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무턱대고 받으면 체하기 마련이다
'처음인데 그 정도면 훌륭하지!'라고 위로해 주는 사람?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형편없는 수입에, 그마저도 클라이언트가 '땜빵해줄 사람을 찾다가 나를 발견한 것'이라는 생각이 찜찜하게 머릿속에 맴돌았기에, 이 일감이 그가 나에게 주는 마지막일 수도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라는 인간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믿음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받은 첫 일감은 '땜빵'인 듯 찜찜했고, 쥐꼬리만 한 원고료지만 어렵지 않게 프리랜서로서의 첫 수입도 올릴 수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연락이 없는 걸로 미루어, 땜빵이었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어렴풋이 짐작건대, 약 1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아무튼 첫 취재를 무사히 잘 다녀왔노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지만, '그래서 그거 얼마 받는 건데?' 돌아오는 반응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일감 없이 보내는 시간과의 싸움보다도 혼자서 씩씩하게 걸어가야 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스스로 다짐했다. 그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겠노라고. 솔직히 '처음인데 그 정도면 훌륭하지~'라는 말 한마디 듣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사보 제작 회사에서는 종종 연락이 왔지만, 들어오는 수입은 형편없었다. 그만큼 일감이 적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인'과 '지인의 지인' 찬스를 써야 할 때가 왔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지인 중에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연관되는 일을 하는 지인 혹은 지인의 지인을 열심히 검색해보았다. 중소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는 친구의 친구, 언론사에 근무했던 선배, 인쇄소에 몸담았던 친구의 선배 등 찾아보니 몇몇 관련 분야 종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을 공략해야지, 만나보면 어떤 답이라도 나오지 않겠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만남을 요청하였다. 물론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도와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 역시도 '이미 그만두었기에 도와줄 방법이 없다', '홍보실에 있지만 우리는 사보를 만들지 않는다' 등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일감은 조금씩 늘어갔다. 입에 풀칠이나 하는 수준이자, 백수라는 말 면하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나의 영역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런데 사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기에,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단행본 한 권을 맡아서 써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찔끔찔끔 감질나게 들어오던 일감 몇 한꺼번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초보인 나에게 그렇게 큰 제안이 들어온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단가가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던 것이다. 그 제안을 한 회사 역시도 내가 몇 개월 전에 이메일을 보냈던 사보 회사였는데, 그 회사는 사보뿐만 아니라 다른 책도 만든다는 것이었다. 절호의 기회였기에 단가는 맞지 않아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도 수지타산은 맞아야 해 먹을 수 있는 것이 모든 장사(?)의 기본이기에,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약 2개월 정도 꼬박 작업을 해야 될까 말까 한 방대한 분량의 일이었는데, 남는 돈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다음을 기약하며 일감을 받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그 일을 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 후로도 종종 실수로 잘못 맡은 일 하나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수 하나가 프리랜서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타격을 입힌다는 사실은 항상 머릿속에 새겨놓고 있지만, 일에 대한 변수는 예상 범위 밖에서 발행하기 때문에, 조심스레 견적을 뽑아봐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일이라고 100% 확신할 수는 없다.
초창기 시절 그런 일을 겪었다면, 아마도 중도에 하차하지 않았을까 싶다. 중도 하차라는 말은 결국 나 자신의 스펙을 깎아 먹을 수밖에 없기에, 무턱대로 덥석 받았다가는 향후 업무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결국은 프리랜서를 포기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는 말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상한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때 깨달은 사실 중 또 하나는 내가 거절하면 두 번 다시 나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몇 차례 일을 맡아 진행한 후에는 내가 한 번 거절해도 대부분 다시 나를 찾는다. 나 역시도 항상 시간을 비워놓고 대기할 수는 없으니, 시간이 안 맞아 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험상 첫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그 이후에 다시 나를 찾지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그래도 그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맡은 일인데, 만약 일을 하는 중간에 포기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회사에서는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내고 다닐 수도 있다. 책임감 없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할 수 없다고 거절을 하면, 적어도 그런 걱정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 없는 일은 애초에 거절해야 한다. '자신 없음'에는 내 능력치의 한계도 포함되지만, 업무 대비 효율성도 포함된다. 즉 단가가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일 역시도, 자신 없는 일 중에 하나이다. 만약 친한 지인이 원고 하나만 써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고 가정하자. 그 일은 무상으로 해줄 수 있다. 왜냐면 친한 지인이기 때문에 수지타산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인이 부탁한 원고의 내용을 들어보니,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가정하자. 그럼 그 일은 적어도 나에게는 '자신 없음'에 해당되는 일이다. 회사로부터 받은 제안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계속 해오던 일이라서 업무 능력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단가가 터무니없이 낮으면 그 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만족도가 떨어지는 일은 감당할 자신이 없는 일이다. 능력과 만족도가 적절히 맞물려야 자신 있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 없는 일이란 '할 수 없음'이 아니라 '나 자신과 맞지 않음'인 것이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말하는 자신 없음은 '내가 할 수 없음'에 해당한다고 받아들이면 편할 것이다.
무턱대고 거절하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조금은 맞지 않고 조금은 힘들게 느껴져도 내가 감당할 만한 일이라면 하는 게 우선이다. 일감이 넘쳐나 좋은 것만 쏙쏙 골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약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감은 항상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게 느껴지던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하고, 쉽게 생각했던 일이 의외로 어렵게 꼬이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나의 판단은 항상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