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오 아이스크림

by HER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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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 아이스크림입니다. 서래마을, 청담동, 이태원에 위치한 테이스팅룸의 디저트 메뉴 중 한 가지입니다. 뜨거운 팬에 따뜻한 부서지고 부드러운 오레오 쿠키, 그리고 그 위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묘한 조화를 이뤄냅니다. 일부 일식집에서 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튀김과 같다고 할까요?

테이스팅룸에는 또 한 가지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팝콘소금 아이스크림입니다. 단 맛의 아이스크림에 소금을 뿌려 나오는데, 그 조화가 또 묘합니다.

실제로 고급 레스토랑의 맛있는 음식들의 특징 중 하나는 맛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맛과 짠맛, 차가운것과 뜨거운것, 딱딱한 질감과 부드러운 질감 등이 오묘하게 입 안에서 동시에 느껴지고, 입안 이곳저곳을 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극합니다.

얼마전 오레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리고 옆 테이블에서 시킨 팝콘소금 아이스크림을 보며, 삶에 대해서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굿바이 게으름>의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문요한씨는 <문요한의 에너지 플러스> 770호와 771호를 통해 ‘삶에는 직선이 없다’와 ‘일탈이 필요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조금 길지만 그의 글 두 가지를 인용해봅니다.

[1] “훈데르트바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건축가이자 미술가이자 환경운동가입니다. 그는 건축을 또 하나의 옷이라고 보았으며, 공학적으로 정확한 치수의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들을 지어 왔습니다.

그는 나선과 곡선을 좋아했고, 양쪽의 색깔이 다른 짝짝이 양말을 즐겨 신었으며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듯 아주 천천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백 개의 강’이란 뜻의 ‘Hundertwasser’로 개명하였고 그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삶을 살아가다 그 강들이 모두 만나는 태평양 바다 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훈데르트바서의 말처럼 자연에는 직선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반듯한 세모나 네모는 자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뭉뚱그려진 네모나 세모가 있고, 어설픈 원이 있으며, 구부러진 선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직선으로 이루어진 문명에 오래 동안 살아오면서 직선으로 된 세상을 너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의 생각과 관계와 삶도 점점 직선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규격화되고 획일화되고 최단거리만을 생각하며 누군가 다칠 수 있는 예리한 각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효율성을 중시하는 직선형 인간들의 다수가 심각한 실행력의 문제를 보이고 삶의 발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A에서 출발하여 B까지 도착하는 최단거리를 생각하고 언제까지 B에 도착해야만 이를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오직 앞으로 반듯하게 나아가는 것만을 생각하기에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 B로 우회하는 것이나 다른 지점으로 가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직선적인 변화만을 추구하기에 직선에서 벗어나는 것을 실패라고 여기고 그 점에서 선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어떤 의미나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며 인간은 자연입니다. 자연에 직선이 없듯이 삶에도 직선이 없습니다. 삶은 꼬불꼬불하고 부드러운 커브를 지니고 순환하고 있으며 그 선 안에 다양한 가능성과 보물을 품고 있습니다. 때로 알지 못한 점으로 그 선이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신만의 선을 그려가며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지나온 삶을 선으로 그려보면 어떤 모양일까요? 직선이 아니라서 못마땅하나요?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그 구부러진 선이야말로 당신이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니까요.”
(출처: 2014. 7. 4 당신의 마음을 깨우는 ‘문요한 에너지 플러스’ 770호)

[2] “영어나 불어로 일탈을 ‘deviance’라고 표현합니다. 이 단어는 ‘길(via)을 벗어난다(de)’는 의미이기에 사실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탈하면 가출, 범죄, 불륜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인생은 ‘떠남’과 ‘머묾’의 양면을 모토로 이루어져 있기에 일탈이란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한 축입니다. 즉, 한 사람의 인생이란 반복과 일탈의 혼합에 의해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처럼 일탈에 의해 만들어지는 리듬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지요.

길어진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는 여행과 같은 일시적인 일탈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삶의 궤적을 바꾸는 큰 일탈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일탈 공포증’을 가지고 있어 안전하고 반복적인 일상만을 거듭하며 평생을 살아갑니다. 또 반대로 어떤 이들은 ‘반복 혐오증’을 가지고 있어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항상 새로운 것만을 찾으러 다닙니다.

모든 일탈이 창조나 자기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반복이 안정이나 깊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반복과 일탈의 균형을 조율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2014. 7. 9 당신의 마음을 깨우는 ‘문요한 에너지 플러스’ 771호)

실제 비엔나에 갔을 때, 훈데르트바서가 지은 건물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빌딩이지만, 사각형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신기한 모습이었습니다. 소금 아이스크림, 뜨거운 팬에 담겨져 나오는 아이스크림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나요? 뜨거울 때와 차가울 때가 있고,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으며, 짠 순간도 있습니다. 딱딱할 때와 부드러울 때가 있지요.

리더십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의 상태에 따라 위임(delegating)을 하거나, 통제와 지시(directing)를 해야 할 때가 있고, 코칭(coaching)을 하거나, 함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해줘야 (engaging)할 때가 있습니다. 코칭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거나 통제와 지시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미숙한 리더십이라고 하지요.

제 삶을 색깔로 표현해보면 무슨 색깔일까요? 한 가지 색깔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관성’이 무턱대고 좋은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드네요. 좀 더 다양한 색깔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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