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DNA

<이기적 유전자>, 리차드 도킨스

by 혜윰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nRZ7xTr9GHc





리처드 도킨슨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는 아마 20세기 후반 이후 각종 논문이나 매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과학 서적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아울러 그 친숙함과는 대조적으로 낮은 완독성(完讀性)을 보이는 책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대중들이 도킨슨의 탁월한 직관과 추론을 완벽하게 따라잡기란 여간 벅찬 일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완독하면 낮은 완독률에 의아함이 들 것입니다. 몇몇 고비만 넘긴다면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력과 탁월한 직관, 날카로운 추론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구성은 핵심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예시로 양분됩니다. 핵심 주장을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 곤충, 심지어 박테리아에 이르는 모든 생명체가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도킨슨은 이 같은 자신의 파격적인 주장을 관철하고자 수많은 생물종의 다양한 행동 양상을 근거 예시로 내세우며 독자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출간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논쟁이 따르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도킨슨 이론의 불완전성을 드러내기보다 되려 그의 이론이 오랜 세월 학계와 대중 지성에 끼친 파급력을 방증하는 바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영국의 생물학자이며, 대중적 인기와 학문적 성과를 동시에 거둬 명실상부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4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난 도킨스는 약 여덟 살이 될 무렵까지 아프리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감상하고 자란 덕에 어릴 적부터 생물을 관찰하는 데 큰 흥미를 보였습니다. 이후 아버지의 케냐 근무가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생물에 대한 도킨스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고 이는 훗날 도킨스가 생물학자가 되는 데 너른 발판이 됩니다.


도킨스는 뛰어난 과학적 통찰 뿐만 아니라 탁월한 문장력 덕분에 어려운 과학적 이론도 쉽게 풀어쓰는 출중한 재능을 가진 학자입니다. 이러한 도킨스의 재능은 과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또한 그의 지치지 않는 학자적 열정은 독자들에게 있어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도킨스의 저작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은 진지하면서도 재기발랄한 그의 통견(通見)에 흠뻑 빠져들 것입니다.







시대 배경


리처드 도킨스의 주저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 출간된 이래 약 40여년의 세월 동안 무수히도 많은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논란의 근거는 도킨스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애용했던 ‘의인화’ 설명 방식부터 일반화의 오류, 근거의 적합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킨스를 둘러싼 거센 비난의 본질적인 이유는 도킨스의 주장이 당시 진화론에 대한 학계의 중론을 뒤흔드는 파급력을 가진 탓이었습니다. 당시의 중론이라 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기초한 것으로서, 흔히 그의 이름을 본딴 다위니즘이라 알려진 사조입니다. 따라서 도킨스가 주장하는 이론이 가진 파격성을 보다 피부로 느끼기 위해서는 다위니즘의 핵심 개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위니즘의 원류인 찰스 다윈은 도킨스보다 약 100년 가량 앞서 활동했던 생물학자로서 시대의 역작 <종의 기원>을 펴내며 생물진화론을 정립하는 데 공헌한 인물입니다. 다위니즘의 핵심 내용은 크게 자연 선택과 적응으로 압축됩니다. 두 용어는 독립적인 개념이라기 보다 하나의 현상을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한 것으로서 자연 선택은 환경의 입장에서, 적응은 개체의 입장에서 정의된 것입니다. 이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저들이 속한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가령 기온이라던가 습도, 대기 구성 물질부터 혹은 자신을 둘러싼 여타 생물종의 분포 양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환경 변수에 따라 각 개체들은 자신의 생존률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즉 환경의 변화와 무관한 생물종은 존재하지 않으며, 아울러 환경의 변화는 때때로 어떤 개체에는 유리할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자연 선택이란 이러한 환경 변수에 어떤 종이 살아남았느냐 하는 유불리성과 관련한 것입니다. 유구한 역사 이래 수많은 개체들은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 차마 적응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떠밀려가길 반복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역시 마찬가지로 다위니즘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에 동의했습니다. 생물종을 둘러싼 환경은 변화하기 마련이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종은 도태됩니다. 도태는 곧 멸절로 이어지고, 살아남은 생물종만이 자연의 선택을 받은 셈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킨스와 다윈의 견해는 환경에 변화하는 주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충돌하고 맙니다. 다윈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단위가 ‘개체’라고 생각했던 반면 도킨스는 ‘유전자’야말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실질적인 주인공이며 개체는 단지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피력한 것입니다. 이 두 견해가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이 두 단위에 대한 견해 차이가 과연 얼마나 큰 차이를 불러오는 것인지는 아래 ‘내용 정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서론


