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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May 09. 2017

그것은 사랑이었다.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었다.




서른 하나.

이십 대의 불같던 사랑이 끝나고 서른 즈음도 지나간 서른 하나의 봄.

흔들리던 청춘도 조금은 중심이 생긴 듯하고, 직장인이라는 신분으로 생활의 틀도 잡혔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그 시절 나름대로 심각했던 고민을 토로했던 시간도 지나가고, 어느새 나 홀로 그 시간을 감당해낼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내 문제의 답은 타인이 아닌 나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다는 경험을 통한 깨달음에 더 가까울 것이다.


끝난 사랑에 애걸복걸 울며 불며 매달리던  시간도 지나가고, 이제는 이별이란 변화를 조금이나마 무던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도 생겼다. 물론 이별은 언제나 힘들고 아프다. 하지만 소유욕과 사랑을 구분하고, 내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의 마음을 존종하는 것 또한 뜨거웠던 사랑의 예의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배우고 있다.


스무 살, 처음으로 서울에 상경하여 점차 증가하는 1인 가구가  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서울 유학(?)을 이유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감당하기 힘든 무한한 자유에 내팽겨진 그 시절에는, 어두운 밤 캄캄하게 홀로 남겨지는 시간이 싫어 많은 밤을 친구들과 술로 지새우기도 했고, 잠들지 못해 새벽의 고독을 씁쓸히 즐기기도 했다. 유난히 어둠을 두려워하는 나는 머리맡에 수면등 없이는 잠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당당히 수면등을 끄고 잠을 청한다.


작은 책상과 싱글 침대, 소형 헹거가 전부였던 반지하 월세방도 졸업하고, (은행의 힘을 빌려) 볕과 바람이 잘 드는 나름 아늑한 전셋집도 생겼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에게는 긴 시간 염원했던 룸메이트 고양이 2마리가 생겼고, 더불어 책임감과 고양이 통금(?)을 얻었다.


500일의 Summer,


아주 풍족하고 멋있는 삶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모자랄 것 없이 평화로운 하루하루다.


그런데도 나는 2% 부족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고, 시종일관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What makes me happy?"


30년의 시간과 그동안의 희로애락을 바탕으로 고민하고 통찰한 결과 얻은 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랑"


그렇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500일의 Summer,


나는 분명히 사랑을 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반대급부로 사랑에 좌절했을 때 가장 불행한 사람이기도 했다.)


벼락치기 시험공부에 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아있던 어느 날, 눈이 온지도 모르고 흐르던 고요한 정적 속에 울리던 진동 소리. "잠깐 밖으로 나와. 눈이 오고 있어!" 첫눈은 꼭 나와 함께 보고 싶은데 언제 그칠지 몰라 급하게 달려왔다며 숨찬 미소를 짓고 있던 그였다. 세상에서 나와 우리가 가장 특별했던 순간.


어느 햇살이 내리쬐던 아침, 한참 전에 일어났지만 아직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던 우리였다. 갑자기 그는 나의 목에 있던 점부터 어깨에 있던 점까지 하나씩 세기 시작하며 "네 몸에 점이 몇 개 있는지 정확히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될 거야"라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난 몸에 점이 꽤나 많은 편이다.) 나라는 존재가 통째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그저 평범하던 어느 아침이 나에겐 '사랑받고 있는 느낌'의 정의가 되는 장면이 되었다.


그렇다. 지금 늘어놓은 이야기는 이미 끝난 연애의 기억이고,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지난 사랑이 아무리 특별한 사랑이었다 하더라도, 그 연애가 끝나고 나면 함께한 추억들을 계속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행위가 되는 것처럼 우리는 망각을 강요당한다. 물론 갖은 힘을 써도 지워지지 않는 추억도 있다. 어쨌거나 사랑이 끝났다는 이유로 그때의 아름다운 내 모습마저 잊히는 것이 때로는 야속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래서 지난 연인과 찍은 사진을 지우지 않는다. 그것 또한 내 삶이자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망각을 계기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또 되풀이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또 상처를 주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또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가장 마음 아팠던 순간들,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가져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통해 좀 더 성장한 내가 되어보기로.





500일의 Summer,



What maeks me happy?


그것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P.S.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나지만, SNS에 사적인 감성을 넣은 것은 짤막한 싸이월드 다이어리 외에는 전무하다. (그 시절 그 감성도 꽤나 좋았는데 중2병이라는 단어로 모두 치기로 치부되고 말았던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 이유는 "보이는 글"과 "쓰고 싶은 글"과의 괴리 때문이었다. 텍스트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것은 100% 솔직한 진심이 아니면 뭔가 거짓된 느낌이 섞여 '있어 보이려고 쓰는 글'이 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저 아날로그 틱 하게 일기로 내 생각과 감정을 남겨두곤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냐고?


"드러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신감" 때문이다.


나는 꽤 외향적이고 낯선 이와도 대화를 잘 하는 축에 속하지만, 진짜 속 깊은 이야기는 잘 하지 못한다. 정말 가까운 연인에게조차 "진짜 이야기"는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존심이 강하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막 때문이었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도 헤아릴 수 있는 깊이는 한계가 있었다. 진짜 이야기를 나누려면 "진짜"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난 이별의 큰 이유이기도 했다.)


모든 이들에게는 자신의 경험이 가장 유니크하고 특별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스토리 없는 삶이 없고, 나에게는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더라도, 타인의 눈에는 General의 카테고리로 분류될 수도 있다. 또한 이야기를 터놓고 나면 오히려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고, 타인의 공감에서 위로를 얻기도 한다. (또한 비슷한 종류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는 묘한 친근함에 금세 절친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쏟아내 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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