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일감을 쫓아다니며 알게 된 사실 또 하나, 바로 사보 회사에서는 사보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 사보 회사라는 건 없었다. 책을 만드는 회사, 인쇄물을 만드는 회사, 홍보물을 만드는 회사면 회사였지, 사보만 만드는 회사는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알던 회사들에는 사보 외에도 다양한 일감이 존재했던 것이다. 일감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까웠지만, 프로필을 돌리며 영업을 했던 회사에는 더 많은 일감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평소에도 인쇄물을 수없이 접하고 살아왔지만 막상 일감을 찾는 과정에서는 내 시야가 매우 좁아져 있다는 사실도 그때 깨달았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시야가 좁아져 판단력이 많이 흐려졌던 것이다. 반면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텍스트가 들어가는 모든 인쇄물을 내 영역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확신이 들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좁혀진 내 시야도 조금은 넓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일감은 누가 거저 주지 않았다. 일감을 찾아야 했다. 그동안 한 번이라도 접촉했던 회사 기획자 혹은 PM(Project Manager)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사보 외에도 다른 인쇄물을 다루고 있는지, 다루고 있다면 나도 가능하니 일감 좀 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던 사람들은 어차피 그들이 갖고 있는 인력 풀 안에 내가 이미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한 동안 사보 취재나 인터뷰 외에는 다른 일감을 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 역시도 혼자서 소화할 수 있는 매체의 분량이 정해져 있기에, 사보 이외의 다른 일감이 당시엔 없었던 것 같다.
일감을 찾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JOB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회사에서 프리랜서 프리랜서 모집 공고를 올려놓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일감을 찾는 방법을 또 하나 발견한 셈이다. 그렇게 찾은 회사 중에서 아직까지 거래를 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일감을 찾는 수많은 과정을 통해 나에게 맞는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반면 조금만 더 신경 쓰면 그 인연은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은 현실이다.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프리랜서들에게도 통하는 말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프리랜서들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조금만 돌려서 생각하면 쉽게 풀리는 일들도 급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는데 꼭 낚시로 잡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물도 있고 통발도 있다.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절박한 상황인데, 낚싯대만 죽어라 붙잡고 있다고 될 일이냔 말이다. 나 역시도 그런 시간을 겪었다. 나는 낚시꾼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낚싯대만으로 고기를 낚을지를 고민한 것이다.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돌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생각해 보니,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지면서 다른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물고기지 낚시가 아니었다.
프리랜서는 자기 일감은 자기가 찾아 먹어야 하는 일용직 근로자와 다를 바 없다. 당장 일감이 떨어지면 먹고 살 길도 막막해진다. 무턱대고 기다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급한 마음에 터무니없이 보수를 적게 주는 일감을 맡을 수도 없다. 프리랜서는 절대 하지 말라고 뜯어말리는 이유도, 보수가 적어도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하라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감이 없으면 바로 백수로 전락을 하는데, 그 누가 프리랜서를 추천하겠는가.
하지만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도 프리랜서를 택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를 택하기까지의 과정이야 어찌 됐건, 이 정도쯤이야 누구나 알고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말도 안 되게 적은 보수를 제시하는 일감은 맡지 않았다. 그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 그래서 일없이 놀면서 손가락만 빨며 보낸 시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프리랜서를 본업으로 삼고 투잡을 뛰기도 했다. 투잡을 뛰는 한이 있더라도 말 안 되는 보수를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의 자존심이자 나만의 규칙이었다.
이러한 나의 규칙에 대한 옳고 그름은 논하고 싶지 않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야 일하는 사람 마음일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는 스스로 낮게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내가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부족한 부분은 점차 채워나가면 된다. 하지만 스스로 일의 성과에 대해 저평가하는 순간 자신감은 급락하고, 프리랜서를 계속해야 할지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일감은 처음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비록 사보 취재, 인터뷰가 대부분이었지만, 일감을 주는 회사도 하나둘씩 늘었고, 일감이 몰릴 때는 스케줄이 겹쳐서 일감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감사할 일이라 생각했지만, 일감 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는 그 일감 하나를 놓치는 게 그렇게 마음 아플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못해서 다른 사람을 찾게 되면, 그 사람에게 앞으로 계속해서 일감이 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되면 그 기획자에게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잊히는 것은 아닌지, 거래처 하나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섰다.
물론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같은 시간에 서울과 대전 두 군데에 잡힌 일정을 혼자서 소화할 수는 없었다. 일감을 거절할 때는 최대한 정중하게 하였다. 같은 날 다른 일정이 잡혀있기에 일감을 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담아 "시간상 이동이 가능할까요? 시간이 맞을까요?" 거꾸로 되물으며 정중히 거절하였다.
기획일을 병행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서두를 잘라내고 "안 되는데요" 거절하는 사람보다, "~때문에 안됩니다"라고 한마디라도 덧붙여 거절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은 사실이다.
일감 하나 놓쳤다고 프리랜서 인생도 끝나는 것은 아니다. 놓을 것은 놓고 잡을 것은 잡아야 한다.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편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아쉬운 마음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붙들고 있어 봐야 스트레스만 쌓인다. 더 좋은 일감을 받으라는 하늘의 계시로 생각해도 좋다. 그래야 조급한 마음도 누그러지고, 더 큰 꿈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