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니멀리즘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미니멀리즘 음악가라 불리는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들의 음반을 구입해 들어보았다. 모르는 만큼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음악이었고, 미니멀리즘 음악의 정의를 검색해서 읽고 나서야 조금은 그들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름의 느낌을 설명해보자면, 세밀한 반복과 반복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유연한 긴장이었다. 그들의 음악을 조금 더 많이 듣고 귀에 익숙해져야 무언가를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은 와중에 나는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을 읽었다. 그의 음악에서 느낀 유연한 긴장만큼, 그가 고백한 생애는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치열함이었다. '딱딱한 부드러움’ 만큼 어색한 조합은 그의 음악에서나 글에서나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이야기는 치열함보다는 꾸준하고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이긴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눈에 쉽게 들어오며 술술 읽힌다. 음악을 이야기할 때, 그가 주제로 삼은 문학작품이나 역사의 주인공을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그의 작곡 의도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아도, 그는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만든 그의 음악을 설명할 때, 대체적으로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역자가 그의 글은 그의 음악을 닮았다고 이야기하는데, 돌이켜보면 그의 음악이 귀에 쉽게 들어오지는 않아도, 난해한 음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가 회상하는 대로, 그의 음악은 단지 반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한 인간의 회고를 어렵지 않게 읽는 일은 각자의 수고를 조금만 담으면 되는 일이다. 따라서 나는, 필립 글래스의 음악가로서의 삶에서 느껴지는 몇 가지 만을 이야기한다. 첫째로, 음악을 포함한 예술의 부흥은 자본주의의 성장에 깊이 의존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필립이 태어나 음악을 공부하고 활동하는 시기는 자본주의 성장의 최고조인 시대였다. 가속이 붙은 자본의 성장 아래에서 예술은 다양성과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엄청난 진화와 확산 과정을 거쳤다. 필립과 필립 주변의 예술가들은 그런 성장의 혜택을 받으며 나름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여건하에서 활동하는 행운을 안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급격한 성장 하에서도 필립은 마흔이 넘도록 이삿짐센터 운영과 택시기사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가난해야만 하는 예술가의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으나, 자본의 성장이 예술의 진화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필립이 음악가로서의 삶을 버티게 한 환경적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두 번째로, 필립과 함께 하거나 찾아가거나 둘러싼 인물들에의 관심이 생겼다.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니 당연하긴 하겠지만, 당장에 내가 알고 있는 재즈 아티스트인 텔로니우스 몽크나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등등의 유명인들의 실제 연주를 듣거나 마주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디아 블랑제와 라비 샹카에게 사사받았다는 사실 역시 인상적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실력 있고 깊은 하나의 능력을 갖추려면, 그 사람을 둘러싸고 영향을 주는 사람들 역시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필립이 거쳐간 학교들이 그런 환경을 어느 정도 보장했고, 그가 머물며 사랑한 뉴욕이 어쩔 수 없이 그런 환경이었다는 점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하나의 분야에서 성장하는 데 그를 둘러싸고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교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지배하는 생각 중 하나였다.
세 번째로, 그 당시 많은 서양 예술가들의 예술적 영감은 인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인도의 무엇이 그들을 빠져들게 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도를 다녀온 여행객들이 극도의 호불호를 보이면서, 빠져드는 사람들은 극단에 가깝게 빠져드는 현상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내가 인도를 가 보지 않았고, 지금의 인도와 필립이 갔었던 60년대의 인도는 전혀 다른 공간일 것이다. 서양인들의 인도 홀릭이 인도 요기들을 포함한 인도 명상가들을 뉴욕 등의 서양 공간에 흘러들게 만드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서양인들의 인도철학과 명상에 대한 호감은, 필립이 죽음을 앞둔 캔디의 진료와 치료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인도의 무엇이 그들을 빠져들게 만들고, 동서양을 막론한 현재의 사람들에게 격한 호응을 이끌어내는지..
음악은 단지 음악만이 아니고 삶의 철학과 문학과 역사와 비판에서 비롯됨을 필립은 잘 설명해준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예술가들은 반정부적이고 급진적인데, 국가의 지원이 없는 예술가들은 정부나 정책에 무관심하다는 내용에서는 독특함과 어떤 아이러니를 느낀다. 음악을 공부한다고 할 때, 단지 오선지 위의 음표나 한 두 개의 악기만을 공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한 분야를 평생 동안 깊이 있게 파고드는 이들의 공통적이며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이전에는 ‘음악은 어디서부터 오는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이제는 ‘음악은 무엇인가’라고 고민한다. 살아있는 대가라 칭송받는 이의 고민이 이렇게 근본적이다. 치열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만 음악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의 일대기를 방금 다 읽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 다시 그의 음반을 cd플레이어에 넣는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의 음반 몇 개도 더 주문했다. 귀에 좀 더 익은 선율로 다가올 것이다. 선율이 좀 더 익숙해지면, 그의 글에서 느꼈던 자연스러운 치열함을 선율 안에서 복기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임을 확신하며, 그의 음악에 나의 약간을 투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