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은 내 일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바로 그 때다.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의 고충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지만, 프리랜서로 살아가면서 가끔은 직장인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 일감이 똑 떨어져 백수처럼 지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인다는 말과도 같다. 일감이 떨어졌으니, 새로운 일감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백수와 다를게 하나 없다.
직장인의 경우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끝나더라도 곧바로 다른 일이 주어지기 마련이고, 굳이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회사에 출근하면, 어떤 일이든 찾아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의 양이나 질을 떠나 주어진 일을 하면, 일에 대한 대가를 월급의 형태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일감이 떨어지는 동시에 돈벌이도 함께 떨어지기 때문에, 바로 백수로 전락하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삶은 늘 그렇게 반복된다. 물론, 일감이 넘쳐나는 사람들 눈에는 그저 무능하고 게으른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1년 365일 계획적으로 일감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프리랜서는 백수의 영역을 반복적으로 넘나드는 두 개의 직업(?)을 가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보는 게 무방하겠다. 때론 큰 프로젝트로 샐러리맨의 월급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통장에 꽂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줄어드는 통장 잔고로 긴 시간을 연명해야 할 때도 있다.
프리랜서가 누리는 자유에 대한 대가라고 혹자는 프리랜서들을 폄훼(?) 하기도 한다. 전쟁 같은 직장생활에 혹사당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당신들은 놀고먹는 게 아니냐는 논리이다. 누군 출근하고 싶어서 이른 아침부터 교통 지옥을 뚫고 전쟁터와 다름없는 직장에 출근을 하냐는 것이다. 그렇기에 프리랜서는 직장인들처럼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아쉬우면 취직해서 월급쟁이의 고충을 느껴보라는 마음일 것이다. 물론 시간에 맞춰 출퇴근을 반복하고, 직장 상사에게 간과 쓸개 다 빼주며 일하는 직장인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나 역시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런 고충을 남들 못지않게 느껴 봤기에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출근이 없는 반면 퇴근도 없다. 마감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몇 날 며칠을 일에 묻혀 아무것도 못할 때도 있다. 주말도 없고 휴일도 없다. 일이 끝날 때까지는 직장인처럼 퇴근을 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야 간신히 일정을 맞출 수 있는 일의 경우에는, 자유 시간을 일절 반납해야 하기도 한다. 그만큼 프리랜서들도 고충이 없지 않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에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물론, 직장인도 야근에 특근에, 비슷한 고충이 없다는 건 아니다.
'일감이 똑 떨어지지 않도록 내 능력치를 끓어 올리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실력 있는 사람이라면 나름 이 바닥에서 인정받을 테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일감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나름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들도 일감이 똑 떨어져 백수로 지낼 때가 있는데, 이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능력치와 일감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능력치만 끌어올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일감을 소화하되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생산해 내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기에, 굳이 언급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감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인가? 물론 정답은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 역시도 일감이 막 떨어져, 다음 일감을 어떻게 받을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경험상 일감은 밀물처럼 밀려오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일이 몰릴 때는 4~5개씩 한꺼번에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물론 몸이 하나뿐이기에 순차적으로 걸러낼 수밖에 없지만, 일감 의뢰는 쉬지 않고 들어온다. 반면 일이 없을 때는 '이제 이 일도 그만둬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정말 한 건도 안 들어온다.
참 이상하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에도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성수기와 비성수기는 존재한다. 적어도 내 경험상은 그렇다. 특히 1년의 성과를 책이란 매개로 드러내야 하는 관공서의 경우, 연말에 일감이 넘쳐난다.
그렇다고 연말 한철 장사를 하기 위해 이 일을 지속할 수도 없지 않은가. 연말에 1년 치 먹거리를 한꺼번에 수확할 수만 있다면 정말 괜찮은 장사지만, 몸이 하나인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일감을 몰아서 의뢰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할 정도다. 그들은 그저 일을 할 수 있는지 의뢰할 뿐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일감을 몰아서 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일을 놓치는 상황을 만들기 싫어, 때로는 무리하게 일감을 맡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돌아오는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일감을 하나라도 더 받으면 그만큼 수입은 높아지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로부터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자칫, 일감이 끊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일감을 내 능력치의 한계에 맞춰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