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진중권
*이 글은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이라는 진중권 씨 책에 대한 간략한 후기이자, 혹 읽을 분들을 위한 짧은 프리뷰입니다. 책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룬 리뷰는 아니라는 점 일독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 웃기다. 많은 이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종언하지만 막상 서점에 가면 가지각색의 인문학 교양 서적이 쌓여 있으니 말이다. 자본주의의 냉정함을 염두에 둘 때 아마도 내가 본 서점 풍경은 여전히 많은 대중이 인문학을 찾고 있음을 가리킨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거짓일까? 아니다. 인문학은 분명 위기다. 그것은 바로 '깊이'의 위기다. 오늘날 인문학자들의 현장은 지난한 사색의 장이 아니라 소비주의의 장바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작금의 인문학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게임 시나리오의 문화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일종의 흥미로운 '소재'의 우물 따위에 지나지 않는 듯 하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로 소비되다 못해 소진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인문학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생산이 아닌 재가공과 유통의 역할에 혈안이다. 그저 옛 이야기를 현대적 필치로 옮겨낸 '복고의 현대화' 작업에 만족하는 식이다. 실제로 서점에 가서 인문학 서적이 모인 책장 앞에 가 보면 '쉽게 읽는 서양 철학사', '누구나 이해하는 독일 관념론' 등등 인문학을 쉽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먹기 좋게 가공한 통조림만 잔뜩 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진중권은 '인문학의 주제를 우리의 이 변화한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과감히 말한다. 그것은 이름하여 테크노 인문학이다.
철학서를 조금이라도 들여다 본 사람은 메타피지카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다. '메타'는 '더 높은', '초월한'을 뜻하며, '피지카'는 쉽게 말해 '물리학'을 뜻한다. 즉 '피지카'란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실재에 대한 탐구를 가리키며, 메타피지카란 물리학 너머의 초현실적 세계에 대한 탐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일식이 일어나는 원리를 탐구하기 위해 천체를 관측하는 자연 과학적 탐구가 피지카라면, 그 일식을 가능케 하는 초월적 힘에 대한 탐구가 바로 메타피지카다. 본래 철학은 이러한 피지카와 메타피지카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점점 철학의 영역이 존재론만 따져 묻는 메타피지카 쪽으로 축소되더니 급기야는 메타피지카의 위상마저 미미한 지점에 이르고 말았다. '철학과 가면 인생 망한다'라는 슬픈 농담이 공리처럼 자리 잡은 사회 아니던가. 그렇다면 현대 사회는 피지카가 맹위를 떨칠까 하면 그 또한 아니다. 바야흐로 오늘날은 응용 피지카의 시대다. 자연 과학도, 철학도 아닌 공학도의 시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던 시절을 지나 이젠 인간을 직접 창조하는 시대가 도래해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인문학은 쓸모 없어진 걸까?
진중권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인문학의 주제도 바뀌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오늘날 인문학은 더이상 텍스트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텍스트로 열심히 인문학을 생산하더라도 아무도 소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개탄하며 '요즘 어린 것들은 책을 안 읽어, 쯧쯧' 혀를 찰 테지만 진중권은 이를 경계다. 다만 미디어의 전환이 발생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텍스트로 세상과 소통하던 인간이 이제는 이미지와 영상으로 소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 역시 시대적 흐름과 더불어 공진화 하여 그 주제를 바꿔야 한다. 텍스트만 고집하거나 읽지 않는 대중 탓만 하며 자발적으로 고립될 것이 아니라, 영상과 이미지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 인간이 그 전과 어떤 다른 사고방식을 갖게 될지, 또 사회상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새로운 인문학적 주제에 골몰하라는 말이다.
진중권이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천착한 주제는 크게 세 가지라고 한다. 첫째는 먼저 다가올 시대, 즉 디지털 세계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는 서양 철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세계의 아르케(세계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며 세계 자체를 질문의 대상으로 삼은 것처럼 우리도 다가올 시대가 무엇인지 부터 알아야 함을 뜻한다. 이름하여 디지털의 존재론이다. 둘째, 다가올 시대--혹은 이미 다가온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컴퓨터가 없던 시대의 인간과 오늘날의 인간은 사고 방식 부터가 다르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이 다르며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형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새로운 인문학의 과제, 즉 디지털의 인간학이다. 셋째,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질문해야 한다. 가령 코로나로 촉발된 대학가의 비대면 수업 내지는 언컨택 시대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세번째 질문으로부터 구체화 될 것이다.
책의 본론은 앞서 정리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진중권의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거칠게 약술하자면, 첫째, 디지털 세계의 존재론이란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채 점점 더 둘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지며 중첩되는 시대로 설명할 수 있다. 이를테면 초보 비행사가 항공 시뮬레이션 기기에 들어가 가상 현실에서 훈련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는 분명한 의도가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명확한 시종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현실과 명확한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예시이긴 하지만 먼 미래로 갈수록 인간 관계나 취미 생활 마저도 가상이 현실에 중첩되는 때가 올 것이다. 둘째, 디지털 시대의 인간은 '유희하는 인간'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지루함은 죄악이다. 인간은 더 이상 지루함을 소비하는 데 돈과 시간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 방식이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넘어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사님의 설교나 회사 업무 방식 마저 지루함의 여지를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다. 디지털 세계의 수많은 자극으로 한껏 자극된 인간의 감각 세포는 잠시라도 잠자코 집중할 주의력을 소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디지털의 사회학에 대해서는 진중권도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는다. 책에서 말하기를 그는 '제가 아직 건드리지 못한 것은 디지털의 사회학입니다.'라며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남겨두고 책을 마친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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