책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앞서 원저서의 목차 구성과 서술 순서를 간략히 살펴보며, 본 요약자의 요약 방향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본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2. 자기 복제자

3. 불멸의 코일

4. 유전자 기계

5.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6. 유전자의 행동방식

7. 가족계획

8. 세대 간의 전쟁

9. 암수의 전쟁

10. 내 등을 긁어 줘, 나는 네 등위에 올라탈 테니

11. 밈-새로운 복제자

12.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13. 유전자의 긴 팔


맨 처음 도킨스는 첫 장 ‘1.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에서 책 전체를 이끌어갈 핵심 주장을 소개합니다. 즉 환경에 적응하는 단위는 ‘종(species)’도, ‘개체’도 아닌 ‘유전자’이며, 유전자는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는 자신의 이론을 선포하며 책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어서 ‘2. 자기 복제자’ 장에서는 유전자가 추구하는 이기적인 이익이란 곧 유전자 자신의 ‘존재’ 그 자체에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유전자가 끝없이 자기와 같은 유전자를 복제하려는 성질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3. 불멸의 코인’에서는 전 장에서 논한 유전자의 복제 능력을 통해 유전자가 억겁의 세월 뒤에도 지구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전자의 ‘불멸’성을 재보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4. 유전자 기계’에서는 유전자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 개체라는 ‘몸’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과 그로 인한 장점을 부연합니다. 이후 5장부터 10장에 이르는 내용은 ‘이기적 유전자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많은 예시를 도킨스만의 탁락(卓犖)한 언어 감각과 풀이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11. 밈-새로운 복제자’에서는 ‘이기적 유전자론’에 관한 대중의 흔한 비난 중에서도 ‘이기적 유전자론이 맞다면 인간은 그저 유전자가 시키는 행동을 로봇처럼 수행하는 기계에 불과한 것입니까?’라는 날선 질문에 대한 도킨스의 답변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12.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에서는 마찬가지로 극예(極銳)한 비난, 즉 ‘유전자가 늘 이기적인 목적만을 쫓는다면 인간이 때로 협력하고 봉사하는 정신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입니까?’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13. 유전자의 긴 팔’에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후속작 <확장된 표현형>에서 다루는 핵심 내용을 개괄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장장 400여 페이지에 걸쳐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도킨스의 과학적 추론은 이기적 유전자론이라는 하나의 큰 흐름 아래 도열을 맞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대중서이기 이전에 과학서이며, 따라서 도킨스는 독자에게 감성과 상상력에 호소하기 보다 자신의 주장을 확증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엄밀한 근거를 제시하는 과학자로서의 사명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기적 유전자>의 책 구성은 ‘유전자는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개체라는 운반자를 생존 기계로 삼는다’라는 핵심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무수한 근거와 예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이 책이 과학서이기 때문에 가지는 당연한 특징입니다.


다만 본 요약서는 책에 빼곡히 나열된 예시들을 충실히 전달하는 데 목표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는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저술할 때 본인 이론의 타당성을 충실히 입증할 의무를 감당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본 요약서는 도킨스의 핵심 개념을 더 잘 소개하는 데 방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기적 유전자론의 학문적 타당성에 대해서는 장장 40여년 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된 시간의 검증과 학계의 인정이라는 권위에 적당량 기대어 도킨스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 반론보다는 그의 이론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달점을 두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긴 서론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도킨스의 지적 세계를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1) 자연 선택


