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대부분 여름옷을 꺼낸다는데 나는 먼저 얼른 여름 그릇을 꺼낸다. 투명한 유리그릇을 쓰는 것은 5월 말부터 8월말까지 고작 3개월이다. 그릇 좋아하셨던 외할머니가 “처서 무렵부터는 유리 그릇이 차갑다”고 하셨던 기억난다.
베니스 무라노섬이나 체코, 일본 오키나와처럼 유리와 글라스웨어로 유명한 곳으로 여행을 가면 사오곤 하는데, 무겁고 깨질까 내내 신경 쓰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부엌에서 쓰는 건 무던하고 튼튼한 유리 그릇. 색깔이 들어가면 예쁘긴 하지만 음식 담을 때 고민을 많이 하게 되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투명한 유리그릇으로 대략 정착.
이슬이 맺힌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가스텔헬미, 빙하에서 디자인 모티프를 가져와 1960년대 처음 선보였다가 최근 다시 소개된 울티마 툴레, 단순하지만 조형적인 매력 듬뿍 풍기는 아르네와 에센스… 이딸라는 다양한 글라스웨어 라인을 만들어 내니 누구나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을 수 있다. 독일의 레오나르도와 발터글라스는 독일그릇답게 견고하고 잡는 느낌도 좋은데 과일이나 디저트, 빙수는 물론이고 여름에 시원한 물김치를 담아 먹기도 좋다.
그릇장 속 유리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손길 잘 닿는 곳으로 옮기며 “올 여름도 잘 해보자” 중얼거리니 이젠 그릇과 이야기까지 하냐며 H가 한숨을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