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기와 잘 떠나기
저희 부부가 정한 일종의 가훈이라고나 할까, 슬로건이 있다면 “같이 잘 먹는 게 남는 거다”입니다:) 실제 저희 삶의 목표는 매우 단순합니다. 함께 밥먹는 횟수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H+ER의 목표인 것이지요. 이러한 목표달성을 극대화 해주는 때가 여행입니다. 24시간 함께 있기 때문에 삼시 세끼는 물론 간식도 같이 먹게 되거든요. 또다른 목표가 있다면 건강한 동안 일년에 두 번은 같이 여행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좀 멀리, 한 번은 가까이. 그리고 ER이 안식월 휴가를 받는 3년에 한 번은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3년 스페인 남부지방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HER Report를 시작했고, 2015년에는 프랑스 북부를 한달 동안 여행했습니다. 내년에는 이태리 북부를 한 달간 여행할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50대에 일 년 간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 살아보는 것이 목표이긴 한데, 그게 안된다면 나이가 들어 일이 줄고 시간이 더 많아질 때 일 년에 한두 달 간 여행하는 것이 꿈입니다. 물론 저축도 많이 해놓아야겠지요:)
이렇게 24시간 붙어 지내다 보면 많은 이야기들을 하게 됩니다. 이번 헬싱키 여행에서는 잠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 중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남은 사람이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루고, 떠난 사람의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해 샴페인을 마시며 추억을 나누는 것으로 대신하자구요. 세상을 떠난 뒤에 형식이 무엇이 중요할까 싶었습니다. 그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즐겁게 밥먹는 시간을 늘려가고 싶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일을 더 많이 하지 않은 것은 후회하지 않겠지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은 후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같이 잘 먹는 게 남는 거다”라는 가훈은 앞으로도 중요한 지표가 될 것 같습니다.
p.s. 아래는 이번 여행 중 보았던 Alice Neel의 전시회에서 만난 그림들입니다. 첫번째 그림은 The Soyer Brothers로 앨리스 닐이 1973년에 그린 작품입니다. 소이여 형제는 앨리스가 30대부터 알고 지내던 진보적 예술가들입니다. 쌍둥이였던 라파엘(왼편)과 모세(오른편)는 나이가 들고 살 날이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했던지 앨리스에게 모델을 자처했습니다. 실제 모세는 이 그림이 그려진 이듬해인 1974년에 세상을 떴습니다. 노년의 쓸쓸함이 드러난 이 작품을 이번 방문 때 오랫동안 쳐다보았습니다.
또 하나는 1946년 앨리스 닐이 그린 Dead Father입니다. 앨리스는 아버지를 딱 한 번 그렸는데, 바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장례식 다음날 앨리스가 기억을 더듬어 그린 아버지입니다. 아내에게 잡혀 살았던 조용한 남자, 별다른 특징이 없던 남자였다는데 그래서인지 화가인 딸도 아버지 생전에 초상화 그릴 생각을 못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