앞서 ‘시대 배경’을 통해 자연 선택이 뜻하는 바를 간단히 살펴본 바 있습니다. 자연 선택은 그 단어가 함의하는 것처럼 말 그대로 ‘자연이 선택한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선택은 결코 의식적 선택은 아닙니다. 자연이라는 비물질적 총체가 의식을 가질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즉 자연이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만 그렇게 보일 따름입니다. 이를 다시 자연에 의해 ‘선택된 것’ 입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은 절대 자신들이 선택 받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그저 변화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필사적인 분투를 벌여 응당한 생존권을 거머쥐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연 선택과 적응이라는 두 키워드는 변화하는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적응’한 생물체를 설명하는 동일선상에서 재회하는 셈입니다. 논의의 중요한 지점은 바로 다음 대목에서 시작됩니다. 적응의 주체였던 생물체의 최소 단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대한 견해가 학자마다 다른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론 이전을 주도했던 견해는 크게 두 갈래로 양분됩니다. 하나는 그 단위를 집단(혹은 종)으로 보는 것, 다른 하나는 개체로 보는 것입니다.


(1) 집단 선택설 v.s. 개체 선택설


집단 선택설은 해당 종에 속한 개체가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도록 진화한다고 전제하는 학설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개체는 전체 종의 이익이 확대되는 방향이라면 적잖은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이타성을 갖춘 것으로 간주됩니다. 가령 큰 벌집을 보고 달려드는 한 마리의 곤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벌집을 지키기 위해서 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침입한 곤충에게 벌침을 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벌은 신체 구성상 침을 쏘아냄과 동시에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내장까지 잃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곤충에게 벌침을 쏘는 벌의 행동은 여러 차례 생물학자들에게 발견되어 왔습니다. 즉 이 벌은 자신이 죽어가면서까지 곤충을 물리쳐냄으로써 다른 벌들의 생존권을 지켜준 것입니다. 집단 선택설을 옹호하는 자들은 이처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한 마리의 벌이 보이는 숭고한 희생을 그 근거로 제시합니다.


반면 개체 선택설은 자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주체는 개체이며, 개체들은 종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단위라고 설명합니다. 예를들어 하나의 이타적인 집단을 상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들 집단 내 개체들은 집단을 위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타적 개체들이며, 심지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릴지라도 다른 개체를 위해 자신의 먹이를 쾌히 내어주는 ‘착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별안간 이 집단에 이기적인 개체가 태어난 것입니다. 이 돌연변이는 다른 개체들이 보이는 이타성을 이용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먹이를 갈취할 것이며 오로지 자신의 생존 활동에만 관심을 보입니다. 이들은 본연의 이기심을 십분 발휘해서 집단 내 강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할 것이고 시간이 더 지나면 이타적인 개체들은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이것이 개체 선택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내세우는 ‘반역자 이론’이며, 또한 다위니즘에 가까운 주장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시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행동을 간략히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도킨스가 주장하는 ‘유전자 선택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이타적 행동 v.s. 이기적 행동


도킨스가 정의하는 두 행동, 즉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행동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감각과는 사뭇 다른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도킨스가 이야기하는 두 행동 양상에서 ‘동기’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행동은 오직 ‘결과’로만 정의됩니다. 즉 이타적 행동이란 개체가 자신의 생명을 버림과 동시에 다른 개체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며, 이기적 행동은 그 반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타적 행동의 예는 앞서 ‘(1) 집단 선택설 v.s. 개체 선택설’에서 언급한 벌이 꼭 들어 맞습니다. 예에서 벌이 곤충을 물리치기 위해 침을 쏘아낸 무의식적 동기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침을 쏜 벌은 죽었고 이로인한 혜택을 다른 벌들이 누리게 된 것입니다. 반면 이기적 행동의 예로는 암사마귀를 들 수 있습니다. 암사마귀는 자신과 교미하려고 접근한 수놈을 교미하던 도중 머리부터 잘라 먹는 행동을 보입니다. 이를 통해 암사마귀는 생식에도 성공하고, 추가로 먹이를 확보하는 이득을 얻는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론을 주장하는 도킨스의 관점에서 볼 때 다양한 생물군에서 발견되는 이타적 행동은 반드시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생물들의 수많은 예는 이기적 유전자론에 전면 대치되는 반례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킨스는 개체가 보이는 이타적 행동마저도 유전자의 이기성 아래서 비롯됨을 능숙하게 설명해냅니다.




