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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Aug 06. 2023

2023년 나가사키 여행 3일차

  이른 아침, 미리 이야기 해 둔 호텔 부근 렌터카 영업장에서 차를 렌트했다.  미리 국제운전면허증을 준비하긴 했지만, 사실 일본에서의 운전은 처음이었다.  우측 운전석과 좌측 주행은 우리나라와 정 반대의 운전환경이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같은 환경에서 운전해 본 경험이 있어서 아주 두렵지는 않았다.  단지, 도로가 비좁고, 좌회전과 우회전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불안이 있었다.  운전은 생각보다 금방 적응되었다.  일본은 자동차의 나라라 도로에 차가 많기는 하지만, 신기하게도 차가 밀려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느리더라도 낮은 경사로에 물이 천천히 흘러내리듯, 도로유통이 원활했다.  그 많은 차들이 경적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일도 신기했다.  그 모습들을 밖에서만 보다가 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은 채로 보는 일은 다시 새로운 경험이었다.  3일차의 일정은 아리타에 가서 도자기 헌팅을 한 다음, 소토메 지역을 둘러 볼 예정이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1587년 바테렌 추방령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614년 금교령 이후, 외국인 신부 선교사들은 추방당하거나 일본에 남아있다가 순교한다.  기리시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후로 기리시탄들은 은밀히 숨어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신앙을 유지하는데 이들을 ‘가쿠레기리시탄(かくれ キリシタン), 잠복기리시탄’ 이라고 한다.  그러다 19세기 말 금교령이 해제되고 헌법을 통한 신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신도발견 사건 이후 이들은 천주교로 찾아가 다시 귀속되는데, 기리시탄들 중 일부는 천주교로 귀속되는 것을 거부하고 이제까지 지속되어 왔던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신앙을 유지한다.  이들을 가쿠레기리시탄(カクレキシタン)이라고 고유명사화로서 부른다.

   관은 기리시탄들을 소멸시킬 목적으로 모든 기층민들을 사찰에 등록하게 하고 불교식 예식을 강요했다.  하지만, 마을은 여러 사람들이 서로 도와야만 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불교도들은 쉽게 기리시탄들을 밀고하거나 통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장례식의 경우 불교에서는 승려가 독경을 읊는데, 기리시탄은 다른 방에서 독경소리를 지우는 오라쇼(oratio)를 암송하는 형식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했다.  

  니시자카 언덕의 26성인 순교기념관에는 매우 독특한 오브제가 있다.  가쿠레기리시탄 가정에서 발견된 물품인데, 나무로 만든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이것은 6-7세기 경 한반도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경로로 들어와 기리시탄 가정에서 소유하게 되었다.  이것이 독특한 이유는, 잠복기리시탄들이 이를 예수상으로 알고 경배해왔다는 점이다.  영화 사일런스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신부가 고토의 기리시탄들이 원하는 성물을 나누어주는데, 더 이상 줄 것이 없자 자신의 팔에 두르고 있던 묵주끈을 풀어 묵주알을 하나씩 나누어주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신부는 속으로 기도한다.

  ‘주여, 이들이 주님이 아닌 이 성물을 섬길까 두렵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상이 된 미륵보살상은 기리시탄들의 절박함 속에서 나타난 애잔한 왜곡인 셈이다.

  소토메 지역 구로사키에는 독특한 신사가 산 속에 있다.  일반적인 신사의 상징인 도리이가 없는 신사다.  가레마쓰 신사라고 불리는 이 신사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리시탄들의 신사이다.  독특한 점은 금교령이 해제되고 1893년에 가쿠레기리시탄들에 의해 세워진 신사다.  천주교로 귀의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신앙을 위해 지은 건물이 예배당 형식이 아니고 일본불교 형식에서 변형된 신사라는 점도 독특하다.  더욱 독특한 점은-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매년 11월이면 가톨릭교회 신자와 가쿠레기리시탄, 그리고 불교도들이 모두 가레마쓰 신사에 모여 신사제를 거행한다는 점이다.  


  2세기 반이라는 시간을 버텨 온 잠복기리시탄의 신앙과 금교령 해제 이후에도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는 가쿠레기리시탄의 모습은 매우 독특하다.  견고한 신앙의 유지는 하나의 신념이었겠지만, 붙잡을 기둥 또는 틀이 사라진 종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이 변해버렸다.  나는 그 흔적들을 찾아 가파른 해안길을 달려 소토메 지역을 돌아다녔다.  혼자서 흔적을 찾아 다니는 여정이라 현재에도 남은 가쿠레기리시탄들을 만나거나 그들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만들 수는 없었다.  다만, 남은 흔적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신앙의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종교적 신념과 형식이 어긋나고 뒤틀리는 현상 앞에서, 종교는 어떤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금교령이 철폐되고 소토메 지역에도 신부들이 찾아온다.  신도발견 사건 직후, 소토메의 구로사키 마을 기리시탄들이 비밀리에 오우라 천주당을 방문하기도 했다.  1876년에는 시쓰마을에 임시교회당이 설치되고, 이 지역에 1879년 프랑스인 마리 도 로(Marc Marie de Rotz, 1840-1914) 신부가 부임한다.  

