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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May 18. 2017

이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이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마음이 변한 은수에게 처연하게 토해내는 상우의 한 마디.


사랑은 변한다. 


세상에 변치 않는 진실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이 잔인하지만 당연한 명제를 우리는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저 호기심에서 시작된 관심이 사랑이 되기도 하고, 그 사랑이 권태로워 다시 무관심이 되기도 한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원치 않은 이별일지라도.



나는 첫 이별 앓이를 굉장히 심하게 겪었다. 지금 생각해도 굴곡 많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손에 꼽는 시기가 이십 대 초중반 무렵 첫 이별 때였다. 첫 연애를 너무 길고 진하게 한 까닭에 나는 정말 그 사람이 힘들었던 내 삶에 찾아온 한줄기 빛이라도 되는 것처럼 특별하게 여겼고, 그 마음으로 무려 남자 친구의 군생활 2년을 단 한 순간도 한 눈 팔지 않은 채 꿋꿋이 기다렸다. 쉽게 볼 수 없고 쉽게 닿을 수도 없는, 모든 순간이 애틋하였던 2년도 어떻게든 지나가고, 제대 후 2주 만에 그렇게 특별하던 사랑도 허망하게 끝이 나버렸다. 둘 중 한 사람이 홀로 남아 슬프지 않도록 한 날 한 시에 손 붙잡고 죽는 게 소원이라던 그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하고 떠났다.


나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한 채 잠으로 도피했었다. 몇 번이나 울며 불며 매달려 보기도 하고, 매일같이 '헤어진 남자 친구 마음을 돌리는 법' 따위를 검색하면서 새까만 동굴 속에서 덩그러니 남아 꺼져가는 마음의 불씨를 붙잡고 하얗게 재만 남을 때까지 상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그 후에도 나는 다른 사랑을 하고 또 다른 이별을 했지만, 그때처럼 내 삶을 내동댕이칠 만큼 아프진 않았다. 그렇다고 그 후의 연애가 뜨겁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아무리 아파하고 부정해도 변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었을 때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도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에서 진짜 사랑을 찾아 모험을 떠났던 마리아는 진정한 자유를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 이 당연한 명제는 오직 사랑 앞에서만 흔들리게 된다. 마치 상대방이 내 것인 것처럼 컨트롤하고 싶어 지고, 기이하게도 우리는 어느 정도 컨트롤당하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보호받고 있고 관심받고 있는 느낌. 그래서 우리는 연애라는 관계 속에서 소유와 소유 사이를 혼동하며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를 묶어낸다.


그때의 나는 소유욕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고 님이란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저 갈기갈기 찢긴 내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상대방의 마음 따윈 생각하지도 못한 채, 벌써 무덤덤해져 버린 그에게 다시 내게 사랑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상대방의 마음이 변했다면 그게 설령 원치 않는 변화일지라도 그의 의사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사랑하고 싶다면 '어떻게 마음이 변하냐'며 다그치며 사랑을 내놓으라고 소리칠 것이 아니라, 일단 멈춰 서서 그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마음이 정녕 소유욕이 아니라 사랑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고 보내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이별은 아프다. 당연했던 모든 일상의 순간들이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아프고 아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변화를 온 마음으로 직면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최선의 예의이며, 우리가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터져 나오는 눈물을 꾹 삼키며 어찌할 줄 모르는 가슴을 두들기고 있더라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우리는 거기까지였구나.' 하고 직면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이별을 대하는 우리의 가장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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