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의 피해가 제법 있었다. 예보와는 달리, 조금 센 바람이 불다가 자정 쯤 고요해졌다. 생각보다 약한 듯 해서 현관으로 피신시킨 라이를 다시 마당에 내보내려도 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불어닥치는 바람이 심상치 않아 관두었는데, 새벽내내 불어닥친 뒷바람이 강력했다. 날이 밝고 바람이 잦아든 아침에 텃밭을 둘러보니, 살구와 무화과 나무 두 그루가 쓰러져 있었고, 텃밭은 한 방향으로 모두 누워 있었다. 누운 방향으로 제껴진 잎들은 전부 까맣게 시들어 있었다. 당장은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착잡한 마음으로 텃밭을 살피기만 했다. 마당으로 다시 나온 라이는 답답했다는 듯 마당 가장자리로 시원하게 소변을 누고 있었다.
가늠하기 어려운 태풍이었다. 매우 강한 세력의 태풍이었고, 제주섬 일부가 태풍의 눈에 들어갈 것이라는 경고에 잔뜩 긴장을 했었다. 태풍이 온다는 시간에 맞춰 병원 휴진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직원들을 일찌감치 귀가시켰다. 나도 집에 들어와 바람에 날릴 수 있는 집기들을 정리했고, 쏟아지기 시작한 비에 새는 곳과 들이치는 곳은 없는지 집 곳곳을 체크했다. 고질적으로 새는 보조주방 이음새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고, 포기한 마음을 아는지 비는 자연스레 새고 있었다. 물받이 조처를 하고, 라이를 현관 안으로 피신시켰다. 그런데, 강력하다는 태풍은 조금 이상했다. 비는 많이 쏟아지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강하지 않았다. 제대로 불어오는 태풍바람은 빗물을 벽에 밀어넣었다. 일부 블럭 틈새가 빗물에 젖어 선명해지곤 했었다. 힌남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 자정 즈음에 태풍의 눈 안으로 들어온 건지 세상이 고요했다. 강력하다면 태풍의 눈 안으로 들어오기 전 엄청난 상황을 겪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정도라면 그냥 답답해하는 라이를 마당으로 내어도 되겠다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은 달랐다. 텃밭이 이를 증명했다. 모두가 아는 대로, 포항은 물에 잠긴 도시가 되어버렸다.
이틀 후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병원은 목요일 오후가 휴진이었으므로, 나는 목요일 오후부터 연휴가 시작되었다. 이번 추석은 제주에 머무르기로 한 일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 텃밭을 손보아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긴 팔 긴 바지 작업복을 입고 텃밭에 들어갔다. 물외가 타고 올라가 두었던 지지대를 모두 해체했고, 바람에 너덜거리는 물외를 거두어버렸다. 호박도 바람을 탄 녀석들은 모두 거두었다. 쓰러진 가지와 고추는 일으켜 세우면 되었지만, 상태를 먼저 봐야 했다. 세워도 가망이 없는 녀석들은 모두 뽑았다. 뽑은 자리는 지지대를 정리하고 검질을 매 줬다. 고추와 가지의 3분의 2가 사라졌다. 바질은 형체도 없이 모두 말라버렸다.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정리된 자리는 가을 텃밭 자리를 고민하던 나에게 해결책이 되었다. 마음아프게 뽑아냈지만, 그 자리는 그대로 가을텃밭 자리가 된 것이다. 검질을 매고 자리를 정돈한 뒤에, 일주일 전에 사 온 상추와 배추모종을 심었고, 쪽파를 심고 무 씨를 뿌렸다. 방금 전 아팠던 마음은 순식간에 넉넉한 마음이 되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기분의 변화는 무얼까 싶었다.
바랭이들의 수풀이 되어버린 마당을 잔디깎기로 밀었다. 바닥의 전기톱날이 빡빡하게 돌아갈 정도로 무성하고 질긴 녀석들이었다. 이제는 손으로 검질을 매기 힘들 정도로 무성해져서, 다시 줄기들이 올라오면 그 땐 선택적 제초제를 살포할 생각이다. 라이는 잠시 마당 구석으로 피신시켜두고, 마당과 뒤뜰에 살포하면 약 반 년은 맘이 편할 것 같다. 군입대하는 청년의 머리처럼 빠듯해진 마당을 만족스럽게 둘러보고는 구석의 쓰러진 나무들에 갔다. 옆으로 가지를 길게 늘인 무화과와 가지가 굵고 무성한데 뿌리가 부실한 살구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각각의 가지들을 톱으로 잘라 균형을 잡고 다시 세워 흙을 북돋아주었다. 무화과 뿌리 주변은 돌을 올려 뿌리를 덮은 흙이 탄탄해지도록 했다. 살구나무 역시 그렇게 했지만, 뿌리가 고르게 자라지 못하고 한 방향으로만 퍼져 있었다. 그러니 무게를 지탱하지 못했던 듯 했다. 다시 세우고 나무지지대를 받쳐주었다. 하지만, 살구나무는 제대로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몇 번의 태풍이 올 예정이라고도 했다. 새로운 나무를 들여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쳐낸 가지들과 뽑아낸 작물들을 뒤뜰에 모아 쌓았다. 허전할 정도로 비었던 자리가 태풍 한 번 지나가자 키높이만큼 나무들로 쌓였다. 그대로 두고 마르면, 날이 좀 더 서늘해지고 바람이 없는 날에 태울 생각이다.
