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맛집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제주 가면 맛있는 집 좀 알려줘.’라는 지인들의 질문 때문이었다. 처음 질문을 받은 때가 입도한 지 3주도 채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제주에 여행 온다는 친구는 전화로 나에게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맛집은 고사하고 적응하느라 모든 게 생소했던 시기에 받은 질문에 조금 어처구니없기도 했고 나 역시 맛있는 집이 어딘지 궁금하기도 했다. ‘맛있는 집 좀 알려줘’라는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블로그를 통한 맛집 소문이 한창이던 시기였고, 제주여행 역시 철 만난 유행처럼 증가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내가 제주에 내려온 사실을 아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전화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모른다거나 그냥 직접 검색해보라는 대답은 차마 할 수 없어서 그냥 다녀본 식당들 몇 곳을 말해주었다. 그러다 문득, 이럴 바에는 그냥 내가 맛있는 집들을 찾아다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맛집 블로그였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호감은 있어도, 일부러 찾아다니거나 방문한 곳을 정리해 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때마다 즐기는 것으로 만족했다. 내 블로그는 그저 낙서장이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연습을 하는 용도의 공간이었다. 음식을 즐기는 방법과 블로그를 활용하는 방법이 제주에 입도하고 나서 우연한 이유로 바뀌었다. 병원 회식이나 모임 그리고 주말 가족 외식에는 항상 작은 크기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식당과 먹기 전 나온 음식 사진부터 찍었다. 사진은 별로 없이 글이 대부분이던 내 블로그 화면은 점점 사진의 분량이 많아졌다. 방문하는 사람이 별로 없던 내 블로그는 서서히 방문자 수가 늘었다. 내 블로그는 내 생각을 정리해두는 것이 주목적이고 맛집 탐방은 부수적인 것이라 항상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 블로그를 보는 사람들은 그런 의도 따위는 관심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내가 정리한 맛집을 보러 내 블로그에 들렀고, 나는 블로그를 개설한 포털 사이트에서 맛집 분야 우수 블로거로 선정되어 3년간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본말전도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올려놓은 나의 자료들은 더 이상 나의 의도대로 활용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찾아다니면서 맛 본 제주의 음식들은 생소했고 맛있었다. 남쪽의 섬이라는 환경이기에 만날 수 있는 재료와 맛이 있었고, 삶에서 비롯된 음식의 이야기가 있었다. 고립이 주는 한정만큼 재료, 맛, 이야기는 강렬하고 분명했다. 모자반, 톳, 보말, 뿔소라, 옥돔 등등.. 재료들은 자체로 독특하며 신선해서 저마다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이 섬에서 길러지는 돼지고기는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남다른 맛을 냈다. 잔칫날 돼지 한 마리 잡아 솥에 넣고 삶으면 익은 고깃덩어리를 급하게 썰어 도마 채로 낸다 해서 돔베고기라 불렸다. 창자에는 선지와 찹쌀을 넣어 순대를 만들고 삶은 국물에 모자반을 넣으면 몸국, 순대와 고기를 넣으면 순댓국, 국수를 넣으면 고기국수가 되었다. 물질하다 들어온 해녀가 물에 된장 풀고, 밭의 푸성귀 썰고 바다에서 건져온 것 썰어 넣어 간단하게 상에 올린 것이 물회였다. 이 섬에서의 음식 맛은 육지와는 다른 결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신선하고 특징적인 재료들과, 거칠고 팍팍했던 삶이 유도한 조리법에서 기인했다. 대를 내려오는 손맛이나 화려한 양념의 조합, 그리고 차분한 조리법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방금 가져온 제철 신선한 재료를 빨리 간단하게 조리해 먹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맛에 문외한이다. 맛은 주관적이라는 명제만 믿고, 먹어보고 맛있으면 맛집이라 이야기했다. 음식의 배경과 재료에 대해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먹으러 다니면서, 먹었던 음식들을 제주의 살결을 아는 이와 이야기하면서 듣게 되는 정보들로 음식들을 알아갔다. 게을렀고, 그래서 이제껏 블로그에 올렸던 맛집 포스팅들을 보면 민망했다. 다행인 것은, 뒤늦게라도 이 섬에서의 맛에 대해 무언가를 조금 알았다는 점이다. 음식은 인간의 문화여서, 이 섬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이 섬에서 시간을 따라 흘러 온 사람들의 삶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나 자신도 이 섬에서의 시간에 올라 탄 채 흐르고 있으니, 앎과 이해는 점점 내 삶으로 배어들고 있다. 맛을 찾아다니는 것은 자체로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것이 쌓여 하나의 범주가 만들어지니, 이 섬에서 나의 삶은 조금 근사해진 느낌이다. 입도 8년 차, 이제는 ‘제주 가면 어느 집이 맛있냐?’는 지인들의 질문도 많이 줄어들었고, 나의 행보도 피상에서 벗어나 좀 더 깊어졌다. 내 블로그에 쌓인 250여 곳의 기록은 자체로 민망하기는 하지만, 나로 하여금 좀 더 차분하고 진지한 글과 생각을 펼치도록 다독인다.
내가 입도한 후의 제주는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 많은 것들이 생겼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많아진다는 것, 이제는 그것이 마냥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맛도 그러했다. 많아졌지만 많아질수록 개성과 특징은 희석되었다. 재료는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고, 요리는 고만고만 해졌다. 변화의 소용돌이는 원래 있던 것들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본래의 맛을 잃어버린 집들도 많아졌다. 시간을 타고 흐르는 이야기는 박제된 채 기억과 추억 안에서만 머물렀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과 함께 섬 곳곳 어딘가에 자리한 음식들에는 현실 속 당위만 가득했다. 맛은 주관적이고 맛있으면 맛집일 것이다. 그러나 점점 어딘가 허전하고 맛은 저마다의 특징과 힘이 약해졌다. 그런데, 이런 아쉬운 변화에 한몫 거든 요소들 중 하나가 내가 아닐까 싶다. 분명한 사실로서 나는 공범자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행동은 변화에 일정한 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답은 없더라도, 스스로를 자주 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맛집 포스팅을 이어나가는 내 행위에 고민이 생기는 지점이다. 이전에 다녔던 식당들을 다시 다녀본다는 의미에서 되돌아봄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맛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만족스럽다는 것은 꼭 입 안에 넣었을 때의 맛있음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만족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나의 맛집 탐방도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