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국수’와 ‘우유 데우기’

by HER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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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끔씩 저녁에 간장국수를 해 먹습니다. 재료준비에서 요리까지 대략 30분에서 45분 정도가 걸립니다. 먹는데는 15분:) 설겆이하는데 15분 정도. 1시간 내외의 시간입니다.

‘생산적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리하고 설겆이하느라 피곤할수도 있겠지요. 언젠가 한 지인으로부터 ‘행복은 비생산적인 활동에서 나온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그 말이 잊혀지질 않고, 나이가 먹을수록 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학규씨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에겐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것일지 모릅니다. ‘일’로 저녁을 외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못해 당연한 것이 우리의 삶이고, 가족이 모여 평일에 저녁식사를 하는 것은 드문 풍경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양적 성장’을 이루어왔다면 현재 우리는 그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다. ‘질적 성장’은 따라오지 않았고, 단적으로 우리 삶의 질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임정욱씨의 글 ‘저녁이 있는 삶과 창의력’도 한 번 읽어보시길.)

저녁이 없다고 불평하는 우리 모습에서 두 가지 측면을 봅니다. 하나는 외부의 환경, 즉 직장 상사가 회식을 요구하거나 업무상 나만의 저녁 시간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부분.

또 하나는 그런 외부 환경에 너무 익숙해지다보니 때로 저녁 시간이 나더라도 바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왠지 밖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채워야” 뭔가 하루가 마감될 것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특히 30대에는 더더욱.

‘저녁이 있는 삶’? 네 ‘개뿔’ 맞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가 되었든 한 달에 한 두번이 되었든, 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저녁이 있는 하루’는 충분히 있습니다. ‘비생산적인 일’을 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저녁. 간장 국수를 해 먹고, 밀크팬에 우유를 데워 커피와 섞어 마시는 일도 제겐 그런 ‘비생산적인 일’에 해당합니다.

얼마전 한 잡지에 ‘Korean Dilemma’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일부를 발췌하여 요약해봅니다.

(1) 한국의 학생들은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합니다. 15세에서 24세 사이 한국인들은 학교나 학원 혹은 집에서 하루 평균 7시간 50분 동안 공부하죠. OECD 국가의 평균은 5시간입니다. 거의 세 시간을 더 공부하는 셈입니다. TV나 비디오도 덜보고, 잠도 덜 잡니다.

우리나라의 평균 읽기, 수학, 과학 능력이 월등한 것이 이해가 되지요. 하지만, 한국의 청소년들은 즐거워서 공부하기보다는 가족의 압력으로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CNN은 한국식 교육 모델을 ‘pressure cooker model’이라고 이름 짓기도 했습니다.

(2) 부모들은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아낌없이 자녀들의 교육에 투자할 뿐 아니라 아이들 교육을 위해 떨어져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결혼가구의 10%(115만 가구)는 결혼했지만 배우자와 떨어져사는데, 이 중 절반인 50여만 가구가 ‘기러기 가족’으로 추정됩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기러기 아빠 10명 중 8명 가까이 영양불량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3명은 우울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다시 또 매우 열심히 일합니다. OECD 국가의 평균 근로시간은 연간 1,776 시간이고, 한국은 2,090시간입니다. 프랑스는 1,476시간이며, 미국은 1,787시간 일합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민 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일주일 평일 5일 가운데 이틀 이상 가족과 저녁을 먹는 사람의 비율은 64%이고, 76%였던 지난 2005년 이후 12% 급락한 수치라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 수치가 현실보다 더 높게 나온것 아닐까 싶습니다)

당연히 ‘일과 삶의 균형’에 있어서도 OECD가 3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가 1, 2, 3위를, 프랑스가 14위, 한국은 OECD 33위로 거의 꼴찌입니다.