  도 로 신부는 제주의 이시돌목장을 건립하여 운영했던 맥그린치 패트릭 제임스 신부와 유사하다.  가파른 해안절벽의 궁핍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주기 위해 그는 시쓰구조원을 설립해서 빵, 마카로니, 직물, 소면 등을 만들어 나가사키에 내다 팔았다.  소면은 특히 ‘도 로 사마 면’이라고 이름붙여서 지금도 판매하는데 땅콩기름을 넣어 만드는게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가져와서 마을 재건사업에 투자했다.  인쇄, 의학,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던 그는 1892년 시쓰교회를 건립하고 다음해 오노교회를 건립한다.  1987년에는 구로사키 교회터를 닦았다.  집중호우를 대비해 가파른 계곡으로 흐르는 강 주변의 석축을 재정비해서 다시 쌓게 하는데 현무암을 이용하여 쌓은 특징이 있어 ‘도 로 벽’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시쓰마을의 북쪽 오노마을에서는 금교령이 해제된 뒤 천주교로 복귀한 기리시탄들이 가쿠레기리시탄들과 불교도에 의해 따돌림을 받아 생계를 위협받고 있었다.  그들은 그럼에도 마을에서 나가지 않고 굳건히 버텼는데, 그들을 위해 도 로 신부가 마을에 세운 교회가 오노교회이다.  다른 교회들과 달리 오노교회는 ‘도 로 벽’스타일로 건축한 교회라고 한다.   그는 시쓰마을과 소토메 지역 사람들의 삶을 완벽하게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도 로 사마’, 또는 ‘소토메의 태양’이라고 불리운다.


  시쓰마을에서 남쪽으로 해안도로를 타고 잠시 오르막을 오르면 언덕에 휴게소가 나온다.  그 곳은 휴게소이기도 하고 소토메 지역의 특산물과 농산물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한데, ‘도 로 사마’라고 적힌 소면과 스파게티면 그리고 쯔유를 팔고 있었다.  한쪽에는 책이 진열되어 있는데, 애니메이션의 나라답게, 도 로 신부의 일대기가 소개된 만화책이 여러권 있었다.  금교령 시기의 박해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척박한 삶을 짧은 시간 내에 벗어나게 해 준 도 로 신부의 존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 아래,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있었다. 소토메 지역과 동중국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언덕에 나지막하고 넓은 지붕의 건물이 놓여 있었다.  깊은 강을 읽으며 내 마음도 깊어졌고, 침묵을 읽으며 인간의 신념과 종교란 무엇인가를 고민했었다.  인간에 내재된 약간의 허무와 종교적 신념을 담담한 문체로 써내려간 그 작품들을 기억하며 작가의 사상과 고민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문학관 전체를 채우고 있는 그의 흔적들은 어릴적 장난 좀 많이 쳤을 것 같은 개구진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성인이 되고 작품을 한참 발표했을 때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국어도 영어도 없이 일본어만 가득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이 개구진 중년남자의 모습에 이상하게 정감이 많이 생겼다.  이미 작고했지만, 말이 통한다면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은 이미지랄까.  방문기념과 작가에 대한 경의, 그리고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반가움이 겹쳐 일본어는 겨우 읽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의 작품 ‘침묵’, ‘침묵의 소리’, ‘깊은 강’ 일본어판 문고를 구입해서 나왔다.  그리고, 소토메 해안과 늦은 오후 잔잔한 동중국해의 망망함을 잠시 감상하다가 차로 돌아왔다.

  시쓰 마을 입구에 ‘침묵의 비’가 있다.  엔도의 작품 ‘침묵’을 기념하기 위한 비다.  침묵과 영화 사일런스에서 주 활동마을로 나오는 토모기 마을은 시쓰마을을 배경으로 한 가상의 마을이다.  엔도는 이 침묵의 비를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그 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사람이 이다지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나 푸릅니다.’


  아침 일찍 아리타로 가서 도자기 헌팅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소토메 지역으로 간 시간은 오후 3시 경이었다.  아리타에서의 시간도 오래였지만, 이동하는 시간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래서 급하게 보고자 하는 것들만 보고 나오는 여정이었다.  게다가 문학관이나 전시관 같은 곳은 오후 5시면 거의 마감이어서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급하게 다니는 여정은 내가 싫어하는 상황이지만, 내 불찰이었다.  서둘러서 다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나가사키 방향으로 내려오는데, 여기를 다시 한 번 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와 언덕길을 따라 달리다 터널을 지나니 아래로 나가사키항과 아담한 시가지가 내려다 보였다.  그래도, 일본에서의 첫 운전은 나름 성공적이었음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참조자료 : 숨은 그리스도인의 침묵, 강귀일 지음,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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