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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Oct 31. 2020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포르투갈 포르투

여행도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3주가 넘었다. 여행을 준비할 때는 ‘끝날 때쯤 얼마나 아쉬울까’ 생각하면 출발 전부터 하루하루가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행 일정이 반환점을 돌자 돌아갈 날을 세어보고 있었다. 한국 음식이 그리웠고 캐리어는 점점 무거워졌다.


포르투까지는 12시간에 가까운 버스 이동을 했던지라 몸도 마음도 지쳤다. 강가에 앉아 노을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는데 일정 내내 흐리고 추웠다. 힘들게 도착했는데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싼 값에 예약한 에어비앤비가 쾌적하고 넓어서 숙소에서 맛있는 것을 해 먹고 음악을 들으며 재충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 여행지인 런던으로의 이동을 앞두고 아쉬운 마음보다는 시원섭섭한 마음이 컸다. 이제 마무리만 잘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터였다. 오전 11시 비행기였기에 숙소를 정리하고 일찍 나왔다. 이상하게도 우리가 이동하는 날마다 비가 내렸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산을 들고 구글맵을 켠 채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르투 도로는 대부분 돌길이었다. 바퀴 달린 캐리어를 끌면 덜컹덜컹 소리가 났다. 원래 무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캐리어는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옷이 홀딱 젖은 채로 정류장에 도착했다. 유로와 동전을 찾느라 지갑과 한참을 사투를 벌이다 보니 버스가 도착했다. 우산을 펼 새도 없이 헐레벌떡 올라탔다. 도시 외곽의 공항까지 50여분을 타고 갔다.


우리가 예약한 표는 저가항공이라 체크인 부스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직원이 나타날 때까지 이리저리 둘러보아았다. 시간이 임박해서 항공사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나타났다. 발권을 빠르게 마치고 검색대로 가보니 줄이 엄청났다. 보딩 시간에 맞출 수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보딩 시작 십여분을 앞두고 통과했다. 게이트 앞에 도착하니 카페가 있어 급하게 커피를 샀다. 공복에 잔뜩 긴장해서 예민해져 있었다. 따뜻한 카페인이 들어가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렇게 게이트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바깥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안개가 가득 끼여있었다.


‘에이, 설마.’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보고도 애써 불안한 마음을 무시했던 것 같다. 빗소리는 더 심해졌다. 항공사 어플을 통해 알람이 떴다. 우리가 타려는 비행기가 연착됐다. 알람을 확인한 직후, 게이트를 쳐다보니 서있던 직원들이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5분 정도가 지났나. 공항 방송과 게이트 스크린을 통해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안내가 나왔다.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안한 예감은 적중 정도가 아니라 차악에 대한 기대를 박살 내버렸다. 최악의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항공사 직원들은 게이트 밖으로 나가 부스에서 환불 조치를 받으라고 이야기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날벼락을 맞은 승객들은 우왕좌왕하다 각자의 길을 떠났다. 미로 같은 공항을 헤매다 아예 공항 밖으로 나갈 뻔했다. 들어왔던 길로 나가는 다른 승객들을 따라 함께 나왔다. 결항이 되었다는 건 일정이 꼬였다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일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1) 항공사에서 결항확인서를 받고 환불을 요구해야 한다.

2) 예약해둔 런던의 숙소에 도착시간이 변경되었음을 알려야 한다.

3) 가까운 시간으로 대체 항공편을 예약해야 한다.


게이트 밖으로 나가니 우리뿐 아니라 비슷한 시간대에 이륙하려고 했던 모든 비행기가 결항되면서 난리통이 되어있었다. 포르투-런던 구간의 저가 항공편이 굉장히 많았는데 환불을 알아보는 동안 전부 매진됐다. 대체 항공편을 먼저 구해야 했다. 오늘 저녁 출발 편은 우리가 예약할  있는 예산 범위를 벗어났다. 결항된 승객에게는 숙소와 식사, 대체 항공편에 대한 픽업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내일 아침 표를 발권했다. 원래 예약한 항공권 가격의  배였는데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친구가 예약하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기본 수화물에 날짜와 도착지를 제대로 설정한 건지    확인  결제했다.


환불이 진행되는 부스를 찾아 줄을 섰다. 부스에서 결항 증명서를 받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아예 공항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한 세 시간쯤 흘렀나. 부스에서 해결이 오래 걸리자 항공사 직원이 돌아다니며 오늘 숙소에 머물지 여부를 확인했다. 어플을 통해 결항확인서를 받고 환불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안내했다. 마침 숙소로 떠나는 셔틀 버스가 10분 뒤에 출발한다는 얘기를 듣고선 어플을 통해 해결하기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오전 11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숙소에서 출발했던 우리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새로운 포르투 숙소로 돌아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제공받은 공항 근처의 숙소는 깨끗한 호스텔이었다. 치킨을 비롯해 각종 바비큐가 나온 저녁 식사도 나쁘지 않았다. 공항에서 함께 헤맸던 한국인 승객들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했다. 우연히 알게 된 두 분 모두 런던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었다. 괜찮은 식당을 여러 곳 추천받았다. 그제야 긴장이 좀 풀렸다.




여행을 다녀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천재지변일 경우라도 당일 취소는 환불 대상이 아니라고 알려왔다. 여행자보험 내역 중 결항이 있었기에 보상이 가능한지 전화해 상담을 받았다. 결항으로 인해 지불한 식사, 숙소, 교통 비용은 보상이 가능한데 영수증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10만 원 이내 실비가 지급된다고 했다. 우리는 이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이것도 다행이라 할지. 결항된 항공권 금액은 한 달 뒤쯤 결제했던 카드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여행의 설렘과 긴장이 누그러들었을 시기였다. 웬만한 이동과 예상치 못한 순간, 임기응변을 발휘해야 할 사건까지 두루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까지 만만치 않았다. 포르투를 떠나는 진짜 마지막 날 아침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어났다. 항공사에서 제공해준 픽업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아져 있었다. 체크인 부스에서도 검색대에서도 게이트에서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마침내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은 우리에게 끝까지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동시에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도 해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모든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돌발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하다 보면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결항으로 인해 경제적 손실은 있었지만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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