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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10. 2019

헬싱키 침묵의 교회(캐피)에서 느낀 배려

‘침묵의 교회(church of silence)’라는 이름을 듣고 교회와 침묵은 늘 함께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소리내어 기도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목사나 신부의 설교가 있고, 결혼식과 장례식,행사들이 있고, 물건을 팔기도 하고… 침묵을 지킬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이 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것으로 따지면 서울에 비할 바 아니지만, 헬싱키 시내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쇼핑가에 높이 11.5미터, 얼핏보면 커다란 욕조 혹은 UFO처럼 생긴 목조 건물, 캠피 채플(Kamppi Chapel)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철저한 침묵의 공간입니다. 여기는 루터교 교회이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평화와 침묵을 위해 잠시 머무르도록 배려한 공간입니다. 누가 다가와서 “교인이신가요?”라고묻지도 않으며 “교회에 봉사하라”거나 “헌금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시내 가장 복잡한 곳에 철저히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공간에 들어와 침묵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스스로 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 교회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행사나 예배/미사가 없습니다.


특이한 것은 입구에 교회 직원과 우리로 말하면 보건복지부에서 나온 공무원이 서 있어서, 누구나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 수가 있습니다(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딱딱한 ‘공무원’의 이미지를 떠올리시면 안됩니다: 친근하고 따뜻합니다). 따로 약속을 잡을 필요도 없이 그저 고민이나 걱정이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때를 위해 교회 직원과 공무원이 함께 시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 건물은 2012년 세계 디자인수도(WDC)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만든 랜드마크 건물입니다. 헬싱키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인 Mikko Summanen, Niko Sirola와 Kimmo Lintula가 디자인을 했는데 세 가지의 다른 나무를 썼습니다. 외벽은 가문비나무(spruce)에 나노테크놀러지를 활용한 특별한 왁스를 칠했다고 합니다. 내부 벽은 오리나무(alder), 내부에 교회당에 들어서는 문은 물푸레나무(ash)를 썼다고 합니다. 천장은 석고보드(plasterboard)로 방음을 했다고 하네요.


이 작은 건축물은 종교단체와 정부가 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할 지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위압적으로 크게 짓는 교회가 아니라 복잡한 도시 안에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교회. 시민들에게 훈계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면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공무원을 배치하는 정부. CNN은 이 ‘침묵의 교회’를 보도하면서 “현대건축이 매혹적이고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평가를 했는데요. 저희에게는 건축물을 지은 사람들의 마음과 이를 운영하는 종교단체와 정부의 배려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잠시나마 (자기네 교인들이 아닌) 시민들을 보호해주고, 필요하면 누구라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건물(하드웨어)이자 마음(소프트웨어)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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