 골갱이의 날을 뿌리 옆 흙에 박고 긁으면, 잡초들의 뿌리가 걸려 흔들린다. 왼손으로 잡은 잡초들을 살살 당기고, 뿌리에 걸린 골갱이의 날에 오른팔의 힘을 살짝 주면, 메마른 흙이 땅에서 튿어지듯 잡초가 뽑힌다. 그렇게 잡초를 거두어가며 쪼그려 앉은채로 앞으로 나아간다. 고랑은 좁다랗다. 두 발을 모으고 앉기엔 좁고 불편해서, 한쪽 발은 앞으로 두고, 반대쪽 발은 뒤로 두고 발등을 꺾어 중심을 잡는다. 앞으로 숙인 허리는 그 자세에서 부담을 가중시킨다. 부담은 그대로 허리와 골반의 통증으로 발현된다. 점점 가중되는 통증을 느끼면서,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며 검질을 맨다. 더 이상 참지 못할 통증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검질을 매려고, 손은 점점 빨라진다. 그러다 통증이 거의 쌓였다 싶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허리를 편다. 허리에서는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고, 고관절 언저리에서는 겨우 피가 통하는 것 같은 저릿한 통증이 생긴다. 잠시 고랑을 빠져나와 그늘로 들어가는데, 발걸음은 어기적 거린다. 허리가 살짝 뒤로 펴지고, 어기적거리는 걸음에 모양새는 안짱다리가 된다. 농사일을 오래 한 할아방이나 할망들의 걸음걸이가 어째서 어기적거리는 모습인가 하는 궁금증에의 해답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허리의 통증간격도 해마다 줄어든다. 이전엔 고랑 두개를 앉은 채로 검질을 매곤 했었다. 그러다, 고랑 하나를 겨우 매고 훅훅거리는 숨으로 그늘로 잠시 대피하더니, 이제는 고랑 하나를 반 쯤 매다가 허리통증 때문에 일어나서 그늘로 들어왔다. 몸이 점점 고달파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통증도 양상은 더욱 깊어져서, 예전엔 단순한 통증이었는데 점점 뻐근함과 저릿함과 곳곳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다양하게 뒤섞이며 나를 괴롭혔다. 이러다 잘못하면 담 걸려서 걷지도 못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충분히 쉬어주고, 물을 넉넉히 마시고, 작업시간을 좀 더 짧게 잡았다. 볕 아래와 그늘을 오가며 천천히 검질을 매었다. 그렇게 주말 오후시간을 보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이 흘렀고, 해는 길었다. 라이는 간만에 아빠가 마당을 오가며 한 번씩 쓰다듬어주니 신이 나서 팔과 다리를 핥아댔다.
매어 준 검질들은 그대로 작물이 심겨진 이랑 위로 걸치듯 널어두었다. 주말 이틀간 검질매기 작업을 했고, 이틀간의 무더위에 널어둔 검질들은 금방 시들고 말라서 이랑을 밀착하듯 덮어주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이랑과 고랑의 구분이 매우 선명해졌다. 초록은 나란한 줄을 서듯, 가지런했다. 누군가는 그냥 방치해도 상관없다는 방치농법을 말하고, 누군가는 잡초가 낮게만 깔리도록 키가 큰 것들만 잘라주어도 된다고 했다.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뭔가 안한 것 같고, 생각없이 게으르게 보이는 것 같아서, 성정을 참지 못하고 그렇게 훅훅대며 검질을 맨다. 그러고나면 속은 시원하지만, 검누렇게 드러난 저 흙바닥은 나중에 비가 와도 바로 내리는 땡볕에 수분을 날려버릴 구멍과도 같을 것이다. 걱정은 이래도 저래도 마찬가지다. 내 속이 시원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만 있을 뿐이다.
마당 주변의 웃자란 잡초들을 함께 정리했다. 이랑과 고랑으로 나뉜 텃밭은 작업 후의 성과가 보이는데, 마당은 땀흘리며 작업해도 모양새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마당일이 원래 그렇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깨닫고 있어 별다른 아쉬움은 없었다. 검질을 매면서 텃밭의 작은 변화들을 관찰했다. 애호박이 달리기 시작했고, 오이 하나는 작게 매달리다가 익었다. 거두어 저녁식사거리로 만들었다. 고추가 심심찮게 매달리기 시작했고, 가지가 자줏빛 물방울처럼 맺히기 시작했다. 수박이 줄기에 하나 씩 서너개가 매달린 것을 발견했다. 좀 더 잘 자라라고, 수박이 없는 줄기를 잘라주었다. 참외는 톱날 노린재들에 시달린 탓인지 이파리에 구멍이 많이 생겼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액을 빨아먹고 짝짓기를 하는 녀석들을 죄다 털어냈다. 다시 붙겠지만 말이다. 일요일이 다 가는 저녁 즈음의 텃밭과 마당은 뿌듯했다. 이제 비만 오면 된다. 장마라고 했지만 비 예보는 이틀이나 물러나 있었다. 다시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어 아픈 허리와 골반과 허벅지를 위로한다. 비가 많지 않을 거라는 올해의 장마는 이 일기를 쓰는 순간에도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내려주면 좋으련만.. 장마를 앞두고 이른 아침 졸린 눈으로 텃밭에 물을 뿌릴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