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날씨는 믿지 못한다. 이는 오래도록 경험한 사실이다. 이상기후로 날이 점점 더워진다지만, 그래서 텃밭준비를 서둘러 보았지만, 결국 4월을 믿지 못하고 모종심기를 5월로 넘겼다. 누가 올해는 봄 없이 바로 더워질 것이라 말했던가. 아무리 날씨예측이 정교해졌다지만, 자연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대상이다. 밤공기의 온화함은 5월의 중반이 시작되었는데도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예년보다 오히려 추운 느낌이다. 5월의 중순에 심은 모종들의 냉해를 걱정해야 하고, 제비는 보이는데 뭔가가 맞지 않는지 둥지에 앉지를 않는다. 텃밭은 기다려야 함에 불구하고,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4월의 중순에 서둘러 멀칭을 했다. 그 전에 틀 안에 밑거름을 뿌리고 흙을 뒤집었다. 문제를 느꼈다. 흙을 충분히 뒤집어 겨우내 딱딱해진 땅을 풀어줘야 하는데, 틀 안에서 삽질을 하려니 이게 잘 되지 않았다. 틀이 없던 예전에는 땀을 흘리고 몸이 쑤셔도 반나절 고생하면 텃밭 흙을 충분히 뒤집을 수 있었다. 틀이 생기니, 몸은 편해도 흙관리가 쉽지 않은 것이다. 겨우겨우 흙을 뒤집는데 시간은 훨씬 적게 들었지만, 무언가 성이 차지 않았다. 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바로 멀칭을 했다. 투수성이 있는 잡초매트를 틀마다 깔았다. 밑거름을 뿌리고 2주 정도는 기다려야 하니, 4월 말 5월 초 모종심기까지는 시간이 충분했다. 날은 여전히 서늘했다.
잡초매트는 질기고 투수성이 있어서 텃밭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한가지 단점은 모종심는 구멍을 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멀칭타공기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얇은 멀칭비닐에나 유용한 도구이다. 멀칭타공기는 잡초매트에 아무리 작업해도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그래서, 멀칭구멍내는 작업도 시간을 들여 작업해야 했다. 가위를 들고, 줄자로 틀마다 일단 50센티미터씩 간격을 두고, 직접 오려내어 구멍을 냈다. 역시 모든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구멍 간격을 50센티미터로 일괄적으로 내긴 했지만, 사실 무얼 심을 지는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너무 많이 심어 부담스러웠던 고추와 가지를 줄이기로 마음먹은 일 외에는 정해진 것이 없었다. 작년에 의외로 잘 되었던 참외를 심을 생각이고, 수박도 나름 재미가 있었으니 빼놓을 수 없었다. 고추도 수를 줄이기로 한데다 매운 고추는 심지 말자고 생각하니, 심을 자리에 여유가 많아졌다. 작물에 따라 심는 간격도 좀 다른데, 일단 50센티미터라는 일괄적 간격을 두고 구멍을 내고나니, 뭘 심어야 할 지 더 고민스러워졌다. 그늘진 구석의 한 틀에는 30센티미터 간격으로 두 줄로 구멍을 냈다. 여기엔 생강을 심기로 작정한 자리여서 고민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씨생강을 주문해서, 젖은 상토에 묻어두고 순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곧 더워지겠지.. 하는 생각은 점점 불안으로 바뀌어갔다. 예보를 검색해보면 밤기온이 계속 낮은 날이 이어질 것이라 했다. 기대로는 4월 말 정도로, 예년보다 한 주 정도 일찍 심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별 수 없었다. 인간은 땅과 하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기다림이 유일하다. 5월이 되어야 제대로 심을 수 있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다. 그 전에, 조금 추워도 먼저 심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심거나 파종해보자 싶었다. 아내는 인터넷으로 아티초크, 딜, 할라피뇨, 그린빈, 오크라, 작두콩, 자소 씨앗을 이미 주문해 두었다. 모종가게가 집과 가까우니 자주 오갈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볕이 잘 드는 구석진 자리에 아티초크, 그린빈, 할라피뇨 씨앗을 파종했다. 쌈채소를 심으려 멀칭을 하지 않은 틀 한 쪽으로 딜과, 오크라를 파종했다. 모종가게에 가니, 샐러리와 깻잎이 보였고, 오이가 보였다. 바로 구입해서 텃밭에 심었다. 샐러리는 그늘이 좀 있는 자리에, 깻잎은 고추를 심을 자리에 구멍 하나씩 건너 심었다. 오이는 심을 자리가 있었다. 생강은 순이 난 자리를 중심으로 쪼개어서 구멍마다 심었다.
5월의 첫날에는 비가 많이 왔다. 노동절 오후에 폭우같은 비를 뚫고 모종가게에 가서 남은 자리에 심을 모종들을 구입했다. 5월이니까 이제 괜찮겠지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고추, 애호박, 가지, 수박, 바질, 방울토마토, 참외 등등.. 비가 오는 날에 모종 심는 일은 일종의 적절한 일이라, 나는 우의를 입고 호미를 들고 구멍마다 생각해 둔 자리에 모종들을 심었다. 고추와 바질을 번갈아 심어 한 틀을 채우고, 깻잎 사이사이 구멍마다 가지를 심었다. 애호박과 수박을 번갈아 한 틀에 심었다. 작게 만든 틀에는 참외를 심고, 오이와 함께 지주대가 필요한 토마토는 한 틀에 심었다. 그럼에도 남는 구멍이 있어, 꽈리고추와 미인고추와 당조고추를 작게 심었다. 맵지 않은 고추의 다양화는, 나름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쌈채소 틀밭에는 로메인과 적치마, 그리고 아삭이 상추를 심었다.
시간이 지나며 파종한 딜과 오크라, 그린빈 싹이 올라왔다. 아티초크는 감감 무소식이다가 겨우 한 구멍에서 싹이 올라왔다. 작두콩과 할라피뇨는 감감 무소식이다.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여전히 날이 서늘하기 때문이다. 5월인데도 밤공기에 온화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되려 태풍같은 찬바람이 불어서, 모종을 심자마자 지주대를 꽂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모종을 묶어주어야 했다. 바람에 바질 두어개의 줄기가 꺾였고, 오이는 뿌리적응에 실패해서 노랗게 말라버렸다. 모종을 다시 구입해서 심어주었다. 한 달간은 모종이 자리를 잘 잡도록 기다려야 한다. 바람에 상하지 않는지, 뿌리는 잘 내리는지, 파종한 싹은 잘 올라올지 살펴야 한다. 흙이 마른다 싶으면 물도 넉넉히 주어야 한다. 모종을 심고 나면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모종가게가 가깝고, 모종이 죽으면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다시 사서 심으면 될 일이지만, 내 땅에 심은 녀석을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는 것도 마음불편한 일이다. 어서 날이 더 따뜻해지고 뿌리를 잘 내려 즐거운 마음으로 웃거름을 줄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