(3) 유전자 선택설


과연 이타성이 어떻게 이기성으로부터 기인하는지를 살펴보기 전에 다시 도킨스 이론의 핵심 주장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도킨스가 주창한 유전자 선택설, 즉 이기적 유전자론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단위가 유전자이며, 유전자는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개체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유전자의 이기적인 목적은 곧 유전자 자신의 존속을 뜻하며 개체는 유전자의 존속을 꾀하기 위한 일종의 피난처에 불과합니다. 이해의 편의을 위해 인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개체 선택설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생 인류는 수많은 환경 변화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와 같습니다. 또한 이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의 멸절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즉 살아남은 ‘우리’와 멸종한 ‘그들’사이에는 아무런 연속성이 없으며 ‘우리는 우리, 그들은 그들’이라는 도식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시 유전자 선택설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와 그들 사이에 끊어졌던 연속성이 되살아납니다. 가령 A라는 특정한 유전자가 있다고 해봅시다. A 유전자는 아주 먼 과거에는 지금의 현생 인류와 매우 다른 모양의 인간 속에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급격한 환경 변화에 따라 A 유전자는 더 이상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인간의 몸 속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A가 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껍데기를 환경 변화에 유리하도록 바꾸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불리한 신체 조건을 가진 ‘생존 기계’들은 유전자에게 외면 받게 되었고, 유전자는 현생 인류로 갈아탄 것입니다. 따라서 유전자는 수많은 개체를 거쳐 긴 세월 동안 살아 남는 역사의 주인공인 셈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타성과 이기성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이 같은 생존 방식이 철저히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 갖는 이기적인 단위라고 주장합니다. 종전에 이에 대한 반론으로 언급한 벌의 희생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개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벌이 침을 쏘아 침입자를 물리치고 죽는 희생 행위는 벌이 속한 집단에는 유익하지만 죽은 벌에게는 불리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유전자 관점에서 본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벌 한 마리의 죽음을 통해 수 많은 벌의 존속을 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벌 한 마리의 희생은 유전자에게 있어 단지 껍데기 하나를 버리는 행위에 불과하며 이를 통해 자신과 동일한(혹은 비슷한) 수많은 유전자를 지켜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전자가 가지는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복제’ 능력 때문입니다. 다음 장을 통해 보다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2) 유전자 : 자기 복제자


(1) 생명의 기원


태초에 이 세상은 아주 단순한 물질 뿐이 없는 안정된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현재도 다양한 분자들이 자연 속에서 서로 결합하는 현상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단순한 과학적 추론입니다. 도킨스는 이후 어느 시점 지구상에 유의미한 분자가 우연히 생겨났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바로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진 분자입니다. 그 우연은 실로 작은 확률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수십억 년이란 시간 속에서 단 한 번만 발생하면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충분히 가능한 우연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거듭 자기와 같은 사본을 충실히 만들어내는데, 복제 과정에서 뜻밖의 오류가 발생하여 모종의 ‘변종 사본’도 발생하게 됩니다. 원본으로부터 파생한 변종 사본은 이후로도 변종의 변종을 연거푸 발생시키며 지구 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자기 복제자들이 득시글거리게 됩니다.


다양한 사본이 판을 치자 자기 복제자들은 부득이하게 경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공존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기 복제자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저들만의 무기를 개발해야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복제 속도와 정확도가 그 예입니다. 자기 복제자들은 자신과 같은 사본을 빨리, 그리고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러나 빨리 만들어내는 과정에 열중한다면 그만큼 변종 사본이 발생하기도 쉽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속도와 양의 알고리즘에 따라 자기 복제자들은 존속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본을 만들어냈습니다. 보다 강력한 무기는 다음에 등장합니다. 어떤 자기 복제자가 자신의 둘레에 단백질 벽을 둘러싸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을 익히게 된 것입니다. 도킨스가 추측하는 최초의 세포는 이렇게 탄생합니다. 도킨스에 따르면 이 단백질 벽은 수십억 년의 세월을 통해 현생 인류의 몸까지 진화해 왔고, 그 진화 이유는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진화의 과정을 누적해 온 것입니다. 즉 도킨스는 인간의 몸이 그저 자기 복제자가 살아남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며, 자기 복제자를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몸을 생존 기계, 혹은 운반자라고 칭합니다. 물론 생존 기계는 꼭 인간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개체는 생존 기계이며 자신이 담고 있는 유전자의 외피에 불과한 것입니다.


