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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29. 2019

꼬치구이 집에서 결혼 기념일 축하로 많이 먹고 마시기

하얏트호텔 텐카이

결혼기념일을 앞둔 주말이 되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결혼 하고 꽤 많은 시간은 둘이 각자의 일로 바빴고 같이 한 시간 중 대부분은 먹고 마시고 여행을 했다. 결혼기념일이면 어디에서 무얼 먹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데 특별한 곳을 가기 보다 두 사람이 가장 편하게 자주 가는 단골집 중 한 곳을 가게 된다. 아쉽게도 우리에게 의미있는 음식점과 바 중 꽤 많은 곳들이 세월이 지나며 문을 닫았다. 청담동의 이자카야 ‘미타야’가 그랬고, 양재동의 ‘더 바 도포’가 그랬고 집 근처의 ‘이꼬이’도 그렇다. 일 끝나고 잠깐 들려 간단하게 밥을 먹고 술을 마시던 곳, 주말이면 편한 마음으로 들러 여유있게 식사를 하던 곳, 좋아하는 친구들을 불러 함께 가던 곳.


몇 곳 남지 않은 친숙한 단골집 중 하나가 하얏트 호텔의 꼬치구이 집인 ‘텐카이’다. 회사 일 끝나고 맥주 한 잔에 간단한 안주를 먹을 수도 있고, 배고픈 날은 우동이나 덮밥을 먹기도 하는 곳. 꼬치 구이 한 두개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온갖 메뉴를 잔뜩 시켜 전투적으로 빨리 먹고 가기 때문에 일하는 분들도 좋아한다^^. 한 시간 동안 남산을 걸어서 도착한 텐카이, 카운터에 앉아 빛의 속도로 이미 다 알고 있는 메뉴를 확인한다. 세트메뉴도 있지만 먹고 싶은 것 전부를 조금씩 맛볼 수 있도록 단품으로 시킨다. 닭꼬치가 메인이다 보니 시작은 늘 채소 스틱. 그러지 않아도 넘쳐서 고민인 입맛을 더 살리겠다며 문어 초회도 시키고 술은 맥주 대신 사케로. 차도 안가져 갔으니 신나게 마실 준비 끝이다. 닭날개와 모래집, 마늘과 은행을 하나씩 시켰다. 뭐 이렇게 많이 시키나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이다. 정말 꼬치 하나씩 나오니까.  

여기에 다시 닭껍질과 닭다릿살 대파 꼬치를 시키고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구운 주먹밥. 또 이것저것 꼬치를 먹고 메인으로 넘어가서 이베리코 돼지고기와 양갈비 구이를 먹었다. 양고기를 싫어하는 분들이라고 해도 이곳 양갈비 구이는 좋아할 것이다. 살짝 감도는 특유의 향이 오히려 기분 좋게 느껴지는데, 알루미늄 포일로 감싼 갈비를 들고 뜯어먹는 호쾌한 느낌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칼과 포크로 잘라 먹는 양고기 스테이크보다 훨씬 낫다. 겨울이라 굴을 사용한 요리가 계절 특선으로 준비되어 있다니 당연히 먹어봐야지! 빵가루 입힌 굴 튀김을 주문해 사케와 먹으니 겨울인 것이 행복하다. 이쯤에서 끝내야 윤리적으로 옳은데, '특별한 날이니까', 하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덴푸라 우동 추가. 이곳의 덴푸라 우동은 우동 위에 튀김을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동 한 그릇과 덴푸라를 넉넉하게 한 접시 따로 준다. 이렇게 다 먹고 나서야 그때부터 배부르다는 생각이 드니 나의 뇌는 위장보다 인식 속도가 느린가, 한심한 일이다.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 먹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는데 결혼 전은 물론 결혼 후에도 내내 함께 먹고 마셔대고 있으니 행복한 것이 맞겠지. 원래 생각은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좋은 배우자이면서 파트너였는지 물어보고 나를 반성하는 진지한 시간을 가지려는 거였는데… 저녁을 먹으며 다음 번 여행은 어디로 가서 무얼 먹을지 이야기하는 바람에 깜빡 놓치고 말았다. 아무 거나 잘 먹고 너무 많이 먹고 이상한 것도 다 먹고 샴페인도 많이 좋아해서 가끔 미안하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어. 이런 줄 다 알고 결혼한 거잖아^^. 결혼하고 늘은 건 몸무게와 음주량 뿐, 앞으로도 계속 이럴 텐데 그것도 뭐 어쩌겠어. 난 그저 “같이 잘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우리 가훈에 충실했을 뿐인 걸. 
테이블과 자리가 많지도 않고 가격이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엄청 비싸지는 않은 곳, 함께 자주 오는 곳이니 이 집은 문 닫는 일 없이 오래오래 잘되면 좋겠다. 할머니가 되어 찾아와 옛날 이야기하며 지금보다 더 기세 좋고 먹고 마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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