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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06. 2019

추억이 오래 남아있을 수 없는 서울

‘더바도포’와 작별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종종 가장 단순한 형태로 찾아온다는데 저에게는 이곳의 음식이 그렇습니다. 채 일년도 못되어 문을 닫거나 이사를 가거나 업종을 바꾸는 레스토랑이 많은 요즘,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맛으로 손님을 맞아주는 이런 곳이 있어 다행입니다. 언젠가 이곳에서 Her Report 번개모임을 할 수 있기를요^^”


지난 2016년 3월 이렇게 소개했던 서초동 더바도포. 우리 두 사람이 가장 오랫동안 다녔던 추억의 레스토랑으로부터 한 해의 마지막날인 어제 갑작스런 문자를 받았다.


“더바도포 영업종료 안내: 그동안 더바도포를 찾아주신 고객분들께 감사 드리며 건물주의 공사계획으로 인하여 향후 현 장소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아쉽게도 12월 31일로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오랫동안 더바도포를 아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너무나 갑작스럽고 슬픈 소식이었다. 가끔씩 들리던 정겨운 식당이 두 군데가 이촌동의 이꼬이와 예술의 전당앞 더바였다. 그런데 두 곳이 모두 2016년 문을 닫은 것이다. 광화문 교보빌딩 뒷편에서 99년에 샌드위치 전문점으로 열었던 더바도포는 2001년 예술의 전당 건너편에 확장 이사하면서 내내 우리에게 집밥같은 이태리식당이었다. 17년만에 문을 닫은 것이다. 킹스싱어스, 마커스 밀러, 안드라스 쉬프의 공연과 수많은 전시를 보러 갈 때면 들리곤 했던 단골집.


문자를 받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마침 일보러 나가던 차에 더바로 향했다. 늘 시켜먹던 페퍼로니 피자와 앤초비 파스타. 그리고 화이트와인, 티라미슈와 커피를 폭풍주문했다. 주인은 우리가 시킨 피자가 이 식당의 마지막 피자였다고 말해주었다. 주인에게 소감을 묻자 정말 시원섭섭하다고. 오랜 단골이었던 우리에겐 섭섭함만 남아있다.


90년 가까이 손님들의 사랑을 받는 도쿄의 루팽바 등을 다녀온 직후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추억이 남아있지 않은 공간으로서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서울에도 오래된 곳이 있다. 한일관은 1939년에, 교보문고는 1980년에 설립되었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 오래된 공간들과 비교할 때 보존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도쿄 루팽의 경우 2017년 손님들이 좁게 앉아 몸을 기대고 술 한 잔을 하는 카운터 바는 1935년에 설치한 모습 그대로다. 어린시절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책에서나 만날 소설가나 예술가들이 몸을 기댔던 역사가 그대로 낡은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청진옥이나 한일관에서는 오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역사가 오래된 조선호텔도 레스토랑이나 바(bar)의 모습을 계속 바꾼다. 광화문에 있던 피맛골도 빌딩이 올라가고 푯말 하나 남았을 뿐이다. 젊은 날 점심시간 피맛골에서 좁은 공간에 앉아 생선구이를 먹던 추억을 이야기하기 쉽지않다. 서울은 끊임없이 이야기와 추억을 지워가는 도시가 아닐까. 올해의 마지막날, 오랜 이야기와 추억이 담긴 더바도포의 마지막날을 아쉬워했다.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그리 머지 않은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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