(2) 유전자풀


지금껏 논의한 유전자 개념은 자칫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쉬운 소지가 있습니다. 마치 한 개체 내에 단 하나의 자기 복제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익히 배워 알고 있듯 인체를 이루는 수많은 세포들은 유전 물질 DNA를 담은 염색체 23쌍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킨스는 인간 개체 내에 도열한 다양한 대립 유전자들을 총칭하여 유전자풀이라고 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토끼라는 개체를 구성하는 유전자풀에는 토끼의 특성에 관여하는 다양한 유전자가 존재합니다. 이들 유전자에는 눈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귀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끼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행동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좋은 시력과 밝은 청력이 유리합니다. 이 경우 각각에 관여하는 두 유전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단독으로 토끼에게 관여할 때보다 협력함으로써 개체를 더욱 유리하게 돕습니다. 즉 유전자풀에 떠다니는 수많은 유전자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개체를 유리한 조건에 두기 위해 ‘협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땐 개개의 ‘이기적’ 특성을 실현하기에 알맞은 것입니다. 실제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3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에 또 하나의 훌륭한 대안은 ‘협력적 유전자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언뜻 ’이기적‘이란 단어와 ’협력적‘이란 단어 사이에서 드러나는 이질감으로 인해 고개를 갸웃하기 쉽지만, 도킨스는 유전자들의 상호 협력이 결국 개개의 존속이란 이기적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3) 생존 기계


(1) 생존 기계는 유전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로봇인가? : 컴퓨터 체스


<이기적 유전자>를 읽는 독자들이 빠지기 쉬운 또 다른 치명적인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통제권이 우리에게 없는 듯한 불쾌감입니다. 도킨스의 주장대로 우리는 그저 유전자가 생존하기 위한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는 행동도 그저 유전자의 명령에 따르는 로봇의 수행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전자가 개체의 행동을 제어하는 과정에 대한 오해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오해를 풀고자 도킨스가 사용한 컴퓨터 체스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컴퓨터를 상대로 체스를 둬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는 철저히 프로그래머의 노고 덕분입니다. 프로그래머는 각각의 말이 이동 가능한 변수를 xy함수로 표현하고, 또한 게임에 유리한 조건들을 수학적으로 나타내어 프로그래밍합니다. 이 같은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컴퓨터는 게임을 진행하도록 되어 있으며, 중요한 점은 게임이 진행되는 그 순간은 더 이상 프로그래머가 컴퓨터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도킨스는 이와 같은 프로그래밍 방식이 유전자가 하는 일과 꼭 비슷하다고 설명합니다.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조건들을 사전에 프로그래밍할 뿐 살아있는 생존 기계의 행동을 시시각각 제어할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유전자는 각 개체의 발생 이전에 자신에게 유리한 유전 정보를 프로그래밍 할 수는 있으나, 생존 기계에 ‘탑승’한 이후에는 그저 개체 안에 ‘존재’할 뿐입니다. 게다가 인간을 생존 기계로 삼은 자기 복제자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히 뇌를 발전시키는데 공을 들였는데 이는 나중에 ‘5) 밈’에서 살펴보겠지만 인간이 유전자에 반항할 수 있는 탈출로를 제공한 격이 되었습니다.