이렇게 한국인의 삶은 학교에서는 공부하고, 가정에서는 압력을 받고, 직장에서는 일을 열심히 합니다. 지난 50여 년 동안 엄청난 경제적 성취를 이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그토록 성공적인 이유에는 보다 더 깊은 문화적 특성이 있습니다.

2009년 7월 뉴욕타임즈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

Eurobarometer Survey에 따르면 덴마크 사람들은 전체 국민의 3분의 2이상이 “내 삶에 대해 매우 만족하다”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높은 만족감은 덴마크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만들고 있지요. 근데 왜 다른 유럽국가가 아닌 덴마크일까요?

연구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매우 중요한 것을 찾아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기대치(expectation)가 그리 높지 않으며, 따라서 삶에서의 작은 일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만족해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쉽게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아는 문화가 덴마크를 가장 행복한 국가로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의 이유를 밝힌 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보면서 잡지 기자로 20년 넘게 일해온 아내와 저는 한국의 놀라운 성공의 이유에 대한 그럴듯한 가설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기대감이 높기 때문에 성공을 만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here and now)’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높은 지위, 더 큰 집, 더 비싼 자동차를 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학생들은 더 높은 성적을 받고, 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덜 자고, 덜 놀며, 덜 운동하고, 더 많이 공부합니다.

사람들은 삶에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좋게 보이는 것에 더 큰 신경을 씁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주변 사람과 비교하며 더 성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성공과 생산성이 행복과 일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국의 통계 개발원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3> 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36개국중 26위에 그쳤으며, 한국인들은 나이가들수록 만족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교는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평생 죽음에 대한 연구로 삶에 대한 깊은 인사이트를 남긴 <인생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의 말입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양재우 연구원이 최근 쓴 글을 보니 이런 대목이 나오더군요.

“노동철학을 연구한 미국 교수 조안 B. 시울라(Joan B. Siula)는 자신의 저서인 『일의 발견』에서 ‘고용이란 자유와 기회로 이어지게 될 일시적인 노예 상태를 의미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용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고용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유와 더불어 돈이 아닌 본인이 원하는 다른 일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자발적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는 것이죠”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특히 현 직장 생활에 대해, 내가 하고있는 일에 대해 만족이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라면 말입니다. 얼마전 30대 후반과 50대 초반의 지인 두 사람을 각각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미래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현실적으로는 너무 바빠서 깊이 생각하거나 어떤 변화를 주기 힘든 상황에 대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그 ‘쳇바퀴’에서 빠져 나오질 못하고 ‘직장에서 밀려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 쳇바퀴를 나오고 싶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가 감히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라는 것이고(출퇴근 길에 찻집에서 30분만 혼자서 보낸다하더라고), 또 하나는 나의 ‘부고기사(obituary)’를 써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아버지가 누구였고, 어디에서 직책이 무엇이었다는’ 그런 부고기사 말고, 정말 삶에서 무엇을 좋아했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부고기사 말입니다 (역시 임정욱씨의 글 ‘고인 이름이 없는 부고’도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죽음에 마주 대한 나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인생수업>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이 책 전체의 핵심 문장이자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저는 아마도 평일 저녁 간장국수(조만간 메뉴는 또 바뀌겠지만)를 만든다며 온갖 요리 도구를 꺼내어 놓고, 부엌에서 Tivoli 라디오를 틀어놓고, 아내가 ‘당근과 오이의 크기를 똑같이 썰어야지!’라고 하는 잔소리를 들으며 만든 간장 국수와 살짝 차가운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마시는 것.


간장 국수를 먹은 후 밀크팬에 우유를 데우고, 아내가 보석보다 더 아끼는:) 좋은 커피잔에 우유와 커피를 섞어서 마시며 진한 초콜릿 케익 한 입을 베어물며, 내년에 떠날 여행지에 대해 Patricia Schulz의 <1000 places to see before you die>를 펴 놓고 이야기하던 저녁을 한 번 더 갖고 싶다고 바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바쁘게 살면서도 되도록이면 오후 6시 즈음 집으로 달려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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