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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ug 24. 2020

<낙서> 옆사람은 그저 보균자일 뿐


혼자 지하철을 타고 선릉역에 다녀왔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핸드폰에 코를 처박고 덜컹이는 지하철을 따라 군무를 추듯 리듬을 탄다. 덜컹덜컹.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따르릉 울리는 전화기를 집어들더니 큰 소리로 통화를 한다. 그리고 잠시후에는 맞은편 할아버지가 기침을 하며 눈치를 살핀다. 일제히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듯 할아버지는 허공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제스쳐를 취한다. 누구하나 실질적인 음성으로 볼멘 소리를 낸 이는 없으나 군중의 싸늘한 공기가 지하철 바닥에 차갑게 내려앉을 따름이다.


코로나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것. 옆사람은 나와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잠재적 보균자로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주저 『피로사회』를 통해 현대 인류가 과학 발달의 성과와 더불어 면역학적 시대를 졸업했다 했으나 코로나는 이에 엄중한 재고를 선언한다. 내부와 외부의 이분법, 나와 타자의 이분법 속에서 '나'는 지켜야 할 대상으로, 타자는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환원되고 마는 면역학적 체계가 다시금 작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균과의 싸움이 아닌 감염자와 의 싸움, 혹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마는 '규칙 거부자'들과의 싸움이 작금의 대립 구도 아니던가.


가끔 생각해보면 꿈같기도 한 현실, 그러나 잠에서 깨면 여지 없이 뜨거운 공기를 가득 내쉬게 만드는 갑갑한 마스크와 더불어 아픈 현실에 발붙이고 있음을 깨닫는다. 온 얼굴로 서늘한 밤공기를 부비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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