추석 연휴는 하루 올레길을 걸은 것 말고는 집안일의 연속이었다. 맘에 들지 않는지 라이가 잘 들어가지 않는 집을 교체해주기로 했다. 2년 전 내가 자재를 사서 직접 만든 개집이었다. 녀석의 몸 크기에 맞춰 만들었는데, 비가 오는 때 말고는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만들어 주어야겠다 생각하고 작업을 구상했지만, 최근 많이 오른 자재가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맘 편히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태풍 전에 도착한 것을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연휴기간에 만들었다. 어렵지는 않았다. 설명서대로 면을 맞추고 나사 몇 개 박으면 되었다. 크기도 모양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가볍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제주는 바람이 많은 동네라 가벼운 것들은 웬만해선 다 쓰러지고 날아간다. 태풍을 겪은 지 며칠 안 되어 더욱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기존의 집 아래 바닥으로 사용한 파레트를 분해해서 새로 장만한 개집 아래 대고 나사로 고정시켰다. 그것도 불안해서 밧줄을 둘러서 단단히 매어 고정했다. 그제서야 무게가 생기고 안정적인 개집이 완성되었다. 틈새는 집에 남은 실리콘으로 메워 나름의 방수작업까지 완료했다. 바닥이 분리되어버린 기존의 개집은 나사를 모두 뽑고 판자들을 분리해서 뒤뜰에 쌓았다. 분리한 판자들 중 상태가 괜찮은 것들은 라이의 물그릇용 가림막을 보강하는 데 재활용했다. 나머지는 뒤뜰로 가져가 쌓았다. 이 역시 나무가지들과 함께 잘 마르면 태울 생각이다.
배추모종을 심고 이틀간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사 두고 일주일 이상 포트에 방치한 것이 화근인 듯 했다. 모두 시들어가고 있었다. 충분히 물을 주었는데도 말이다. 포트에 남은 모종들도 흙이 충분히 젖었는데도 시들어갔다. 함께 샀던 상추모종들은 뿌리를 잘 내리고 있었다. 모종을 다시 사서 심을까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방제도 힘들고 거름을 충분히 주어도 잘 자라지 않는 배추들을 올해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월동하면 더 맛있고 활용도도 훨씬 좋은 쪽파와 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시들어버린 배추이랑 두 개에 하나는 쪽파를 더 심고, 하나는 무를 뿌렸다.
그렇게 텃밭을 손보고 정리하는데, 바로 앞의 월계수와 올리브나무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너무 다닥하게 붙어서 서로 답답하게 자라는 녀석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올리브가 훨씬 키가 컸고, 월계수는 가지 몇개를 간신히 위로 올리고 있었다. 월계수는 위를 쳐 주고, 올리브는 아래가지들을 쳐 주면 서로 층을 두고 위아래로 나름 사이좋게 자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가지를 쳐 주는데, 사이로 새둥지 하나가 보였다. 이미 주인들은 사라지고 없는 둥지였다. 두 나무가 다닥하게 붙어 얼마나 은밀했으면 여기에다 둥지를 틀었을까.. 라이가 수시로 올리브나무 아래서 위를 한껏 쳐다보며 주시하곤 했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파종 후 이틀이 지난 무의 떡잎들이 줄을 지어 올라왔다. 쪽파의 순도 함께 올라왔다. 속도가 참 빠른 녀석들이었다. 솎아주고, 거름을 주고 그냥 그대로 겨울을 나는 동안 두면 된다. 중간에 몇 개는 뽑아서 직접 잡은 농어 매운탕에 넣을 것이다. 가을 텃밭은 주로, 이에 목적을 두고 있다. 쪽파는 돌아오는 봄 즈음에 거두어 파김치를 하거나 파전을 만들 것이다. 제주에서 월동하는 것들은 보약이라고 했으니, 나는 보약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보약이고 뭐고 간에 좀 더 서늘해졌으면 좋겠다. 한낮에는 여전히 더웠다. 태풍도 제발 좀 비껴갔으면 싶다. 주택생활자는 쏟아지는 비와 불어닥치는 바람에 마음을 졸인다. 추석 연휴는 이렇게 지나갔다. 제주에 머무는 연휴는 집안 정비의 시간이었고, 나름 만족하고 든든해진 시간이었다. 라이만 집에 잘 들어가주면 완벽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잠깐의 소나기같은 비에만 들어간 흔적이 보인다. 까다로운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