(2) 생존 기계가 집단을 이루는 이유 :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이기적 유전자론을 둘러싼 또 다른 의문은 생존 기계의 공격성에 관한 것입니다. 생존 기계가 정말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면 개체들은 상호간의 경쟁자들을 죽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이 의문을 해결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가령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개체 A, B, C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 A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B를 죽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B를 죽이는 행위는 곧 C의 이익이기도 합니다. 즉 A는 B를 죽이기 앞서 B를 죽임으로써 얻는 비용, 혹은 B를 죽이는 데 실패함으로써 손실할 비용, 또 B를 죽였을 때 C가 얻게 될 반사 이익 등의 비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체들이 무작정 경쟁자를 죽이는 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최선의 전략은 아니라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개체가 경쟁자에게 보이는 공격성은 유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제한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경쟁자와 공존함으로써 공통의 포식자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던가, 경쟁자와의 싸움이 전혀 승산이 없다거나 하는 등의 변수를 계산한 개체는 그에 걸맞는 수치의 공격성만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입니다. 토끼가 사자를 보면 도망치는 이유는 사자를 보고 도망치지 않은 토끼의 몸을 입었던 유전자들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유전자들은 유전 정보에 ‘사자를 만나면 도망가라’라는 내용을 프로그래밍 했을 것이고, 이러한 유전자가 자리 잡은 토끼 개체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ESS 전략을 택하는 것입니다.





(3) 행동 방식


지금까지 도킨스의 핵심 개념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도킨스에 따르면 개체는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개체가 겉으로 보이는 이타적인 행위도 결국 유전자의 이기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합니다. 이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생존 기계의 흥미로운 행동 방식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혈연 관계 : 근연도


유전자는 자기 복제성 덕분에 한 개체 내에 존재하는 동시에 다른 개체 내에도 존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유전자에게 매우 강력한 무기입니다. 만약 개체 A와 개체 B가 동일한 유전자로 구성되었다면 개개의 이익이 곧 서로의 이익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A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라도 자신과 동일한 B가 남아있으므로 극단적인 피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전자는 자신과 동일한(혹은 비슷한) 유전자의 이익을 도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정확히 일치하는 유저자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자신과 닮은 유전자를 만나는 예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 받기 때문입니다. 유성생식(암수 개체가 각각 생식 세포를 만들고 이를 결합하여 새로운 개체를 발생시키는 생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간의 생식이 예에 속함)을 하는 인간의 경우 자식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유전자를 절반씩 물려받으므로 부모의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은 약 50%입니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의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을 근연도라고 하며, 개체들은 근연도가 높은 다른 개체의 이익을 위해 힘쓰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간편한 예로 부모님이 사랑을 다해 자식을 키우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동물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 관계를 일일이 기억할 암기 능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물은 근위도가 높은 혈연 관계를 의식적으로 알아보고 친절한 행위를 베풀리는 없습니다. 그 대신 유전자에 프로그래밍 된 규칙을 수행할 따름입니다. 가령 고래의 이타적인 행위가 그 예입니다. 고래종은 공기를 들이마시지 않으면 익사하는 특성이 있는데, 무리 중에 간혹 상처를 입어 수면까지 떠오르지 못하는 고래가 있을 경우 동료 고래는 이를 도와 수면까지 끌고 올라가는 행동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이 경우 도움을 준 고래는 상처 입은 고래와 자신이 친척임을 알아채고 친절을 베푼 것이 아니라, ‘수면까지 오르지 못하는 못하는 생물체를 도와라’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반응했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② 가족 계획


이번에는 가족 계획에 대한 유전자의 최적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단순히 유전자의 이기성에만 초점을 둔다면 무조건 많은 자손을 낳는 것이 최선의 생존 전략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틀린 추론입니다. 정작 많은 자손을 낳아도 부모가 잘 보살피지 못해 포식자로부터 잡아먹힌다면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전자는 자신이 기를 수 있는 최적의 새끼 수만 낳아 성체까지 키우는 것을 합리적인 전략으로 삼기 쉽습니다. 더불어 이것이 가족 계획에 대한 유전자의 ESS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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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암수 갈등


