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lpmlX_BXETI
도킨스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행동은 단지 유전자가 자기를 보존하려는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거라 할 수 있죠. 하지만 때때로 인간은 도킨스의 이론만으론 설명하기 힘든 놀라운 희생 정신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소방관들은 자신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인, 즉 본인의 유전자와는 아무런 일치도를 보이지 않는 타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기도 하고요, 또한 많은 의사들은 전쟁터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약자들을 살리기 위해 정작 본인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처참한 현장으로 뛰어들곤 합니다. 과연 인간이 정말 이기적 유전자라면 어떻게 이러한 이타성을 간직할 수 있던 걸까요? 인간의 이타성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는 오늘의 책,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입니다.
이타적인 행동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곤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흡혈박쥐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들은 다른 생물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따라서 사냥에 성공하지 못한 흡혈박쥐들은 피를 구하지 못하여 배를 곯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이 굶은 상태로 죽어가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굶주린다면 무리 중 한 마리가 그들에게 다가가 굶주린 박쥐에게 먹일 피를 토해내기 때문입니다. 대체 우리는 그들의 이타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 중 하나는 도킨스를 비롯한 여러 생물학자들이 주장하는 혈연선택이론입니다. 도킨스는 개체라는 것이 단지 유전자가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사용하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죠. 쉽게 말해 흡혈 박쥐 한 마리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유전자라는 사실, 다시 말해 흡혈박쥐의 몸뚱이는 흡혈박쥐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 사용한 그릇일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도킨스의 관점에서 흡혈박쥐들의 이타성을 설명한다면, 그들이 서로 굶주린 박쥐를 도우려는 행동은 남을 위한 이타성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유전자가 줄어들지 않길 바라는 보존 본능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도킨스의 설명은 흡혈박쥐들의 이타성을 온전히 설명해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흡혈박쥐들은 그들 무리에 나중에 끼어든 박쥐들, 이른바 이민족 흡혈박쥐들이 굶주렸을 때에도 동일한 이타성을 발휘하기 때문이죠. 만약 도킨스의 말 대로 흡혈박쥐가 단지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들이 자기와는 전혀 다른 유전자를 지닌 이민족 흡혈박쥐를 돕는 것은 오히려 생존에 방해가 될 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흡혈박쥐의 이타성을 설명하기 위해선 또다른 이론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 받게 된 새로운 개념이 바로 반복-호혜성 이론입니다.
반복-호혜성 이론이란 서로 간에 베푸는 이타적 행위가 실은 대가를 바라고 행해지는 것이라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생물학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굶주린 흡혈박쥐 B가 배부른 A로부터 도움을 받은 경우 다음번에 B는 거꾸로 A가 굶주릴 때 다가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즉 A와 B가 서로에게 베푸는 이타성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 그저 생존을 위해 맺은 전략적 거래라 할 수 있죠.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번에 내가 상대방을 도왔다면 나중에 상대방은 꼭 나에게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와 B가 하루만 보고 말 사이라면 상대가 굶고 있더라도 굳이 도울 이유가 없다는 말이죠. 즉 반복-호혜성 이론이란 내가 상대를 도왔을 때, 그에 대해 상대방도 나를 도울 가능성이 충분할 때만 서로가 이타적 행위를 베푼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모든 종류의 이타적 행위를 완벽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이를테면 아프리카의 한 원주민 집단에서 발견되는 식량 공유 풍습을 예로 들어볼까요? 저자에 따르면 이들 부족은 사냥에 성공한 이들이 가져온 식량을 모두가 공유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원주민 A가 사냥하여 얻은 식량을 집에서 놀던 B도 같이 먹는다는 거죠. 다만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역할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A는 자신의 식량을 내놓으며 집단과 공유하지만 이 때 B는 먹기만 할 뿐 시간이 지나도 A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복-호혜성 이론은 대가가 치뤄지지 않는 이타적 행동을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입니다. 대체 이타성의 동력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가상 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가령 커다란 우물이 있는 한 마을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곳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이타적이거나, 혹은 이기적인 사람 둘 중 하나에 속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물에 독이 퍼지고 맙니다. 이때 이타적인 사람들이라면 오염된 우물을 되돌리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설 테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몇 사람은 독에 노출되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릅니다.
반면 이기적인 사람들은 나서지 않고 숨어 있다가, 나중에 우물이 정상적으로 회복된 뒤에야 슬그머니 나타나 조용히 우물을 사용할 지 모르죠.
