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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May 14. 2017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




'정말이지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구나'하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


우리는 갑자기 훌쩍 바다가 보고 싶은 마음에, 무려 금요일 퇴근 후 강원도 속초로 향하던 길이었다. 캄캄한 밤을 달리는 자동차 내에는 고요와 긴장, 그리고 설렘과 호기심이 있었다.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까르르 웃다가 대화와 대화 사이에 잠시 생겨난 정적 속에서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 사실은 엄마가 두 분이야."


"응?? 무슨 말이야?"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친어머니와 양어머니가 계셔."


"...?"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배려를 담은 정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어렸을 때 두 분이 이혼하시고, 아버지가 재혼하셔서 양어머니가 나를 키워주셨거든."


"음.. 나도 그래 오빠."


"응??"


케이스가 아주 같진 않았지만 나의 부모님도 어렸을 적 이혼을 하셨다. 다만 나는 엄마 손에서 컸고, 아빠는 재혼하셨지만 엄마는 홀로 우리를 지켰다. 이 모든 변화가 사춘기 때 일어난 것이라 나는 이런 사실이 아주 큰 흠이라도 되는 것처럼 숨기기에 급급했었고, 그것이 습관이 된 나머지 지금도 나는 내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한다.


사실 대한민국 부부의 50%가 이혼을 하는 세상이라지만, 그것이 내 이야기가 되면 그렇게 특별할 수가 없다. 세상 모든 가족들은 주말 드라마에서 나오는 화목한 가정인 것만 같고, 나만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나의 친구들조차 아주 절친한 몇 이외에는 나의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니. 나는 온 마음으로 공감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이란 감정의 거리가 총 100m라면, 우리가 처음 알게 된 시점으로부터 여행을 떠났던 그 날까지, 약 3달간의 시간이 총 20m 정도이고, 우리가 그 대화를 나누었던 1시간 남짓의 시간이 50m는 되는 느낌.


그만치 우리는 그날 밤 그렇게 급 속도로 가까워졌다.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사랑은 우리의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부분을 우리의 연인이 다른 누구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 최고조에 달한다. 이들은 우리를 간파해내고, 신뢰하고 나눌 줄 아는 우리의 능력 총량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보고 공감해주고 용서해준다. 사랑은 우리의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바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인간은 모두가 자신만의 상처와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알아봐 주고 채워주길 소원하고, 그 대상을 연인에게 투영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연인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투고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이라는 이유로 사랑한다. '이해'라는 것은 그만큼 갈구되는 것이고 그것이 더 깊숙하고 더 아픈 상처에 대한 것이라면 우리의 사랑은 더 증폭된다.


심지어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면? 우리는 마치 날 때부터 붉은 실로 연결되어있던 솔메이트라도 된 것처럼 서로를 동일시하게 된다. 사실 이해라는 것은 그러한 경험의 유무와 차이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서로를 100%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같은 경험을 해야지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더 큰 사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렇듯 사랑이란 감정 속에서는 비논리적이기 그지없는 아이러니를 지극히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리고 나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 그저 상처받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정하게 등을 쓸어주며 말없이 안아주는 것밖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도, 어떻게든 당신 맘에 작은 위로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


그것은 도무지 사랑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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