암컷과 수컷은 생식 세포에 있어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암컷의 생식 세포는 수컷의 것에 비해 훨씬 크고 수가 적은 반면, 수컷의 생식 세포는 암컷에 비해 훨씬 작고 수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 차이점으로 인해 암수 개체는 모종의 갈등에 부딪히게 됩니다. 한 번의 생식이 실패했을 경우 손실하게 되는 비용이 암컷의 경우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암컷은 만들어지는 생식 세포의 수도 적고, 한 번 만들어질 때 수컷의 것에 비해 더 많은 영양분을 투자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컷에게 있어 최적의 전략은 암컷과 교미 이후 도망치는 전략입니다. 이 경우 수컷은 자신의 사본을 증식하면서도, 자식을 기르는 데 쏟게 될 비용들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암컷은 홀로 감당해야하는 비용이 크더라도 이미 생식 세포를 하나 만드는 데 들인 비용이 수컷보다 크므로 쉽게 새끼를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암컷의 전략도 흥미롭습니다. 첫째는, 어차피 도망치는 수컷을 잡을 수 없는 노릇이라면 기왕에 더 강한 유전자를 가진 수컷과 교미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략을 취한 암컷에게 접근하기 위해 수컷은 무거운 것을 들어서 옮긴다던가 하는 과시적 행동으로 응수합니다. 둘째로, 수컷 없이 홀로 자식을 기르는 데 쓰이는 비용이 부담되는 종들은 교미 이후에도 도망가지 않는 수컷을 찾습니다. 이 전략의 구체적 실천으로 암컷은 수컷과 쉽게 교미를 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끄는 것입니다. 이 때 도망가는 수컷은 암컷의 전략이 부적절한 대상을 거르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입니다.



4) 밈(meme)


지금까지 도킨스는 개체의 외적 행동 양식을 유전자에 프로그래밍 된 내용이 실현되는 과정으로 설명해왔습니다. 설사 개체가 유전자의 로봇에 불과한가 하는 그릇된 오해는 차치하더라도, 자연 선택의 단위로 유전자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커다란 지위를 유전자에 부여하고 있음은 도킨스 역시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킨스는 자연 선택의 단위로 하나를 더 추가합니다. 바로 밈(meme)이라는 또 다른 자기 복제자입니다. 이는 ‘모방’이란 의미를 담은 그리스어 ‘mimeme’에서 따온 것으로 곡조나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아치 건조법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상이 복제되는 방식은 대개 책이나 강연을 거쳐 개체의 뇌에 깊이 각인되는 것입니다. 생명력이 강한 사상은 개체의 생활 습관이나 행동 방식, 심지어는 가치관까지 바꿀 만한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흥미롭게도 밈은 생존 기계가 유전자에 저항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가령 독신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전자는 자신이 몸담은 생존 기계가 결혼을 하고, 또 자식을 낳음으로써 자신의 사본을 복제할 기회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식에 대한 본능을 유전 정보에 프로그래밍 해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독신주의의 장점에 공감하며 이를 결단할 수 있는 자율적 주체이며, 유전자의 명령을 거스를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췄습니다.



5) 확장된 표현형



끝으로 확장된 표현형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이기적 유전자>의 ‘ⅳ.내용 정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표현형이란 유전 정보의 신체적 발현을 뜻합니다. 가령 ‘Tt’라는 유전 정보를 가진 사람들은 큰 키를 가졌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 ‘큰 키’가 ‘Tt’의 표현형인 것입니다. 즉 우리 눈에 보이는 개체의 모든 외적 특성은 유전자의 표현형이 이뤄낸 총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킨스는 한 개체가 개체 외부 환경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 영향을 통해 생긴 변화는 해당 개체의 ‘확장된 표현형’입니다. 대표적으로 비버의 댐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비버가 댐을 만드는 목적은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포식자로부터 자신의 집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쨌든 비버를 생존 기계로 삼은 유전자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댐을 만들고 이는 두 눈으로 관찰 가능한 확장된 표현형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읽으며 느낀 점..


