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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11. 2019

‘사이도코로 야스카와’

기온 게이샤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뎅집


오뎅집, 교토


비내리고 추우니 오뎅 맛집을 찾다 발견한 곳이 기온 근처의 ‘사이도코로 야스카와(菜処やすかわ)’다. 작고 포스 넘치는 이런 곳은 빨리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는데 오픈 시간 6시 좀 넘어 갔더니 벌써 만석. 짧은 일어에 손짓발짓 두 손 모아 부탁했더니 1차로 온 손님들 돌아가는 8시 반 이후에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다른 곳에 가는 게 맞는데 오기가 생겨 “그럼 근처 돌아다니다 시간 맞춰오겠다” 하니 주인 아주머니 한숨 쉬고 알겠다고. 이런 끈기를 다른 데서 발휘했더라면 땅 사고 빌딩 올렸겠다…


줄창 칵테일 마시다 8시 반에 갔더니 여전히 자리가 없다. 다시 온 우리가 불쌍했는지, 주인아주머니가 카운터 손님들에게 “좀 좁혀앉으라” 호령하며 어디선가 의자 두 개를 꺼내다 놓아준다. 홍해의 기적을 보는 느낌!


당연히 먼저 오뎅을 시켰다. 뭐가 맛있을지 모르겠어서 하나씩 다 달라고 하니 옆에 혼자 앉은 나이 지긋한 노부인이 말린다. “오뎅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으니 나눠 시키세요.” 옆 자리 아저씨는 이 집 주인의 친척이라는데 “오뎅으로 국제 교류를 하자”며 메뉴 추천에 합세. 


깍쟁이 같은 교토 사람들 특징 상 이렇게 모르는 남일에 나서 도와주는 일은 드문 편인데 이 집의 오랜 단골이라 가능한 듯. 오뎅의 근본인 무(한국오뎅집에서는 이상하게 인기가 없다), 교토 명물인 두부, 이맘 때 제철인 죽순, 감자, 히라텐 등을 시키고 다시 고보텐, 치쿠와, 실곤약과 두부, 스지, 계란을 시켰더니 다들 놀란다. 주위를 보니 오뎅 한두 개로 술 한 병을 비운다. 


탕으로 먹는 한국과 달리 오뎅을 담고 국물은 살짝 끼얹어준다. 뭐 대단할까 싶었는데 맛있다! 간도 적당하고 각각 맛이 다른 오뎅을 하나씩 먹는 재미가 있다. 게눈 감추듯 먹고 다시 한 그릇 추가. 이집 계란말이가 교토에서도 손꼽힌다는 말을 듣고 시켰더니 뜨겁고 부드럽고 간이 딱 맞게 나왔다. 간간한 오반자이 채소에 흰밥 한 그릇 먹고 마무리.


옆 자리 아저씨에 따르면 원래 이곳은 4대 전부터 게이샤가 머물던 ‘오키야(置屋)’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지금 주인의 선대는 50년대 꽤 유명한 게이샤였고 은퇴 후 오키야를 운영했는데 1985년부터 현재 주인인 딸 야스가와 유키코 씨가 음식점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지금도 게이샤니 마이코상들이 늦은 저녁식사를 하러 자주 들르는 곳이란다.


사장님이나 직원들은 영어 소통이 어렵고 영어 메뉴는 별 도움이 안된다. 단골로 늘 붐벼 굳이 의사소통 힘든 외국인 여행자를 반기지는 않는 듯하다. 하지만 물가 비싼 기온 일대에서 맛있는 오뎅과 교토식 가정식을 적당한 가격에 맛볼 수 있으니 가볼 만 하다. 90도로 허리 굽히며 몇 번이나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를 외치는 전형적인 일본식 서비스가 아닌, 포스 넘치고 조금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필요한 배려는 다 해주는 츤데레 사장님과 단골손님들이 만들어내는 시끌법적한 분위기와 맛있는 오뎅이 가끔씩 그리워질 것 같다. 


八坂新地末吉町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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