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북과 산남을 오가는 여행 같은 출퇴근길.
세 번의 근무지가 바뀌며 출퇴근 역시 세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걸어서 골목을 십 분 정도 걸으면 병원에 도착했다. 두 번째는 서쪽의 해안도로를 20분 남짓 달려 한림의 번잡한 거리에 차를 세우고 병원에 도착했다. 지금은 서귀포의 신시가지까지 아침마다 약 45분의 운전 끝에 근무하는 병원에 도착한다. 어디든 한 시간 남짓이면 도달하는 이 섬에서 출퇴근 도합 두 시간 정도는 듣는 사람들마다 기함을 할 정도의 멀고 힘든 거리이다. 초등학생 아이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 아침마다 차를 몰고 제주 외도에서 서귀포 신시가지까지 운전하는 일은 실제로도 조금 버겁다. 그러나, 일 년 넘게 반복하고 있는 일이라 익숙해졌고, 평화로에 진입하여 나와 같은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움직이는 수많은 자동차들을 바라보면 ‘나만 힘들게 다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로가 생긴다.
제주의 출퇴근길은 일종의 여행 같기도 해서 작은 위안이 된다. 복잡한 도심의 길이 아닌 밭 사이 작은 소로를 통과하며 때마다 밭이 키우는 작물들을 살핀다. 돌담 안 쪽의 귤밭에는 하얀 귤꽃들이 만개했다가 한창 더워지는 시기에 작은 초록의 귤 알맹이들이 맺히는가 싶더니, 저 멀리 한라산에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할 즈음엔 누렇게 익어 가지를 휘청이게 만들었다. 평화로에 들어서 오르막을 달려 어음을 지나면 우측 옆으로 새별오름의 능선이 멀리 비양도까지 이어지는 풍경을 보게 된다. 좀 더 달리다 보면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골프장 입구들을 지나 내리막 언덕 즈음에 산방산이 보인다. 안개가 자욱하거나 비 오는 흐린 날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산방산은 습관 같은 일상에 매몰되어 생각이 살짝 지친 나에게 ‘이게 네가 원하던 삶이었다’고 아침마다 차갑게 나를 환기시킨다. 그렇게 머리가 살짝 시원해지면 우측의 송악산과 좌측의 형제섬과, 산방산 뒤로 몸을 반씩 숨기고 멀리 떠 있는 가파도와 마라도에 시선을 두게 된다. 그랬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던가.. 미어질 듯한 지하철 안에서 얼굴에 배이는 땀과 기름에 진저리 쳤고, 출근길 언덕을 꾸역꾸역 올라가며 이유 없는 서글픔에 눈물이 핑 돌았던 시절에 몹시도 열망했던 삶이 지금이 아닌가.. 중문과 대정 방향으로 갈라지는 평화로의 말미에서 나는 운전대를 꼭 잡고 삶의 창문을 잠시 열어 환기시킨다.
상창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쭈욱 달리면 회수마을이 나오고 더 달리면 한라산을 바라보게 된다. 출근길 운전 내내 한라산은 나의 왼 편에 있다. 그리고 한라산은 세 가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중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서귀포 쪽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이다. 좀 더 가깝게 보이고, 정상의 분화구가 기다란 윗세오름 능선에 얹힌 듯 안정된 모습이며 아래로 펼쳐지는 부드러운 산세엔 기품이 느껴진다. 엉또폭포 입구를 지나며 그 웅장함에의 감상은 마무리가 되고 나는 범섬을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가 출근길 운전을 마친다.
집으로 가는 퇴근길은 출근길의 역행이지만, 일주일에 두 번 검도 수련으로 신제주 시내의 도장에 가야 하는 날에는 일부러 1100 도로를 선택해서 지난다. 서귀포로 출퇴근하면서 가장 좋아하게 된 길이 1100 도로이다. 자전거로 두 번 오른 적이 있어 인상이 깊기도 하지만, 구불구불한 왕복 2차로에 은밀한 자연함이 짙게 배어있고 계절의 변화를 시간과 고도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에는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는 저녁 7시 반의 1100도로 휴게소 앞에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다 내려왔다. 봄에는 고도마다 푸르름이 다른 풍경에 이유 없는 기대를 품었고 가을에는 고도마다 붉음이 다른 풍경에 추운 겨울에의 아쉬움과 걱정을 담았다. 그리고, 늦은 시간 도로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거나 과감하게 도로변으로 나온 노루들을 구경하는 재미를 즐겼다. 풀을 뜯다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는 녀석들을 보면, 나는 뭔가 소소한 행운이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그게 정말 행운으로 나에게 작용했는지 느껴 본 적은 없다. 단지 나는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나 사고 없이 이 섬에서 잘 살고 있으며, 매 순간의 즐거움에 감사하고 있는 중이다.
일 년 반의 산북과 산남을 오가는 출퇴근 길은 많이 변했고 지금도 변하는 중이다. 도로엔 중장비 차들이 너무 많이 보이고, 곳곳에는 파인 땅과 높이를 더하는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변화의 한 흐름이라 하기엔 너무 급격하고 너무 많은 모습들이다. 이것이 내가 원했던 삶에 혼란을 더하지 않을까.. 유일하다 할 수 있는 걱정이다. 그리고, 겨울이 찾아왔다. 평화로는 눈이 많이 내리면 순식간에 주차장으로 변한다. 올해에도 벌써 한 차례 그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눈이 쌓이고 빙판이 될 것이 뻔한 1100도로도 2월 말까지는 피해야 한다. 노루들 모습은 봄이나 되어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고 조심스러운 계절에도 출퇴근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도시의 삶보다는 자연과 현실의 격차를 좀 더 격하게 실감할 수 있는 제주섬의 겨울이 지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