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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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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Sep 17. 2023

2023년의 텃밭일기 : 0917

  더위는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마당과 텃밭도 더위에 몸살을 겪는 것 같았다.  뭔가 짚어서 이야기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예년과 모습이 다르고, 더위때문일까 싶은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검질들이 너무 많이 확산되고 빨리 자라는 느낌이다.  매달린 가지는 껍질이 거칠게 슬어버린 녀석들이 많아졌다.  방제를 해서 많이 사라졌지만, 노린재의 창궐도 그러했다.  고추가 매워지고, 고구마꽃이 예년에 비해 많이 피는 현상은 확실히 더워져서 그런 듯 했다.  쪼그려 앉아 검질을 매는 일을 아예 하지 않고 예초기로만 관리를 해서인지 마당과 텃밭의 별다른 모습은 더욱 도드라졌다.  도드라진 마당과 텃밭에 메뚜기가 많아진 것도 달라진 모습이라면 그러했다.  무더위가 창궐하는 8월 말의 나날은, 체력과 노동을 조절하며 버텨야 하는 날들이었다.

  더위는 9월 중순인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해져서 버티기가 그나마 좀 나아졌지만, 낮에 병원안팎을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낮에는 아직 더웠다.  그리고 밤에도 선선한 듯 싶다가도,여름 소나기 직전의 덥고 습한 공기가 느껴지는 날이 종종 있었다.  더위는 텃밭에서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 오랜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매울까봐 고추를 따서 먹기가 두려웠다.  무화과 몇 개를 따서 먹고나니 그 다음은 전부 개미와 풍뎅이들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가지는 아내가 반찬으로 만들어 종종 먹긴 하나, 너무 많으니 선물용이 되고 있다.  마당과 텃밭 주변은 수시로 예초기를 돌려 비죽이는 바랭이들의 줄기와 이파리들을 잘라주어야 했다.  


  그래도 시기가 되었으니 가을 텃밭을 준비해야 했다.  해마다 쏟아지는 땀과 더위 속에서 버텨야 하는 노동으로 뭔가를 분주하게 하다보면, 어느새 가을 텃밭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를 만났다.  무언가 한 고비를 넘기는 기분이 든다.  그 고비 안에는 잘 즐겼다, 충만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올해는 뭔가에 신경만 잔뜩 쓰다가 갑자기 가을텃밭 시기를 만난 느낌이다.  이러려면 내가 왜 이렇게 시간과 노동력을 뺏기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머리속에 잔뜩 담은 채로, 이제는 더이상 제대로 된 오이를 맺지 못하는 덩굴과 올해 한 번도 맛을 못 본 토마토 줄기가 매달린 지지대부터 뽑아냈다.  

  덩굴을 뽑아내고 지지대에 묶인 비닐과 케이블타이를 걷어냈다.  그 옆에 있는, 역시나 한 번도 맛을 못 본 주키니 호박과 단호박도 다 걷어냈다.  적깻잎에는 이전부터 병이 들어 있는지, 잎들이 둥글게 말리고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것들도 모두 뽑아내었다.  그리고, 이들을 덮고 있던 멀칭도 다 걷어내었다.  무를 파종하기 넉넉한 자리가 생겼다.  다른 쪽으로는 수박을 심었던 자리의 멀칭을 걷어냈다.  수박덩굴은 이미 말라 죽은 상태였다. 옆으로 심어둔 바질과의 경계를 잘 살려 멀칭을 잘라주었다.  작지만 넉넉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쪽파를 심을 자리였다.  


  남은 건 이제 고추와 가지, 그리고 바질이었다.  그 사이를 알아서 싹을 틔우고 자란 토종호박이 무서운 기세로 작물들 사이사이에 굵직한 덩굴을 뻗고 있었다.  반갑지 않은 녀석이다.  호박과 박 사이의 어중간한 모습으로 생겨서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는데다, 덩굴은 굵고 빠르게 자라 작물줄기들을 붙잡고 바닥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적당한 길이에서 잘라주었다.    

  자리를 만든 곳은 삽으로 이랑과 고랑을 만들었다.  무와 배추를 심을 자리는 이랑과 고랑을 깊고 넓게 만들었고, 쪽파를 심을 자리는 호미로 흙을 골라주었다.  때마침 오후 휴진날에 오일장날이 겹쳐, 오일장에 가서 무 씨앗과, 배추를 구입했다.  배추는 김장용이 아닌 쌈배추를 골랐다.  벌레를 너무 타는데다, 이벤트성이라 하더라도 김장은 어려울 듯 해서 였다.  루꼴라와 로메인 상추를 몇 주 구입했고, 쪽파를 적당히 구입했다.  그리고, 생각한 자리에 무를 파종하고 배추와 상추, 쪽파를 심었다.  날은 여전히 더웠고, 조금은 누그러진 건 맞지만 오후의 볕은 아직 따가웠다.  이제 다시 비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물을 넉넉히 주고, 더위에 벌레먹지 말라는 마음으로 심은 모종에 방제를 해 주었다.  

  여름의 소나기나 폭우같은 비지만, 비는 적당히 내려주고 있다.  더위는 아직 여전해서 모종들이 마르거나 벌레먹지 않게 신경쓰는 중이다.  파종하고 3-4일 지나니 무 싹이 서두르듯 떡잎을 올렸고, 쪽파들도 초록 바늘같은 줄기를 올렸다.  땅이 마른듯 싶으면 잠깐이라도 물을 뿌려주었고, 그러다보면 비가 넉넉히 내려주었다.  여전히 예초기를 돌려야 하지만, 검질걱정은 덜어놓아도 좋을 시기가 되었다.  게으름보다는 시간과 체력의 문제로 고민해야 한다.  마당 전반의 검질의 문제, 텃밭관리의 문제, 거기에 마당 구석과 뒤뜰의 자투리 공간에서 무성하게 오르는 검질관리까지..  뭔가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점점 힘들어지는 체력과 몸으로 예전같이 오로지 내 노동력을 쏟아붓는 방법 말고는 대안이 없다.  그래서, 당장 내년부터는 텃밭영역을 넓게 잡아서 효율적인 관리방법을 구상 중이다.  그러기에 늦겨울과 초봄의 시간은 넉넉할 것이다.  우선은 당장 심어놓은 가을 모종들과 남은 텃밭 작물들을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  가을 겨울에는 분주한 마음보다는 입의 즐거움을 좀 누릴 수 있으려나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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