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일교차로 밤 기온이 불안한 날들이 며칠 있었다. 올해는 제비들도 4월 초부터 날아와 둥지를 보수하고 자리를 잡을 만큼 날이 일찍 더워졌다. 그럼에도, 4월은 역시 쉽게 믿을 달은 아니었다. 밤의 낮다 싶은 기온을 제비들이 잘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때마다 넉넉하게 내렸던 4월의 비는 전후로 기온을 급격히 오르내리게 했었다. 그럼에도 제비들은 끈기있게 둥지를 지켰다. 아, 이젠 모종을 심어도 되겠구나, 제비들을 보며 판단했다.
텃밭을 관리하면서 살짝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20년 가까이 텃밭을 했음에도 아직도 감이 잘 서지 않는다. 그럴땐 누군가 옆에서 건네는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된다. 앞집 할머니가 내겐 그런 존재였다. 할머니는 앞집과 우리집 사이의 다른집 땅인 공터에 꽤 넓게 농사를 지으셨었다. 그것도 혼자서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검질을 매셨다. 집에 있는 주말이면 20평 남짓 텃밭 안에서 낑낑대는 나에게 눈길 한 번씩 주면서 지나곤 하셨다. 그러면서 한 마디씩 던지셨다.
‘고추는 좀 가물어야 잘 자라.’
‘정 심고 싶으면 음력 3월이 되면 생각해 봐.’
그렇게 한 두마디씩 던져주시는 말들이 내게는 꽤 많은 배움이 되었었다. 몇 년을 그렇게 혼자서 농사를 지으시다가 어느날 농사를 그만 두셨다. 땅주인이 자기땅을 활용하겠다고 통보하면서 더 이상 남의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본인의 집 마당에도 농사지을 공간은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하시는 눈치였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후로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다. 마치 기운을 얻어가던 땅이 사라지며 더 이상 기운을 채울 수 없어진 것처럼, 할머니는 자신의 집 마당에 종종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만을 보이셨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는 더이상 보이지 않으셨다. 아들인 집주인의 설명으로는 병원에서 어떤 질환을 진단받고는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셨다고 했다. 지금도, 할머니는 앞집에서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4월의 마지막날에 집 근처 모종파는 집에서 모종을 구입했다. 고추 다양한 품종과 가지, 깻잎, 애호박, 수박, 토마토, 백오이, 아삭이상추와 루꼴라 등등.. 때마침 토요일이었고, 일하는 오전에 비가 조금 오다가 오후되며 그친 상태였다. 나는 모종심을 자리들을 잡고 멀칭비닐에 구멍을 낸 뒤, 종류별로 모종을 심었다. 제주는 바람이 무섭다. 모종을 심고 바로 지주대를 세워주었고, 지주대에 모종 하나하나 끈으로 묶어 바람에 날리지 않게 했다. 저독성 농약으로 1차 방제까지 해 주었다.
5월이 되었고, 조금은 불안한 밤공기가 두어번 지나갔지만, 텃밭은 무사했다. 멀칭의 효과인지 방제효과인지 모종들은 시들지 않고 모두가 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도 좀 많다 싶을 만큼 넉넉히 내려서 텃밭은 더더욱 안정적이었다. 모든 모종이 자리를 잘 잡을 정도의 환경이라면, 검질들도 덩달아 잘 자란다는 의미이다. 날이 따뜻하니 주변의 검질들도 더불어 무성해졌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마당 잔디에 쪼그리고 앉아 잔디에 섞여 자라는 검질들을 뽑아내야 했고, 잔디보다 높게 자라는 바랭이풀들을 뿌리까지 뽑아내었다. 그리고 집 주변의 무성한 허브들과 같이 무성해진 검질들을 정리했다. 먼저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적당한 양으로 거둔 다음, 낫으로 일차로 덤불들을 베어냈다. 방풍과 살갈퀴와 뱀딸기들과 망초들, 그리고 땅 속에서 퍼져나오는 두릅 싹들을 전부 베어냈다. 그리고 남은 덤불들은 전기예초기를 돌려 베어냈다. 전기예초기는 확실히 힘이 약하고 커팅라인도 약했다. 하지만, 집에서 사용하기엔 간편하고 적당했다. 남쪽으로 경계를 이루는 로즈마리 덤불도 무성해져서 전정이 필요했다. 전정가위를 들고 폭과 높이를 맞추어 전정을 해 주었다. 집 경계를 따라 풍경이 가벼워졌고, 마당에서 보는 바깥 풍경이 시원해졌다.
검질을 매 주기 전에 웃자란 머위들을 뿌리 가까이서 잘라 머윗대를 모았다. 갑작스레 자라버린 캐모마일 덤불 사이에서 작년 가을에 심은 양파가 자라 줄기가 꺾이고 있었다. 양파를 모두 거두었다. 알은 작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먹을만하게 커졌다는 데 위안을 둘 정도의 크기였다. 아내는 거둔 양파를 지인들에 조금 나누어준 뒤, 남은 것들을 모아 김치를 담궜다. 손질해 준 머윗대는 껍질을 벗기고 삶아 나물을 만들어 주었다. 마당에 지천인 부추는 날이 흐린 어느날의 해물전에 들어갔고, 오이 소박이를 만들 때 재료로 들어갔다.
모종심기를 때를 보아가며 조금 서두른 이유는 5월 초 어린이날 연휴에 육지 일정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해야 할 작업을 미리 해 두고 맘편히 다녀오자는 생각이었는데, 올해 어린이날 연휴는 갑작스런 저기압의 생성으로 제주에는 폭풍우가 몰아쳤었다. 비도 많이 내렸다. 텃밭은 다행히 무사했으나, 우리는 꼼짝없이 섬에 갇힌 신세가 되어버렸다. 예약했던 비행기는 결항되었고, 미리 보아둔 예보는 오는 날에도 비행기 운항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붕 떠버린 3일을 섬에서 시간을 보냈다. 섬에서의 삶이란 그랬다. 텃밭을 자연의 리듬과 순환에 온전히 내맡겨야 하듯, 섬에서의 삶도 자연 그 자체에 순응해야만 했다. 그 누구에게도 불평할 수 없고, 그 무엇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순리의 삶.. 내 시간의 일부는 그렇게 순리에 내맡기고 있구나 생각할 수 있었던 연휴였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 긍정적인 다른 의미로 깊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