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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Feb 05. 2018

[독후감] 역사의 천사 : 브루노 아르파이아

  발터 벤야민을 읽고 있다.  순전히 우연한 기회였다.  지인이 어제 읽은 책이 재밌어서 전날 밤부터 동이 틀 때까지 잠을 포기하고 읽었다며 나와의 저녁 만남이 조금 피곤하다고 했다.  궁금해진 책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라 내용이 딱히 어렵진 않았지만, 생소했다.  가끔 들리는 이름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인물의 삶의 마지막 여정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발터 벤야민이 궁금해졌다.  그런 궁금증은 어쩌면 호기롭게 만져봤자 다치기만 하는, 뜨겁게 달군 쇳덩이를 쥐는 손 같은 것인지 모른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보들레르, 푸르스트, 아우라, 앙겔루스 노부스, 꼽추 난쟁이, 그리고 실패한 지식인...  난 지금 그의 책들과 그와 연관된 책들을 쌓아두고 하나하나 읽고 있다.  여전히 그에 관한 것들은 내 머리의 피상에서 맴돌고 있다.  나는 그를 온전히 이해하고 읽어낼 수 있을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발터 벤야민에 대한 읽기는 그가 나치를 피해 베를린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서 시작한다.  유명한 파리의 국립도서관에서의 사진을 찍히기 전,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유대계 지식인이었다.  자료 안에서 문자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전형적인 샌님이었을 것이다.  파리에 거주하면서 그는 궁핍하고 고난스러운 생활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의 글과 연구는 돈이 되질 않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반 고흐를 떠올렸다.  세상은 어째서 위대한 작품과 사상의 주인공이 죽고 나서야 그를 인정해주는가..  덕분에 우리가 아는 그 위대했던 사람들은 숨이 붙은 현실 안에서 가볍지 않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나치의 점령은 계속되었지만, 이 답답한 샌님은 굼뜨고 느리기만 하였다.  점점 긴박해지는 세상 물정 안에서 그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자금과 서류는 더더욱 많아지기만 했다.  덕분에 그는 프랑스 비시 정부가 운영한 강제수용소도 겪어야 했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빠져나와 마르세유로 향한다.  마르세유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러나, 마르세유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마찬가지로 그곳을 뜨는 일은 자신을 증빙하는 수많은 서류가 필요했고, 결정적으로 배는 언제 들어올지도 언제 떠날지도 알 수 없었다.  소설 속의 시대는 그를 끝까지 외면한다.  마치 그를 유럽 대륙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가둬두는 것처럼 말이다.  앙겔루스 노부스, 불안하기만 한 역사의 천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알 수 없는 미래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스페인 국경에 인접한 바니윌스로 가는 것이었다.  거기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가서는 포르투갈로 가는 열차를 타려 했다.  답답한 현실감만큼 그의 심장도 버거운 상태였다.  그런 그가 국경을 이루는 산맥을 넘어 월경한다는 것은 얼마나 버거운 일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바짝 조여드는 듯한 심장을 움켜쥐고 산맥을 넘어 스페인 국경마을이자 항구인 포르부에 도착한다.  그러나, 포르투갈 국경이 봉쇄되었다는 소식에 그는 모든 것을 절망하고 가지고 있던 모르핀을 치사량으로 삼키고 자살한다.  시대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며칠 후 포르투갈 국경은 다시 열렸다.  

  그는 평생을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다.  나치를 피해 피신하면서도 그의 가방이나 품에는 원고든 메모지 또는 광고지 한쪽에 도배하듯 써 내려간 아케이드 프로젝트 원고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스페인 국경 작은 마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그가 마지막으로 정리한 미국으로 보내려 했던 원고는 유실된다.  아직까지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그 원고는, 소설 속에서는 피레네 산속에서 우연히 만난 아우레아노에게 전달된 것으로 묘사된다.  발터 벤야민이 죽기 전 원고를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부탁받은 아우레아노가 스페인 경찰의 눈을 피해 피레네 산맥을 따라 포르투갈로 가는 도중, 혹한을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원고로 모닥불 불쏘시개로 써버린 것으로 묘사된다.  작가는, 미완 상태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마지막 원고는 우리에게서 영원히 사라졌다고 믿는 것 같다.  발터 벤야민이 1940년 숨을 거두었으니, 종이라면 아무 데나 써 내려갔을 조잡한 원고 뭉치가 80년 가까이 어디엔가 보존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하긴 할 것 같다.

  이 책은 읽는 내내 인터넷으로 지도를 펼쳐놓았다.  그래서, 발터 벤야민과 아우레아노라는 두 주인공의 여정을 지도로 확인해가며 읽었다.  두 개의 여정이 제각각의 동선을 따라 마지막 즈음에 겹치는 모습은 무척 근사한 동선을 만들었다.  물론 당시의 시대상을 배제한 현재의 상황에서 말이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나치를 피해 베를린에서 파리로 루르드와 마르세유 바니윌스까지, 그리고 스페인 내전을 이야기하는 아우레아노가 활약했던 타라고나와 바르셀로나, 에브로 강을 따라 이동한 여정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난 스페인의 항구마을 포르부, 메르세데스와 아우레아노가 긴장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미국으로의 탈출이 좌절되자 발터 벤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마을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러보고 싶어 졌다.  책 읽기는 누군가에 대한 궁금증이 되었고, 주인공이 되어 여행을 하고 싶은 동기가 되었다.  무언가에 깊이 발을 담가버린 듯한 기분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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