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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18. 2019

옥스포드에서의 일주일

10월 첫 주 내내 영국 옥스포드 경영 대학(Said Business School)에서 열리는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 과정에 참여했다. 24개국에서 42명이 모여 팀을 나누어 실제 고객을 위해 비즈니스 시나리오를 기획하는 과정이었다. 생각해보니 일주일 동안 딱 한 번의 외부 저녁행사를 빼고는 숙소와 강의장이 있는 건물 밖으로 나와보질 못했다. 일정이 오전 7시 45분에 아침식사로 시작해서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에 마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내며 느낀 것들.


1. 시나리오 플래닝은 경영에서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 2-4개를 만들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현재의 전략을 검토하는 방법론이다. 내가 속한 팀의 고객은 영국 공중 보건분야에서 자문을 하는 정부 최고위직인 Chief Medical Officer(CMO)였다. CMO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매년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정해 연구를 하고 이를 연례 리포트(annual report)로 만들어 정부 각 부처에 정책 자문을 한다. 올해 이들이 작업중인 리포트의 주제는 2040년의 도시. 2040년에 건강한 도시의 모습이란 과연 어떤 것일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를 기반으로 현재 정책에서 미리 고려해야 할 것을 살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강조하듯 어차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만약 나의 삶에 적용해본다면 중요한 질문은 “미래의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서로 상반될 수도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현재 나의 삶을 사는 방식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2. 옥스포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건물 중 한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해리 포터>(실제 해리포터 영화는 옥스포드의 또 다른 건물에서 찍었다)에 나올만한 건물에서 식사 하는 이 자리에서 담당교수는 옥스포드에서의 교육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곳의 튜터(tutor)시스템이었다. 이곳의 교육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로, 학부생 2-3명이 해당분야 전문가인 튜터와 일주일에 1-2번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이나 논문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를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의 강의를 유투브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오늘날, 앞으로의 교육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이 오래된 대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3. 채텀 하우스는 1920년에 설립된 영국의 싱크탱크인 왕립 국제 문제연구소(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를 가리킨다. 수업 첫날 ‘채텀 하우스 룰(Chatham House Rules)’이을 참여자들에게 강조하는데, 이 곳에서 토론 중에 듣게 되는 이야기를 외부에 발설하게 될 때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자신이 회의에서 듣게 된 내용을 외부에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는지, 그 사람이 어느 기관 소속인지에 대해 비밀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흔히 “여기에서 들은 이야기를 어디 가서도 하지 말라”는 원칙이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보다 현실적인 원칙이란 생각이 들었다.


4. 금요일에는 고객 앞에서 발표를 하는데, 내 짝은 트레이시라는 영국인이었다. 그는 청각에 다소 문제가 있어서 귀에 장치를 달고 다니며, 발음도 아주 명확하지는 않다.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조카가 지적 장애가 있어서 어릴 때 주변에서 의사를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지만 부모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제때 치료를 못해서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부모 중 한 사람이 의사였음에도 말이다. 트레이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대하는 데 있어 어떤 차이도 없었다. 이러한 장면이 익숙치 않은 나만 차이를 느꼈을 뿐이다. 한국의 임원 교육 프로그램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이 다른 회사에서 온 임원들과 토론하고 발표하는 장면을 아직까지 나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주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지난 5월에는 하루동안 옥스포드를 방문했지만, 한 주간 있었던 이번은 오히려 옥스포드를 둘러볼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도시 옥스포드에서 구경이나 관광은 못했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들(칠레, 오만, 가나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사람들과 토론을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과 배우고 나눈 대화는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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