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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zog Jun 13. 2019

전도연은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될 수 있을까?

과거 배우 임수정의 민낯 셀카 사진에 한 유저가 “늙어 보인다”는 댓글을 남겼다. 마음에 상처가 될 한마디였지만 임수정은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지금의 저를 인정하고 사랑합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제 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의 나’, 30대의 여성으로서의 저의 삶을, 그리고 저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품위를 지킨 임수정의 대처는 한국의 모든 여배우에게 자기 자신으로 사는 법에 대한 자신감을 북돋았다. 하지만 배우의 자기애와 별개로, 앞선 악플이 시사하는 바는 짚고 넘어갈만하다. 은연중에 누구나 알고 있으며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는 사실이다. - 대중은 여배우의 주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배우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무뢰한”에서 한때 텐프로로 잘 나갔던 화류계 여성 김혜경은 현재 도시 외곽의 룸 업소를 전전한다. 살인을 저지른 남자 친구와 위장한 경찰, 두 남자에 의해 이용당하고 빚에 쫓기는 김혜경은 끝없이 추락한다. 김혜경의 추락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추락이다. 개인의 능력으로 헤어날 수 없고 수긍해야 하는 운명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김혜경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김혜경을 연기하는 배우 전도연의 상황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영화 “이브의 모든 것”의 감독 조셉 맨키비츠는 40살 또는 41살은 여배우의 커리어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중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여배우에게 마흔 살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이는 여배우가 전에 30, 32, 35살이 되었던 것과 차원이 다른 일이다. 조금 이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지만 보통 마흔 즈음에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여배우는 깨닫게 된다. 더 이상 대중이 자신에게 로맨틱한 환상을 투영하거나 그에 매혹되지 않는다는 것을. 때가 되면 대중의 관심은 새로운 얼굴로 옮겨간다. 


흔히 메소드 연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메소드 연기란 배우가 무대 위에서 캐릭터의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배우가 배역의 주변 환경과 내면을 이해한 뒤 배우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것을 말한다. 전도연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의 트로피를 안겼던 “밀양”에서 유괴당한 아들을 잃은 신애는 종교에 귀의해 구원을 찾지만 실패한다. 가해자와의 대면을 통해 용서의 권리가 자기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신애는 하나님에게 배신을 느끼고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자기 파괴적이 되어 방황하는 신애는 배우에게 모험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신애가 겪는 신에 대한 믿음과 믿음의 상실은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정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존주의 문학이나 잉마르 베리만 영화가 다룰법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인간에게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낯선 형태의 감정이다. 그런데, 전도연은 그 힘든 일을 해냈다. 전도연의 메소드는 여인의 절망을 에밀 졸라의 소설 속 묘사처럼 생생하게 펼쳐내 보는 사람을 탈진하게 만든다.


멜로드라마는 여배우의 매력을 활짝 꽃피게 한다. 40대 여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감지할 수 있는 변화는 멜로에 출연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드는 데 있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에서 사랑에 빠진 김혜수와 이영애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다. 40, 50대 여배우는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캐스팅 제안이 ‘엄마’ 역할밖에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엄마 역할을 받아들이거나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캐릭터 연기를 시도하거나 캐리커처가 되거나. 


배우를 오케스트라에 비교할 수 있다면, 전도연은 아마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근접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비루투오소 단체처럼 감정의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테시모까지 단숨에 표현하고 셈여림을 자유자재로 통제한다. ‘멜로의 여왕’이라는 수식답게, 사람들에게 전도연의 존재를 알린 것은 그의 멜로 연기를 통해서일 것이다. 전도연은 심은하, 송혜교, 손예진이 아니므로 전도연의 멜로는 순정 멜로와 다소 거리가 있다. 전도연의 사랑은 소극적이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적극적이고 도발적이다. “해피 엔드”에서 무기력한 남편 몰래 내연남의 집에서 찾은 삶의 행복, “하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집주인에게 슬쩍 흘리는 미소, 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감추어놓았다가 마침내 호텔 로비에서 내비치는 욕정. 전도연의 이런 장면을 관객은 기억한다. 이런 순간들은 전도연을 영원하게 한다.


누가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멜로 장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보통 남자 배우가 여배우보다 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고유의 멋을 내는 빈티지 청바지처럼 연륜의 쌓일수록 남자 배우의 깊은 주름에서는 온화함과 여유, 카리스마가 베어 나와 여심을 저격한다. “미스터 선샤인”의 이병헌과 김태리, “귀여운 여인”의 리차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하오의 연정”에서 개리 쿠퍼와 오드리 햅번, 남자 배우의 나이가 최소 15살 이상 많은 경우지만 관객은 나이차에 대해 크게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 1961년 영화 “이수”에서 46살, 잉그리드 버그만의 캐릭터가 20대 청년의 구애를 받을 때 그녀는 자괴감으로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야 했다. 


이윤기 감독의 “남과 여”에서 전도연은 때로 우아했다. 그것은 자기 매력을 잘 이해하고 돋보이게 할 줄 아는 여성의 우아함이었다. 하지만 전도연과 공유는 주차장에서의 첫 만남부터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의 드라마 “도깨비”와 마찬가지로 공유의 캐릭터는 여성의 환상이 투영된 로맨틱한 대상이었지만 김고은과의 달달한 케미와 달리 전도연과의 앙상블은 영화 내내 서먹했다. “남과 여”를 보면서, 문득 전도연의 로맨스를 앞으로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의 정상에 선 스타 여배우는 대중과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지만, 그것이 40대까지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40대 여배우의 푸념으로 가득한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문소리는 자신의 처지를 희희화했다. 그는 “문소리는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돼야지”라는 속없는 친구의 말에 버럭 화를 낸다. 그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만큼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헐리웃에서 시대를 호령했던 불세출의 재능도 차마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30~40년대 위대한 명배우 중 한 명인 베티 데이비스, 70~80년대 ‘연기 천재’로 불렸던 데보라 윙거, 90~2000년대 푸른 눈동자의 절세미인 카메론 디아즈도 시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던 전도연의 커리어를 설명할 때, 늘 도전이라는 말이 쓰이곤 했다. 배우의 커리어에서 실패는 ‘도전’이라는 의미로 위로받기도 하지만 어떤 실패는 아무런 의미를 찾기 힘들 때도 있다.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을 그린 “생일”은 좀 이상했다. 구성적으로 통일되지 않았고, 일상을 나열하는 전개는 산만했다. 부부로 합을 맞춘 설경구의 표정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고 상대방의 대사를 경청하지 않는 듯한 일부 조연들의 리액션은 목석처럼 뻣뻣했다.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한 것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일종의 부채 의식이었다. 드라마로 잠시 무대를 옮겼던 배우가 고심 끝에 3년 만에 선택한 스크린 복귀작이 “생일”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했다.


전도연은 과연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될 수 있을까? 40대 여배우는 자기 안의 시들지 않은 불꽃과 열정을 발견하지만 시장은 그들을 외면한다. 메릴 스트립, 이자벨 위페르, 줄리엣 비노쉬는 활동을 쉬지 않는다. 그들 주위엔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스티븐 스필버그, 미카엘 하네케, 클레르 드니같은 감독들이 아직 있기에 그들은 인간의 다채로운 욕망을 반영하는 작품에서 활약할 수 있다. 중년 여성의 삶을 아우르는 작품의 다양성은 한국에서는 조금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전도연의 근래 행보를 살펴보면 전망이 밝아보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전도연은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되어야 한다. 그가 할 수 없다면 앞으로 다른 여배우의 미래는 불보듯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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