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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06. 2019

바람, 소리, 하늘, 이웃 _ 그동안 잊고 살던 것들


지난 금요일 저녁 아내의 친구집에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모임을 가면 중간에 시계를 보게 되는데 이 날은 한 두 시간 지났을까 하고 처음 시계를 보았을 때 이미 4시간이 훌쩍 넘은 때였습니다.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고, 평소 시내의 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가질 때에는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날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며 잊고 살던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첫번째는 바람이었습니다. 평소 아내 친구의 집을 페북 사진에서 보곤 했습니다. 산 위에 있는 집, 옥상에서 밥을 먹고 대화를 하며 경험한 바람은 사진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요. 옥상에서 밥을 먹는 내내 물건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몸의 땀과 온기만 살짝 식혀주면서 시원하게 부는 바람은 에어컨과는 물론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제한된 시간 내에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많이 받았던 때가 언제였나 싶습니다.


두 번째는 소리였습니다. 다들 모인 것은 살짝 해가 저물어가던 시점이었는데요. 집 뒷편으로 있는 나무를 바람이 달리기하듯 지나가며 내는 소리, 그리고 공 튕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두운 저녁에 집 바로 옆 학교 체육관 창문으로 학생들이 농구를 하는 소리가 정말 정겹게 들리더군요. 아파트에서는 층간 소음으로 고생하지만 이 곳은 바람과 나무, 학생과 공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리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입니다. 한창 저녁을 먹고 술잔을 돌리고 있을 때 옆집 이웃이 보이자 아내 친구는 “저녁 먹었어요? 얼른 와요!”라고 하더군요. 옆집 사람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풍경은 응팔에서나 보던 예전 추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웃분은 포도를 깨끗하게 씻어서 함께 자리했고 처음 보는 손님들과 어울려 너무나 편하게 이야기와 음식, 그리고 술잔을 나눴습니다.


광화문에서 이십분 정도 떨어진 이 곳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게 궁금했습니다. 저는 그 해답을 김정운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한다>에서 읽었던 한 대목에서 찾습니다.
“인간은 사물을 지각할 때 사물의 각 부분을 따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형태, 즉 ‘게슈탈트Gestalt’로 파악한다. 이때 중요한 부분은 전경이 되고, 나머지는 배경이 된다…삶이란 이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삶의 어떤 부분이 초점이 되어 전경이 되면 나머지는 배경이 된다…” (102쪽)


아내 친구 부부는 산자락에 집을 짓고 사는 삶에 불편한 것도 많다고 했습니다. 교통도 그렇고 무엇을 사러 가게에 가는 것도 그렇고. 김정운씨는 삶의 게슈탈트를 바꾸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말했는데요. 만나는 사람, 사는 장소, 관심입니다. 이들 부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리함과 넓은 아파트를 삶의 전경으로 택하는 대신 바람과 소리, 이웃(멋진 뷰는 덤입니다:)을 선택하면서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바꿔 살고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양주 한 병을 아내 친구 남편분과 나눠 마셨는데 하나도 취하지 않고 상쾌했던 저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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