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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May 12. 2017

오빠는 언제 내가 제일 많이 생각났어?

오빠는 언제 내가 제일 많이 생각이 났어?


그와 헤어진 지 반년쯤 흘렀을 때, 나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그때까지도 우린 한 달에 1번은 연락하고 또 가끔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를 놓지 못한 애매한 사이였다.)


"오빠는 언제 내가 제일 많이 생각이 났어?"


나는 사실 불현듯, 갑자기, 그리고 습관처럼 그를 생각했지만, 마치 어떤 시간적 공간적 조건이 만족하였을 때만 그리움이 생겨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그에게 물었다.


그는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3초 정도 생각하더니 담담히 대답했다.


"음.. 퇴근할 때랑, 혼자 밥 먹을 때,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그럼 내가 매일매일 생각난 거야?"


"으응...?ㅎㅎ"


우리는 모든 일상 속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4년이란 시간은 여느 커플이라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손끝만 닿아도 설레던 시절이 있었고, 모든 것에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기억들이 있었다. 모든 특별한 것들은 반복과 지속을 통해 당연한 것들이 되고 익숙해진다. 하지만 그 익숙함 조차 지나가고 부재라는 변화가 오면 또 이렇게 특별해지는 것이다.


퇴근하고 전화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라도 궁금해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아주 작은 일이라도 대단한 일 마냥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오늘만큼은 혼자 있고 싶지 않을 때 언제든 달려와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훌쩍 어딘가 떠나고 싶을 때 기꺼이 나만의 기사가 되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부재를 통해서야 특별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란 말인가.


심지어 모든 기억은 더 미화된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 인간의 습성인지, 분명히 우리는 지독히도 싸웠었고 서로에게 독한 말들을 늘어놓았고, 그래서 이별을 선택했음에 불구하고 또 서로를 그리워한다. 나는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반했었지만, 덕분에 나는 언제나 2순위였기에 종종 외로워야 했다. 그가 나와 비슷한 가정사를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치 쏘울 메이트라도 만난 것처럼 우리가 특별하다 생각했었지만, 결국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건, 되려 너무 아픈 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특별함이 당연함이 되어가면서, 그와 사랑에 빠졌던 이유들도 동시에 그와 이별해야 했던 이유가 되고 말았다.




"그럼 너는 언제 내가 많이 생각났어?"


"음.. 고양이들 목욕시킬 때?ㅎㅎㅎ 혼자 하려니 너무 힘들었지 뭐야."


"응? 그게 다야..?ㅎㅎ"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대하는 것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두어달 쯤의 시간이 더 흐른 후, 나는 결국 단 한순간도 오빠가 그립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는 고백을 눈물로 쏟아내었고 그렇게 우리의 '애매한 사이'는 끝이 나고 완전한 타인이 되어버렸다.


그 고백을 쏟아내었던 때조차 그와의 재회에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것을 돌이키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길을 와버렸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잊기에 우리는 아직도 너무 많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에서 오롯한 '나'로 돌아오는 데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을 뿐이었고, 모든 이별이 그렇듯 그렇게 잔인한 시간들도 결국엔 지나갔다.


그 후 그는 차와 휴대폰을 바꿔버렸고 나는 이사를 와버렸다.


'우리'에서 좀 더 빨리 '나'와 '당신'이 되기 위해.


지금도 불쑥불쑥 그의 생각이 난다. 시간의 힘을 빌어 그 빈도와 농도는 분명히 줄어들고 있지만, 가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을 때가 있다. 정말이지 고양이들을 목욕시킬 때는 아직도 그가 절실하게 생각이 난다. (혼자서 물이라면 끔찍히 싫어하는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어서, 1명은 버둥대는 고양이를 잡고 1명은 씻기고 말리고 빗겨주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2인 1조가 완벽한 호흡을 맞춰야 수월한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궁금하다. 당신은 어떨 때 내 생각이 나는지. 더 이상 그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나와 같이 점점 '우리'가 희미해지고 '나'와 '당신'이 되어있겠지.


그럼에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끔 당신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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