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시작이다. 텃밭에서 먹거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먹거리들이 나오는 모습에 서서히란 없다. 갑자기 폭발하듯 엄청난 양으로 쏟아져 나온다. 열심히 먹지 않으면 냉장고 안에 자꾸 쌓인다. 냉장고 안에서 생기를 잃어가고 식감이 굳으면 나는 많이 아쉽다. 그래서 거두자마자 지인들에 나누어주게 된다.
입이 즐겁다. 아삭한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한 입에 베어무는 일의 행복. 물기가 풍부하고 식감은 아삭하다. 이를 즐길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고, 지금은 그 시기의 시작이다. 요즘은 집에서 저녁을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아침을 꼭 챙겨 먹는데, 어제 거둔 고추를 아침상에서 만나 베어물면, 피로가 조금 섞인 아침의 졸림이 순식간에 한 움큼 정도 사라지며 머리가 개운해진다. 오이도 마찬가지다. 조건이나 손이 안 맞아서 그런지 마트에서 사 온 오이보다는 물이 좀 덜 차 있지만, 아삭함과 개운함은 최상이다. 고추 한 입 베어물고 오이 한 조각 베어물면, 아침의 깔깔한 입맛은 생기 가득찬 식욕으로 변한다.
올해는 몸이 고단하지 않다. 비가 많이 내리고 날이 일찍 더워져 텃밭은 순식간에 무성해졌다. 멀칭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바랭이풀들이 아우성을 치며 텃밭을 잠식하지만, 멀칭 가운데 자란 작물과는 구분이 되니 굳이 손을 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고개를 높게 올린 녀석들만 위에서 적당히 잘라준다. 예전처럼 쪼그려 앉아 이랑과 고랑을 잠식한 검질들을 골갱이로 뿌리까지 정성스레 거두어내지 않는다. 몸이 너무 편해지니, 내가 게을러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먹거리들을 거두는 일도 그렇다. 올해는 아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거두고 있고, 한 번은 놀러 온 친척식구들이 체험삼아 텃밭에 들어가 작물을 거두었다. 몇 번 그렇게 거두니, 내가 거둘 일은 없었다. 이쯤 되니, 올해의 나는 너무 게을러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깊어진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다. 다만, 올해는 체리토마토가 잘 자라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잘 자라지도 않고 꽃도 많이 피지 않는다. 게다가 토마토 하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시들어 죽었다. 고추 모종 하나는 밑둥이 부러졌다. 마음이 넓어진 것인지 아니면 오만해지거나 게을러진 것인지, 거기에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 알아서 싹을 틔운 토종호박은 갑자기 굵고 거친 줄기를 사방으로 내더니 고추와 가지 줄기를 붙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반가운 녀석은 아니어서 줄기를 적당히 쳐 주었다. 수박은 모종 두 개를 심었는데, 그 중 하나에서 먹기 좋을 만큼 수박이 자라고 있다. 한 두주 더 두었다가 커지면 친구들을 불러 파티에 낼 생각이다. 가지도 깻잎도 나름 잘 자라면서 먹을 것을 내 주고 있다. 애호박은 말할 것도 없다.
말할 것 없는 축제를 여유롭게 즐기는 중이다. 비는 넉넉하고, 날은 덥고 습하다. 날씨에 사람은 힘들지만, 텃밭은 제철의 생기가 가득하다. 거두고 거두어도 끝없는 먹거리에 마음이 흡족하고 여유롭다. 그 여유를 지인들과 나누며 이 여름은 지날 것이다. 더운 여름이 지나면 잠시 몸을 써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고, 걱정거리가 생길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존재다. 지금의 축제를 한껏 즐기다가 때가 되면 때에 맞는 움직임과 마음씀을 하면 된다. 지금을 즐기는 일.. 현재를 사는 인간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내일의 걱정과 준비따위를 강제하는 인간의 시스템에 잊어버린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