즉 이타적인 사람들은 늘 타인을 위해 헌신하느라 정작 본인은 목숨을 잃기 쉬운 반면 이에 반해 이기적인 사람은 위험한 일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생존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을에 모두 이타적인 사람만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소홀히 여겨 죽게 될 지 모르고요, 반대로 마을에 모두 이기적인 사람만 있다면 아무도 우물을 손보지 않아 목말라 죽을 지 모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개체의 입장에선 이기적인 전략이 생존에 유리하지만, 종 전체의 관점으로 볼 땐 이타적인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해선 이기적이기만 해서도 안 되며, 이타적이기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거죠. 이처럼 저자는 이타성이나 이기성 둘 중 하나만이 존재의 본질이라고 여기지 않고, 그 둘의 조화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자 시도한 것입니다.
저자는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자 한 실험 결과를 제시합니다. 실험 방법은 단순합니다. 실험 참여자는 A와 B, 두 명입니다. 실험진은 A에게만 만 원을 지급하며, B는 그 장면을 그대로 목격합니다.
돈을 받은 A는 자신이 갖고 싶은 만큼을 뺀 나머지 차액을 B에게 줍니다. B는 자신이 받은 액수에 만족하면 ‘Yes’, 만족하지 않으면 ‘No’를 외칩니다. 만약 ‘Yes’를 외친다면 A와 B는 각각 돈을 가질 수 있지만, B가 ‘No’를 외친다면 A와 B는 둘 다 돈을 가질 수 없습니다. 과연 이때 A는 얼마 만큼을 B에게 제안할 것이며, 또한 B는 적어도 얼마 이상을 받을 때 ‘Yes’를 외칠까요? 사실 B의 입장에선 설령 10원만 받더라도 ‘No’를 외칠 합리적 동기가 없습니다. A가 얼마를 주든 B에겐 공돈이므로 무조건 이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험 결과에 따르면 B가 ‘Yes’를 외치는 액수의 평균은 약 3천원 정도라고 합니다. 즉 3천원 이하를 제안 받을 땐 ‘No’를 외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이를 부당함에 대한 분노라고 해석합니다. 쉽게 말해 B는 불공정한 분배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자신이 A로부터 받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입니다. 이를 인간 사회 일반에 적용해본다면 우리는 법률이나 사회적 도덕, 혹은 시민 단체 등의 시스템을 비용으로 지불하여 이기적인 사람들의 활동을 억제한다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이번엔 실험의 규칙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이번에도 A는 실험진으로부터 만 원을 지급받고요. 다만 A가 B에게 건네는 돈은 B에게로 갔을 때 세 배로 증식합니다. 그리고 B는 그 중 원하는 만큼을 취하고 남은 액수를 A에게 돌려줄 수 있죠.
예를들어 A가 B에게 6,000원을 건네면 B는 18,000원을 받는 셈이며, 이중 B는 A에게 딱 주고 싶은 만큼만 돌려주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A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만 원을 모두 B에게 줘서 3만원을 만들고, 그 중 절반인 1만 5천원을 돌려받는 거겠죠. 하지만 B가 얼마 만큼이나 A에게 돌려줄지는 불확실하므로 애초에 A는 처음에 받은 만 원을 자신이 전부 가지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에 따르면 대체로 A 역할을 맡은 사람은 B를 신뢰하며 상당한 액수를 건넸고, B 역시 그로부터 세 배가 된 총액 중 절반 가까이를 A에게 돌려주었다고 하죠.
즉 우리의 마음 속엔 상대방의 신뢰에 감사함을 느끼며, 그에 보답하고자 하는 사랑의 정신이 녹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저자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인간은 이기적 특성에 분노할 수 있는 정의감과 더불어 타인의 선의에 보답하려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이기성을 억제하고 이타성을 장려하려는 노력을 통해 도킨스가 말하는 생존 기계 이상의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거죠.
이상으로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봤습니다. 일찍이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선이라는 것이 그저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 낸 인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 바 있죠. 또한 정치 철학자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일 것이라 경고하며 사회 계약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도킨스는 인간이 단지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이 보이는 이타적 행위는 최종적으론 유전자의 이익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을 거라 설명하죠. 어쩌면 이들의 설명은 대체로 타당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분명 우리 내면에 악한 본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그러한 본성에 굴복하여 이기성의 화신이 된 사람들을 수없이 목격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간에게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결코 이기적인 존재에 그치려 하지 않고, 내면의 이기성을 끊임없이 극복하며 언젠간 이타적 존재로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니 말이죠. 아무쪼록 우리 내면에 자리한 편리한 이기주의적 본성을 마침내 불편한 것으로 여기는 이타주의가 도래하길 응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