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텃밭일기 : 6월 26일

by 전영웅

올해엔 살구나무에 살구가 한가득 열렸다. 한 가득이라고 하기에도 벅찬, 가지가 휘어질 정도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하늘을 향한 가지들은 살구를 주렁주렁 매단 채 기어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옆으로 자란 줄기들은 매달린 살구더미에 힘을 잃고 아래로 휘어버렸다. 작년에는 해거름을 하는가 싶게 살구가 몇 열리지 않고, 매달린 것들도 볼품이 없었다. 그러더니 올해엔 너무 많은 살구가 열렸다. 그냥 익을때까지 두고 새들과 풍뎅이들과 나누어 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양이었다.


살구나무는 대략 8년생이다. 해거름을 했지, 살구 맺는 일을 잊은 적은 한 해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엔 가장 많은 살구를 매달았다. 알도 나름 굵직했다. 참새들이 잠시 살구 가지에 앉았다 살구를 살피다가 지나갔다. 아마 내가 출근한 후엔 직박구리 몇 마리도 그렇게 살구를 살피다 날아갔을 것이다. 나무는 라이녀석이 지키기엔 마당에서 멀찍이 떨어진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휘어진 채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니, 문득 새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창고에서 사다리를 꺼내어 들고 가서 살구나무 아래 펼치고 사다리에 올라 살구를 골랐다. 특유의 살구색으로 익은 살구들 사이에서 손으로 쥐어 살짝 힘을 주면 과육이 살짝 들어가는 익은 것들을 먼저 골라 거두었다. 먹어보니 신 맛이 약간은 있었으나 대체로 폭신하고 달았다. 그대로 거실에 이틀을 두었다. 상처가 생긴 살구껍질이 조금 검어지긴 했지만, 맛은 잘 들어서 신맛이 사라지고 단맛은 더욱 깊어졌다. 나는 양 손으로 작은 살구의 꼭지부분을 잡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벌렸다. 과육이 살구 겉의 골을 따라 갈라졌고, 갈색의 딱딱한 씨앗이 과육과 분리되며 벌어졌다. 나는 반쪽씩, 한 입에 넣었다. 탄탄한 듯 하다가 무르게 살구가 으깨졌다. 색상만큼 폭신한 단 맛이 약간의 신 맛을 주변에 두고 입 안에 퍼질 때,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만족을 느낀다. 굳이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마치 익숙한 침대 위의 포근한 베개에 머리를 옆으로 누인 것 같은 당연한 만족감.. 그 당연함 때문에 내 손은 다시 다른 살구를 집어들고 같은 방법으로 과육을 쪼갠다. 숨 쉬는 것 같은 당연한 만족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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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3년차의 어느날 이른 아침, 회진을 마치고 병동 오더를 아랫년차에게 정리해 준 다음, 나는 당직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날은 마침 수술이 없었고, 간만의 여유는 전날의 밤샘당직으로 피로해서, 쪽잠에 내 줄 참이었다. 잠이 들려던 찰나, 당직실의 전화가 울렸다. 받아보니 병동이 아니라 행정실이었다. 행정실에서 전화가 올 일은 일 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 할 일이었다. 당직실에 간만에 전화를 거는 행정실 직원도 어색한 목소리였지만, 상황은 더욱 어색했다. 누군가 나를 찾길래 혹시나 해서 당직실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바로 전화를 돌려주고 난 뒤, 들리는 상대의 목소리는 중년의 여자 목소리였다.


“영웅이니? 나 ㅇㅇㅇ야.”


그녀는 자신을 이름으로 소개했다. 나에게는 거의 30년만에 듣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차마 자신을 너의 엄마라 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자기를 알렸다.


“잘 지내셨어요? 안 그래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수소문 중이었어요.”


졸음으로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가라앉은 목소리만큼, 내 감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30년만의 통화는 그렇게 겉과 속이 아무렇지 않았다. 이제와서 왜 연락을 하는지 화를 낼 수도 있었고, 보고싶었다고 그래서 찾고 있었다고 기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너무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스스로가 낯설었다. 몇마디를 간단하게 나누고, 만날 날짜와 시간약속을 정하고, 어머니와 나는 전화통화를 마무리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는 털썩 침대에 누운 다음, 핸드폰을 들고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가 먼저 연락을 하셨어.’


며칠 후 주말에 약속장소로 나갔다. 아들녀석은 유모차에 데리고 다닐 만큼 어렸다. 멀리서 보이는 어머니는, 내 어릴 적 기억 속 젊고 탄탄하며 아름답던 모습과는 달리 깡마르고 주름져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가느다란 손에 힘을 주어 내 손을 잡으셨다. 힘을 준 연약한 손길에 나 역시 애정을 담은 손길로 감싸 안아드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의 기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고 익숙한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그저 조금 오래 보지 못했을 뿐.. 나는 다시 내 스스로에게 왜 이러는지, 이렇게 무덤덤해도 되는 것인지 반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란 것은 내가 어찌한다고 해서 터져나오거나 싸늘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잘 지내왔고, 스스로 잘 살아가고 있으며, 지금의 모습은 이러하다고 말없이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있었다. 며느리의 손을 잡고, 손자인 아들녀석을 품에 안아보시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머니는 내가 세 살 때, 그리고 바로 아래 여동생이 한 살 때 집을 떠나셨다.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나는 지금도 그 분명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내가 듣는 것은, 당시를 살아가던 가족구성원들 각자의 사연 중, 어머니의 사연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종종 내 옆을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셨다. 그러다가, 본인은 아예 우리를 잊고 살아가기로 작정하셨다고 했다.


