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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Oct 31. 2020

아리송한 기분이 듭니다만

대한민국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일 년간 글을 써보기로 다짐했다. 플랫폼은 인스타그램을 선택했다. 평생 SNS를 할 일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소셜미디어에서의 소통을 즐기고 있다.


90년대생들에게는 네이트온과 싸이월드가 있었다. 2G 폰을 썼던 중학생 때는 SNS란 컴퓨터를 통해 하는 것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네이트온부터 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심경의 변화는 대화명에 담았다. 싸이월드는 일일 방문자 수를 뜻하는 투데이, 당시 감성을 담은 BGM, 비밀글 작성이 가능한 방명록이 특징이었다.


‘today is…’를 통해 설정해 둔 오늘의 기분과 BGM을 조합해보면 친구의 연애가 무탈한지 유추해 볼 수 있었다. 학창 시절의 내가 경험한 소셜미디어는 이런 것이었다. 10대의 요동치는 감성과 미화된 기억으로 남아있는 추억을 상징했다. 내밀하고 사적인 매체. 성인이 되고부터는 실시간으로 나오는 뉴스를 보거나 관심 있는 기관의 대외활동 정보를 얻기 위해 비공개 계정만 만들어 소셜미디어를 이용했다.


그런 내가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쓰며 생긴 한 가지 변화가 있다. 혼자 기록을 남길 때는 내가 글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팔로워 분 중 ‘금융 공부에 관심 많은 분이 있으셨지’, ‘내 또래의 분이 있었는데 나의 추억에 공감하실까?’,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는 무엇일까?’ 등을 고민하며 공감의 지점을 찾아간다.


이런 고민을 통해 정성 들여 쓴 글에 내 고민과 비슷한 댓글이 달리면 배우는 것이 많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는지 배우고 있다. 팔로워 분들이 글쓰기 선생님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글을 쓰는 이유와 쓰고 싶은 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일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지 한 달 조금 넘었던 때였다. 당시 <미치지 않고서야>라는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올렸다. 온라인 살롱을 통해 자신만의 사업을 일군 출판사 편집자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글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좋아요와 댓글을 통한 소통보다 더 구체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저자의 도전에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쓴 글에 댓글로 간단히 ‘온라인 살롱’ 이벤트를 안내했다.


주제는 다큐멘터리인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으로 정했다. 나의 인생 책 중 하나인 <비커밍>을 주제로 한 콘텐츠이기도 했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여러 주제가 있었다. 당시 팔로워가 300명대였다. 이벤트 모집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발행했다. 글을 올리고 계속해서 어플을 켰다 껐다 했다. 관심 가져주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좋은 아이디어네요’, ‘다음에 참여하고 싶어요’와 같은 댓글이 달릴 뿐 참가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벤트 둘째 날 아침. 드디어 첫 번째 참가자가 나타났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통해 무엇을 느꼈고 본인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싶은지를 자세하고 정성스럽게 써주셨다.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며 본인의 계정에 책에 대한 감상도 작성하여 올려주셨다.


꽤나 내밀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주셔서 읽고 또 읽었다. ‘좋은 콘텐츠를 추천해줘서 고맙다’,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올리지 말걸. 아무도 관심 없는 이벤트를 올려서 이게 무슨 망신이야’라고 마음 졸였던 나에게 큰 보상감을 안겨준 경험이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참가자분께 나도 진심을 담아 답글을 남겼다. 그 날 두 분의 참가자가 더 참여해주셨고 목표인원이었던 세 분의 참여가 마감되었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었던 계기였다. 대학원에서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대학원에서 취재하고 작성한 글은 제휴를 맺고 있던 인터넷 언론사에 공동 기재되었다. 덕분에 운이 좋으면 내가 쓴 글이 포털 사이트 뉴스란에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은 나와 친구들만 읽고선 잊혔다. '우리 아빠만 자랑스러워하는 글'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당시에는 영향력 있는 매체에 입사하여 포털을 휩쓰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이 글을 쓰며 엄마에게 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원고를 드리고 운동을 다녀왔는데 엄마가 깔깔대며 소리 내 웃고 있었다. ‘뭐지? 딸내미 기 살려주기인가?’ 아리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엄마 표정을 보니 무언가 재미있는 코드가 있었던 것 같다. 예능을 볼 때나 나오는 웃음이었다.


누군가 내 글에 칭찬을 전한다면 언제나 아리송한 기분이 들겠지만 나를 의심하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 얼마나 많은 기쁨이 있는지 함께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개개인이 자신의 일상을 행복하게 꾸려가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 같다. 성실한 사람들의 선한 하루가 모여 서로에게 용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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