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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Oct 31. 2020

다시 올 수 있을까

여행의 끝

여행이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리는 다음 여행을 다짐했다. 로마에서 던졌던 동전이 생각났다.


로마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서 멀지 않은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마침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돌아다녔던 스페인 광장, 로마 관광지의 상징과도 같은 트레비 분수가 가까웠다. 관광지 근처의 유서 깊은 가게에서 젤라토를 먹고 돌아오기로 했다.


그렇게 높은 인구밀도를 겪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광경을 보고 있는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당시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먹고 로마까지 약 4시간 기차를 통해 이동한 터였다. 정신은 몽롱하고 몸은 피곤했다. 그런데도 트레비 분수 앞에 도착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조각상이 아니었으면 이곳이 분수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분수대를 둘러싼 계단 사이로 사람들이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다.


출근시간의 2호선보다, 여름휴가 기간의 해운대보다, 새해 첫날의 일출 명소보다 산소 농도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더 신기한 건 그 와중에도 분수 근처까지 인파를 뚫고 지나가 자신들의 얼굴만 나오도록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었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 다른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요리조리 자리를 찾아 휴대전화의 각도를 만들어갔다. 우리도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트레비 분수에서는 중요한 의식이 있다.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던지는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나와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관광객들이 던진 동전은 가톨릭 자선단체에서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보탬이 된다고 한다. 친구는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며 동전을 꺼내 들었다.


로마의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당장 이 많은 사람들에게 치이느라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순순히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동전을 던졌다. 그 동전 때문이었을까. 여행을 마치고 다시 가고 싶은 도시가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로마라고 답했다. 선선한 날씨, 친절했던 민박집 사장님, 맛있었던 음식 모두 로마를 기억에 남는 도시로 만들어주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함께 여행했던 우리 셋은 3년 뒤쯤 다시 오자고 얘기한 적이 있다. 세 명의 합이 꽤 괜찮았고 아직 못 가본 도시들이 많았다. 한 달간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다니려니 도시당 머무는 시간도 짧아 아쉬운 곳이 있었다. 유럽을 다시 방문한 친구들과 달리 나의 경우 프랑스를 다녀오지 못한 것도 유럽에 다시 오고 싶은 이유였다. 루트에서 프랑스를 뺀 것은 내 선택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언젠가 한 달 살기로 시간을 내 오는 것을 꿈꿨다. 프랑스어도 다시 배우고 근교 여행도 하며 진득하게 경험해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었다. 언어를 배울 때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접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어를 배웠던 시간 동안 프랑스와 관련된 영화와 책을 많이 접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게 될 그림도 기대됐고 매일 크로와상을 사서 아침을 차려보고 싶기도 했다. 프랑스의 남부 도시 니스와 프로방스에도 가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모두 힘든 일이 되었다. 올해 초부터 여행 정보를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여행 후반부 내용을 정리하는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다. 지역적인 바이러스라 생각했는데 감염 규모가 커졌다. 2월이 되어서는 한국까지 도착했다. 마스크 없이 외출조차 어려워졌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에서는 확진자가 쏟아졌다.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는 현지 상황을 공유하는 글과 항공, 숙박 등을 환불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 글이 쏟아졌다.




여행기를 쓰면서 집콕이 일상이 된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다시 올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은 같았을 것 같다. 여행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 있고 일상을 사는 중에도 여행의 추억으로 힘을 얻을 때가 있다. 수많은 여행기를 읽었는데 대부분의 결론은 ‘여행은 일상처럼, 일상은 여행처럼’이라는 구절로 끝났다.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상식으로 여겨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행이 여행으로만 끝나지 않고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 나를 성장시켜준다면 그 이유는 여행을 하며 느꼈던 환희의 순간을 일상에서 재현해보려는 시도 때문일 것이다.


백신이 보급된다고 해도 해외여행은 예전만큼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코노미 석은 좌석 간 거리두기를 시행해 가격이 더 올라갈 것이고, 국경을 넘을 때 건강상태에 대한 증명이 복잡해질 수 있다. 더 많은 비용과 제약을 안고 여행해야 할 것이다. 아무렴 상관없다. 여행의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다음 여행이 언제가 되든지 중요하지 않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 기억을 안고 내 30대를 씩씩하게 헤쳐나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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