그러던 중 몸이 이상해서 진료를 받아보니, 수술을 피할 수 없는 혹이 몸에 생겼다는 판정을 받았단다. 수술도 외과영역에서 가장 큰 수술이었다. 그렇게 수술을 받고 고통과 답답함에 병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데, 문득 아들과 딸이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었을 때에,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수소문을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행정실 직원도 당황스러워 할 그 상황을 거쳐 나에게 연락이 닿은 것이었다. 나 역시, 군 전역을 하고 전공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머니가 어디서 어떻게 사시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노력은 동사무소에서 내 가족의 이력에 적힌 흔적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멈추었고, 나는 그대로 전공의라는 반 감옥같은 삶에 매몰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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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이야기가 나온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지방에 사시던 어머니는 시간이 되는 주말이면 나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오셨다. 일요일의 피로한 여유를 어머니와 몇 번을 보내던 중, 문득 어머니가 나에게 물어보셨다.


“아들은 무슨 과일을 좋아하니?”


글쎄,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 앞에 있으면 아무 생각없이 계속 집어들었던 살구가 생각났다. “글쎄요.. 딱히 아주 좋아하는 과일은 없는데, 살구가 있으면 그냥 계속해서 먹게 되더라구요.”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놀란 듯 변했다.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너 정말 살구 좋아하니? 정말 놀랍고 신기하구나.”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셨을 때, 어머니는 출근하는 아버지에게 살구가 먹고 싶다고 하셨단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과일이었는데 갑자기 살구가 미치도록 드시고 싶으셨다고 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검은 비닐봉지에 살구 열 몇 개를 사오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앉은자리에서 열 개가 조금 넘는 살구를 다 드셨는데, 지금도 생각이 날 만큼 그렇게 맛있었다고 하셨다. 그 전과 후로 어머니는 살구를 잘 드시지 않았다고 했다. 유독 그 때, 내가 자신의 뱃 속에서 모양을 갖추어가고 있을 때, 그 시기에만 살구가 그렇게 맛있었다고 하셨다. 무심하고 익숙하게 집어들었던 살구는 이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과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살구를 통해 희미하되 절대 끊어지지 않는 어떤 연결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함을 의식하지 않아도, 살구는 여전히 무심하고 익숙한 과일이다. 폭신한 단맛과 언저리의 신맛이 너무 당연해서, 절대 어색해지지 않을 그런 상대인 것이다.


미국의 비평가이자 여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은 10킬로가 넘는 살구를 집안에 들인다. 자루에 담겨 서로 눌리면서 짓무르고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는 살구를 바닥에 펼치고, 상한 것들을 골라낸다. 그럼에도 살구는 차고 넘쳐서, 전부 살구잼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노동을 해야 할 것인가 푸념하기 시작한다.


살구는 어머니가 살던 집 마당의 나무에서 동생들이 거두어 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알쯔하이머 병으로 투병 중이었고, 그래서 어머니의 집은 2년 넘도록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되어 있었다. 작가가 보아오던 어머니의 모습은 점점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생소한 인격으로 변하고 있었다. 길을 자주 잃었고, 방금 전 하던 일이 무엇인지, 지금 자신이 어째서 여기 있는지 수시로 망각했다. 그러는 자신의 불안을 항상 딸을 불러 의지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불평했다. 아들이 둘 씩이나 있고 집도 가까운데, 엄마는 어째서 일이 생기거나 불안하면 항상 자신에게만 연락하냐고 말이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너는 작가잖니.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가끔 글이나 쓰곤 하는데, 남는 시간에 나를 좀 도와주면 안되는 거니?”

어머니는 절대 아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아들들에게는 어머니로서의 정정한 모습을 보이고 싶을 뿐이었다. 결국 작가가 두 형제에게 직접 연락을 해 어머니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그러다 본인에게도, 집에 간병인을 두는 것에도 한계가 보이자, 어머니를 요양보호소에 보낸다. 비어버린 집을 방치할 수만은 없어 팔기 전에 나름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남동생은 어머니집 마당의 살구나무에 열린 살구를 모조리 따서 작가에게 내맡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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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로든 글을 써내는 작가겠지만, 살구는 글 이전에 작가에게 던져진 열쇠였다. 작가는 살구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푸념과 애정을 펼쳐놓는다. 나 역시 살구는 텃밭의 풍경을 묘사하는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해마다 의식적으로 던져지는 소재가 되었다. 나는 살구를 통해 내 어머니를 생각하고 글의 주제로 써내려간다. 리베카 솔닛이 살구를 다듬으며 던진 푸념처럼, 나는 어머니에게 어째서 이제와서 연락을 하는지, 서운함과 어떤 분노를 표현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마음 둘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해 방황했던 내 인생 초반의 슬픔과 서러움을, 30년만에 마주한 어머니에게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고 안도할 수 있었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담담하다. 유난히 풍년인 살구를 거두어 거실에 두고 숙성시킨 채 하나하나 쪼개어 먹는 그 익숙한 행위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리지 않는다. 다만, 유난하게 익숙한 이 맛에 정말 그런 것인가 하는 혈연의 희미한 끈을 느끼며, 사라지지 않는 끈에 본능같은 당연함이 내 입과 몸을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단지 그것 뿐이다. 풍년인 살구는 예년보다 좀 더 오래 내 곁을 머물 것이고, 시간이 지나 점점 물러지는 살구들이 아까워 아내는 설탕을 사다가 살구청을 담그고, 살구잼을 만들었다. 올해의 나는 담담하게 의식하는 혈연의 끈을 오래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감정이나 심리적으로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30년만에 다시 만난 아들이 여전히 반갑고 고마운데,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 역시 숨기지 못하는 어머니 마음의 가장 큰 이유이다. (에세이 63. 편을 다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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