도킨스의 주저 <이기적 유전자>를 향한 날선 비난은 비단 과학자들의 실험실에만 늘비했던 것은 아닙니다. 외려 도킨스의 이론이 일으킨 파문은 인문학자들의 마음 속에 더 큰 돌덩이가 되어 떨어집니다. 그도 그럴것이 인문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는 인간적 가치는 다름아닌 ‘자유정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란 곧 인간의 주체성입니다. 인류 지성사를 담은 철학사에는 인간을 옥죄는 수많은 ‘구조’로부터 해체주의를 기치로 나서는 자유와 해방의 정신이 빼곡이 담겨있습니다. 수년 새 가장 뜨겁게 불거진 사회 이슈 중 하나인 페미니즘 운동도 훼손 이전의 본질은 주체성을 찾는 데 있었습니다. 이렇듯 삶의 주인을 꿰차기 위한 투쟁의 길을 장엄히 걸어온 인류 역사에 도킨스의 이론은 느닷없는 사망 진단과 같았습니다.


다만 이는 도킨스의 이론을 오독한 다수의 인문학자들이 겪은 집단 착각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기적유전자>의 메시지를 잘못 전달 받은 사람은 대중 일반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뒤 삶의 허무성과 회의성을 토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도킨스는 3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이 같은 대중의 성토에 의아함을 내비칩니다. 오히려 도킨스 본인은 이기적 유전자의 호혜성과 이타성, 더불어 밈을 독한 인간 문명의 찬란함을 논했기 때문에 도킨스는 다수의 독자들이 보내오는 편지가 무척 답답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도킨스는 그저 자연 선택의 단위를 개체에서 유전자로 바꿨을 뿐(물론 이 변화가 결코 사소할 수는 없지만) 다위니즘을 큰 틀에서 동의했던 학자입니다. 이로써 도킨스에 대한 오해가 조금이나마 불식되길 바랄 따름입니다.


아울러 책을 읽는 내내 이기적 유전자론은 현대 사회에서 보이는 인간 관계를 퍽 잘 설명하는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약육강식의 현대 사회에서 약자를 대하는 일부 강자들의 태도를 보며 한층 짙어졌습니다. 한 때 소위 ‘땅콩회항’으로 불거진 고위 간부의 비합리적인 횡포를 시작으로 한동안 ‘갑질’논란이 여론을 도배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지금까지 간간이 전해지는 수많은 갑질 사례의 계보는 약자에 대한 인격적이고 정상적인 예우가 진화론적으로 불리한가 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사실 소수의 강자들이 갑질 행태를 벌이고, 여론을 통해 이를 접한 수많은 약자들의 비난에 처한다면 시민사회의 집중 포화를 면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즉 이기적 유전자론에 입각했을 때 강자들이 보여야 할 마땅한 태도는 약자들을 포용하고 어루만지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이며, 이 경우 강자들은 자신들의 평판을 유지하고 권력을 지켜내는 데 성공할 높은 확률을 확보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 속에서는 수많은 강자들의 갑질 행태만이 뉴스를 그득 채우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은 다름아닌 마트 계산대였습니다. 계산을 기다리는 줄에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찰나 불쾌한 고성이 저의 귓전을 스쳤습니다. 고성의 어조는 일방적이었으며, 고성을 내뱉는 ‘유전자’의 행색은 말하기 조심스러우나 다소 초라하고 볼품없는 낯을 띄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온종일 어딘가에서 노동을 하고 온 모습이었습니다. 바코드 리더기를 한 손에 쥔 채 고개를 박고 묵묵히 고성을 인내하는 점원은 한껏 죄송한 내색으로 상황이 끝나길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사태는 잠시 후 고성을 뱉은 이의 오해로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으나 이내 사과도 없이 유유히(어쩌면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떠났을 뿐입니다. 이는 언론에서 봤던 갑질 행태와 아무런 이질감이 없었으며, 오히려 유의미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고성과 윽박을 감내하는 대상이 자신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갑질은 언론에 노출되어온 것처럼 강자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보다 조금이나마 유리한 위치에 서면 누구든 갑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약자를 깔아뭉개는 데 괘념치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연민이나 동정 따위엔 휘둘리지도 않는다면 더 훌륭한 갑질 DNA를 소유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남을 더 잘 무시하고 짓밟을수록 더 훌륭한 생존 기계가 되는 시대의 아이러니 속에서 저를 비롯한 여러분은 모종의 돌연변이가 되길 열원(熱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