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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30. 2019

먹는 일의 거룩함

-혼밥이 정말 좋아?-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 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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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한세상 떠 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 이라는 문장이 가슴에 들어와 팍 꽂힌다.


시인은 한숟갈 가득한 생명력을 온전히 먹어내는 일이 식사란다.


이제는 혼자 먹는게 편해서, 아니 밥먹는 시간이나마 남과 부대끼고 싶지 않아서 엉덩이를 의자에 깊숙이 처박고는 숟갈을 들어올리다 이내 스쳐간 옛 어린것들. 지금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부실한 끼니를 앞에두고도 눈 흘기며 같이 숟갈을 들던 그 어린 것들이 떠올라 그리움에 사무쳐도, 하릴없이 숟갈을 들 수 밖에 없는 슬픈 입이여. 그래도 밀어 넣어야 하는 생에의 의지여.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아무렴 혼술이 편하니 혼밥이 좋니 할지라도, 때로 같이 마주 앉아 밥먹을 사람이 있음이 참 감사한 일이다.


평론가 이동진은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주제가 '느슨한 연대에 대한 예찬'이란다. 느슨한 연대.


사람이란 누구나 인생 앞에서 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단독자라는 처절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아주 느슨하게나마 타인과 연대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버거운 무기력함이라니. 하지만 어쩌면 수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이 삶을 고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입벌리고 살아가는 것은 느슨한 연대로 이어진 '너' 덕에 더 이상 삶이 처절하지도, 무기력하지 만도 않기 때문은 아닐까.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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