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0대까지는 내가 이룬 모든 성취가 내 노력만으로 이룬 것들이라 생각했다. 주로 공부나 시험과 관련된 것이었으니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마음속 한편에 외로움과 불안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를 더 다그치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며 내 자신을 돌아보니 이 모든 과정에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들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퇴사할 때 밀레니얼 세대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며 그간 내가 일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써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당시 옳은 선택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어서 벌거벗은 기분이었는데 ‘밀레니얼 세대의 도전’이라는 단어로 내 상황을 바라보니 그럴듯한 용기가 생겼다.
오래 글을 써 온 선생님 나름의 이별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때 감사인사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 20대를 정리하는 책을 써보려고요.” 왜 그 말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선생님도 “그래, 좋다. 꼭 완성해”라고 해주셨는데 그 무심한 말투가 힘이 됐다.
글 속에서 나와의 객관적인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쓰고 보니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담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목표대로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나만 할 수 있는 내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완벽히 계획한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완성하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삶의 기준을 성취에 두고 살았다. 30대를 앞두고 인생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무언가를 성취할 때만 내 존재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성취하는 나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나도 있다. 흐릿한 목표만 있을 때도, 확신 없는 노력을 쏟아부을 때도, 실패한 뒤에도, 다시 일어서는 것도 모두 삶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분명 할 얘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결심하자 내 안에 없을 거라 생각했던 능력들이 대거 튀어나왔다. 그렇게 용기 낸 결정과 행동은 자신감을 채워주었다. 여러 경우의 수를 따지며 늘 몸을 사렸는데, 안정을 좇는다고 안정이 찾아와 주지 않았다. 주변을 살피되 자신감 있게 나아가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삶이란 생각도 든다.
“민지야, 행복해야 돼.”
퇴사 당일 나를 꼭 안아주시는 차장님의 말에서 진심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도 불안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어쩌면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일상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 확실한 용기가 될 것 같다. 차장님의 바람처럼, 내 주변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의 바람처럼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아직 살아갈 창창한 날들 동안 이 결심이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할 테지만 그럴 때 이 책이 나에게도 이정표가 되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